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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없이 추락하는 평판…미국이 맞닥뜨리게 될 일들"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It Isn't Just Trump. America's Whole Reputation Is Shot. by David Brooks

0318 뉴욕타임스 번역
 

* 데이비드 브룩스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몇 해 전 나는 고위급 외교관으로 일하다 나온 친구에게 정부에서 일한 경험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정부에서 일하기) 전에는 정책 결정의 75%가 관계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일하고 나서 보니, 75%가 아니더라. 95%야."

큰 일은 혼자 하기가 매우 어렵다. 지도자와 국가의 역량이란 곧 가치관과 역사, 신뢰의 공유를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지도자와 국가는 시대의 큰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연합을 구축한다. 이 시대의 가장 큰 과제에서도 마찬가지다.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인가?

이 문제에서 중국은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있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미국에는 결정적인 한 방이 있었다. 바로 세계 전역에 미국의 친구들이 더 많다는 점이었다. 불행히도 지난 한 달 반에 걸쳐 미국은 그 관계의 상당 부분을 아주 박살을 내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상대를 배신하고 괴롭히면 상대도 나를 비난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고, 아예 처음부터 신경 쓰지도 않는 듯하다. 지난 몇 주에 걸쳐 유럽인들의 반응은 충격에서 시작해 혼란으로 넘어갔다가 혐오에 이르렀다. 유럽인들에게 지난 몇 주는 환상이 깨지고 존재론적 위협에 노출되었다는 점에서 미국인이 경험한 9.11 테러에 비교할 만하다. 유럽인들은 우방이라 여겼던 미국이 실은 깡패나 다름없는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서는 이제 미국을 적으로 삼으면 인기인이 된다. 내 생각에 트럼프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중국과 모종의 협정을 맺고 타이완을 우크라이나 꼴로 만들 거다. 약한 쪽을 배신하고 강한 쪽에 아첨하는 행태를 보일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도 곧 유럽처럼 미국은 배신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는 트럼프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평판이 박살이 났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환생해서 2029년 백악관에 입성한다 해도, 4년 후 또다시 권위주의적 허무주의자를 뽑을 가능성이 있는 나라를 신뢰할 외국 지도자는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지게 될까?

나토(NATO)는 끝났다. 조 바이든은 전후 자유주의 질서를 수호하고자 4년간 공을 들였다. 기존 체제는 특정한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의 고립주의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극을 낳았고, 이후의 국제주의는 80년간 적어도 강대국끼리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 평화로 이어졌다. 젊은 세대에 이 서사를 들려주면 무슨 14세기 이야기라도 듣는 듯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전후 체제는 역사적 성취이지만 해당 시대의 산물이고, 지금 그리로 회귀할 수는 없다. 딘 애치슨의 유령을 되살리려는 노력은 헛된 꿈이다. 새로운 글로벌 체제를 구상해 내야 한다.

서구는 (현재로선) 끝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서구(The West)'라는 개념은 소크라테스의 진리 탐구, 렘브란트의 연민, 로크의 계몽적 자유주의, 프랜시스 베이컨의 과학적 방법론 등으로 대표되며 수 세기에 걸쳐 이어져 온 대화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유산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자신을 위대한 '서구 프로젝트'의 정점에 있는 존재로 이해했다. 서구라는 개념은 유럽과 북미 간 모든 동맹과 교류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의 머릿속에는 '서구'라는 개념이 없는 듯하다. 트럼프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정신적, 지적 뿌리로부터 단절시키는 중이다. 어찌 보면 1987년 제시 잭슨과 진보 활동가들이 스탠퍼드대학에서 "서구 문명은 사라져야 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작한 프로젝트를 트럼프가 완성하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문명 갈등은 '강(hard)'과 '약(soft)'의 대결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트럼프가 중국과의 동맹에서 러시아를 떼어내려는 건 4차원의 체스가 아니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이제 그저 트럼프의 호르몬이 솟구치는 방향으로 향할 뿐이다. 트럼프에게는 남성성에 대한 평생의 집착이 있다. 마가(MAGA)의 정신세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은 '강'이고, 서유럽은 '약'으로 분류되어 있다. 일론 머스크는 '강'이고, USAID는 '약'이다. WWE는 '강'이고, 대학은 '약'이다. 장악을 위한 투쟁은 '강'이고, 동맹은 '약'이다.

유럽은 부활하거나, 박물관이 될 것이다. 유럽이 저출생, 저혁신, 저성장의 대륙, 전 세계인의 휴양지 정도로 전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지금이 미국과의 안보 관계를 끊어내고 자체적인 힘을 다시 키워야 하는 순간임을 알고 있다. 독일은 무기를 만들기 위한 역량을 강화하는 중이다. 마리오 드라기 전 이탈리아 총리는 시장 분열이 기술 혁신을 죽이고 있다는 주장으로 유럽을 놀라게 했다. 많은 보수주의자가 유럽은 너무 세속적이고 퇴폐적이어서 회복이 어려울 거라고 확신한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일은 진지한 국가다. 프랑스의 공무원 집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엘리트다. 영국 국민은 어려울 때일수록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걸 역사가 증명해 왔다.

새로운 핵확산의 시대가 온다. 미국이 안보 우산을 철수함에 따라 폴란드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국가들은 스스로 핵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어떤 문제가 생길까?

중국이 그 공백을 메우려 들 것이다. 미국이 우방을 배신하면, 중국은 우방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중국의 EU 주재 특별대표는 최근 트럼프 정부의 유럽에 대한 대우를 "끔찍하다"라고 평한 바 있다. 그는 "유럽의 친구들이 이 점을 잘 생각하고 트럼프 정부의 정책과 중국의 정책을 비교해 봐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중국의 외교적 접근법이 평화와 우정, 선의, 상생 협력을 강조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호소가 회의적인 사람들의 귀에 가닿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어진 두 선택지가 모두 초강대 깡패 국가일 때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위험을 분산시키며 양쪽 모두와 상대해야 한다는 냉엄한 현실을 맞게 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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