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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민의힘 내 인파이터와 아웃복서

국민의힘 장외투쟁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대통령 탄핵 심판 국면에서 장외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체포 전에는 한남동 관저를 찾아갔습니다. 체포영장이 집행된 이후에는 주말마다 광장에 나가 ‘탄핵 반대’ 집회에 동참했습니다. 헌법재판소를 항의 방문했고, 1인 릴레이 시위도 이어갔습니다. 당 중진 가운데 김기현, 나경원, 윤상현 의원 등이 적극적이었습니다.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장동혁 의원이 연단에 자주 올라섰습니다.
헌법재판소 항의방문한 국민의힘 의원들

"중도층 한 번 볼 때, 지지층 두 번 봐야"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한 우려도 있습니다. 강성 지지층만 챙기는 모습처럼 비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중도층에게 역효과라는 겁니다.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A 의원에게도 이러한 우려가 없는지 물어봤습니다. 이때 돌아온 답변은 “중도층 한 번 볼 때, 지지층은 두 번 봐야 한다” 이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집토끼를 챙길 때라고 합니다. 당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믿고 지지하는 전통 지지층의 이탈을 먼저 막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A 의원은 이들의 마음마저 떠난다면 당의 입지가 더 움츠러들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최악의 경우 국민의힘보다 보수 색채가 더 강한 군소 정당에 눈길을 돌릴 수 있다고 봅니다. 중도 외연 확장은 당이 항상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만, 지금 탄핵 국면에서는 전통 지지층의 마음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신중한 당 지도부, 장외 집회 선 긋기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왼쪽 두번째)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지도부는 광장에 나가는 의원들과 선을 긋고 있습니다. 당 지도부는 지도부대로 국회에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는 의회 정치에 집중하는 모양새를 취했습니다. 여야 국정협의회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진 않고 않지만, 일단 대야 협상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정책 메시지를 던지는 데 신경 썼습니다. 배우자 상속세 폐지 같은 경우 여야 공감대를 이끌어냈습니다.
 
당 지도부의 이러한 행보에 일부 의원들의 불만도 있습니다. 절실함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탄핵 국면에서 말로만 ‘탄핵 반대’를 외치고,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헌법재판소 등 현장에 나간 의원들은 고생하는데, 당 지도부는 '덜 움직인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 염두에 둔 처사라고 바라봅니다. 다만, 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대놓고 말은 못 해도 혹시 모를 선거 국면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중도층 이탈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도 있어 보입니다.
 

장외·장내, 투 트랙 전략

탄핵 반대 집회 참석한 국민의힘 의원들
국민의힘의 이른바 ‘투 트랙 전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쪽에서는 광장으로 나가 탄핵 반대를 외치며 지지자 결집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러한 광장 목소리에 일정 거리를 두고 정책이나 민생 관련 메시지를 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민주당의 셈법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민주당은 의석 수만 놓고 볼 때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장외든 장내든 한쪽에만 치우친 전략을 쓴다면,  맞대응했을 때 그 기세를 누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장외‧장내 투쟁을 동시에 하니 민주당의 화력도 분산될 수 있습니다.

투 트랙 전략의 단점은 어느 한쪽도 완벽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광장의 세력은 온건한 지도부에 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지지자들은 당의 광장 쏠림 현상을 곱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국민의힘 내에서 흔히 말하는 "우리끼리라도 똘똘 뭉치자”가 표면적으로는 잘 안 돼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대통령 구속 취소, 새 국면

국민의힘의 이러한 ‘투 트랙 전략’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법원이 윤석열 대통령 측이 제기한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구치소를 나와 한남동 관저로 복귀했습니다. 당에서 탄핵 기각‧각하를 강력하게 주장한 쪽은 한층 고무됐습니다. 윤 대통령을 구속한 게 잘못됐던 만큼 방어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도 무효라는 주장을 합니다.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 도착, 차량에서 내려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일부 화살이 당 지도부로 향했습니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대통령이 구속 취소돼 돌아온 만큼 한층 더 강한 장외 투쟁을 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민주당도 대통령 구속 취소에 당황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그 이후 장외 투쟁의 보폭을 넓혀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의 요청에 따라 의원 총회가 3월 11일 열렸습니다. 화두는 당 전체가 장외 투쟁 최전선에 서느냐는 것입니다. 의원들의 생각은 나뉘었습니다.
 
‘인파이터’와 ‘아웃복서’는 복싱에서 쓰이는 용어입니다. 상대방에게 파고들어 근접 공격하는 복싱 스타일이 ‘인파이터’라면, 상대방과 거리를 두고 정확하게 타격하는 게 ‘아웃복서’입니다. 의총장에서 의원들은 ‘인파이터’파와 ‘아웃복서’파로 나뉘었습니다.
 
① 인파이터 파
 
국민의힘 인파이터들은 지금 장외 투쟁에 올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장외 여론전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의원은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모 아니면 도’라고 말합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전까지 여권에 유리한 분위기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탄핵 기각’에 공감하고, 헌법재판소도 여론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은 한가하게 ‘아웃복서’ 스타일로 치고 빠지며 타이밍을 볼 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탄핵이 인용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지는데, 뒷날을 도모해 힘을 분산하자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헌법재판소 앞에서 24시간 릴레이 시위도 시작했습니다. 참여 의사를 밝힌 의원 수가 과반입니다.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의원들이 동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일부 의원들의 순수성을 의심합니다. 대통령이 구속 취소돼 관저로 돌아온 만큼 ‘충성 경쟁’을 하는 것으로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국민의힘 윤상현(오른쪽), 강승규(왼쪽) 의원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각하 촉구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② 아웃복서 파
 
권성동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모두가 ‘인파이터’가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의원들이 ‘인파이터’가 돼 활동하는 건 존중하지만, 지도부는 ‘아웃복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과 같은 투 트랙 전략을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고 봅니다. 지도부 입장에서는 강성 지지층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당내 다양한 스펙트럼에 놓인 지지자를 다 챙겨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당 홍보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상휘 의원(포항시 남구‧울릉군)은 3월 11일 의원 총회에서 지금의 상황을 처음으로 ‘인파이터’와 ‘아웃복서’에 비유해 의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인파이터’ 복싱 스타일에 전념해서는 안 된다고 의원들을 설득했습니다. 12‧3 비상계엄이라는 변수 속에 그나마 지지율이 고꾸라지지 않고 버티는 게 ‘투트랙 전략’의 유효함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22대 국회는 여소야대입니다.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은 상임위원회, 본회의 등 표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습니다. 법안 단독 처리 등 민주당의 공세 속에 국민의힘은 항상 ‘아웃복서’ 스타일로, 공격보단 방어를 하는 데 치중했습니다. 하지만 비상계엄 이후 장외로 나가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인파이터’가 됐는데, 지도부는 또 ‘아웃복서’인 셈입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러한 전략이 오히려 민주당을 더 당황하게 만들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권성동 "장외투쟁·단식으로 헌재 압박하지 않을 것"

권 원내대표는 3월 11일 의원총회 직후 민주당의 장외 투쟁과 단식에 맞대응하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의원총회에서 이상휘 의원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 지도부는 일단 ‘분산 투자’를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이 결과적으로 득이 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두세 달 뒤면 지금 지도부의 판단이 옳았는지 평가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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