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하버드대 교정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2기가 시작되면서 미국에서 공부하려는 한국인 유학생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생명·보건·다양성 분야 연구비 삭감을 예고한 데 이어 이민 정책에도 변화가 생길 거란 우려가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한 물가 상승과 고환율, 이민자에 포용적이지 않은 분위기 등도 시름을 깊게 합니다.
미국 미시간주 소재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최 모(29) 씨는 지난 11일 서면 인터뷰에서 "유학 생활 접고 당장 짐 싸서 귀국해야 하나 매일 걱정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국립보건원(NIH)의 연구 보조금을 삭감할 것이라고 예고한 뒤 그가 진행하던 연구의 진행 여부가 불투명해진 탓입니다.
최 씨는 "제 분야가 NIH와 직접 관련이 있다 보니 예산 축소의 여파가 직접적으로 느껴진다"면서 "안 그래도 불안정한 신분인데 스타이펜드(stipend·연구생활장려금) 삭감과 생활고, 비자 문제 등등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피츠버그대의 박사 지원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이 모(28) 씨는 "연구비 삭감이 이공계에 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의외로 인문·사회 계열에 타격도 크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연구팀 인건비가 줄어드니까 박사후연구원(Postdoc·포닥) 채용 전망도 밝지 않고 특히 유학생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앞서 지난달 10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정부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을 폐지하면서 연구 환경이 저해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올해 가을 학기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대학의 박사 과정 진학 예정자 A(25)씨는 12일 통화에서 "트럼프가 DEI 관련 이니셔티브(프로젝트)를 축소하고 소수자에 적대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내 연구 분야를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옅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이 지원한 대학 측으로부터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DEI 연구가 지원받을 가능성이 작아졌다는 안내를 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A 씨는 "최근 캠퍼스 방문 행사에서 교수와 학교 모두가 트럼프 정부의 불확실성 때문에 비자나 펀딩(기금 모집) 조건이 변경될 수 있음을 공지했다"면서 "연구비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와 이민자에게 폐쇄적인 대통령은 학업을 떠나 생활 자체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트럼프 영향'은 전공을 불문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유학원 관계자는 "미국에서 박사 학위 소지자는 원래 취업이 비교적 수월한 편인데, 현재 미국 취업 시장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기계공학과의 경우 예년보다 많은 지원자가 몰려 박사 입학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전했습니다.
유학 준비생들은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가을 학기 UC버클리 박사 과정에 지원한 B(25) 씨는 "UC버클리를 포함한 몇몇 대학으로부터 아직 결과를 기다리는 중인데 교수님한테 연락해 보니 펀딩 때문에 결과가 늦어진다는 답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일부 대학에서는 예년과 달리 2차 선발 계획이 없다고 알리는가 하면 포닥 제안 후 취소 통지를 받은 바이오(생명) 관련 전공생도 봤다"고 덧붙였습니다.
구체적인 불합격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트럼프 정부의 영향으로 발표가 늦어지고 합격자 수를 줄인다더라' 같은 소문 속에서 불안함을 호소하는 지원자들도 숱합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또다른 유학원 관계자는 "앞으로의 불확실성 때문에 미국 학교들이 보수적으로 덜 뽑는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최초 합격자 수가 작년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든 학교도 있고 입학처로부터 합격 여부를 언제 말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단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오는 8월 미국으로 출국 예정인 박사 유학생 C(29)씨는 직장 생활을 하며 돈을 모아놓았지만 출국 전까지도 아르바이트를 해야할 것 같다며 씁쓸해했습니다.
최근 환율이 치솟으면서 집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유학 자금이 부족할 수 있어서입니다.
그는 "작년 원서를 쓰던 기간이 딱 비상계엄이 발생했던 시기인데, 이때 미친 듯이 환율이 올라 원서비로도 상당히 많은 돈을 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평균적으로 미국 대학원 입학 원서 비용은 한 학교당 100달러(약 15만 원)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어 성적 증명서도 대학에 보내야 하는데 전송비도 별도로 듭니다.
통상 10개 대학에 지원한다고 하면 지원비로만 약 1천300달러(약 189만 원)를 내야 합니다.
미국에서 예상되는 생활고도 문제입니다.
한국 유학생 커뮤니티에서는 "UC 계열 대학에 합격했는데 스타이펜드가 너무 적어서 입학을 거절했다", "물가가 너무 오르니 한국에서 생활비를 받아도 여유가 너무 없다", "최근 미국 마트에서 달걀 한 알에 1천 원이 넘더라" 등 볼멘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도 유학생들은 하나같이 인종차별 문제를 근심거리로 꼽았습니다.
A 씨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심리적 불안감으로 다가온다"고 했고, C 씨도 "제가 이주하려는 곳은 백인이 다수다 보니 인종 차별이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녀를 타지에 보내야 하는 학부모 마음도 타들어 갑니다.
지난해 미국에 자녀를 유학 보낸 이 모(58) 씨는 "4년 후 박사 졸업 시점에는 트럼프 임기가 끝난다는 게 유일한 희망"이라면서 "앞이 깜깜해 보여도 여력이 되는 만큼 지원해볼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