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안이 처음 제시된 타당성조사 용역 관리를 총체적으로 부실하게 했다는 자체 감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종점 변경 관련 내용이 담긴 자료 일부를 고의로 삭제한 뒤 국회에 제출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2023년 9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자체 감사를 요구한지 1년 6개월 만입니다.
국토부는 오늘(11일) '서울∼양평 타당성조사 용역 관련 특정감사 처분 요구서'를 공개했습니다.
국토부 감사관은 공무원 7명에 대한 징계(5명)·주의(1명)·경고(1명) 처분을 권고했습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국토부가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확정된 기존 양평군 양서면 종점을 양평군 강상면으로 변경하면서, 강상면 일대에 땅을 가진 김건희 여사 일가에게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뒤 사업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번에 '관리 부실'이 확인된 것은 동해종합기술공사와 경동엔지니어링이 진행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타당성조사 용역입니다.
용역사는 대통령 선거 이후인 2022년 3월 29일 타당성조사를 시작해 두 달 뒤 강상면을 종점으로 하는 대안 노선을 제시했으며, 그해 11월 1차분 용역을 마쳤습니다.
감사 결과 국토부 도로정책과는 용역사로부터 과업수행계획서와 월간 진도 보고서를 기한 내 제출받아야 하는데도 제출 지시를 하지 않았다. 국회가 해당 자료 제출을 요구한 2023년 6월에야 용역사로부터 자료를 받았습니다.
규정에 따라 용역감독을 임명해 용역사가 과업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지만, 자체적으로 용역감독을 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여기에 더해 국토부는 용역사가 1차 용역에서 이행해야 하는 경제적 타당성 분석, 종합 평가 등을 하지 않았는데도 용역 대금 18억6천만원을 지급했습니다.
용역사가 계약대로 업무를 마쳤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용역 100%가 준공됐다'는 내용에 날인한 뒤 돈을 준 겁니다.
국토부 감사관은 실시되지 않은 3억3천400만원 상당의 용역 금액을 회수하라는 시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국토부 담당자들이 국회에 제출한 서울∼양평고속도로 관련 자료를 고의로 4페이지 누락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2023년 7월 서울∼양평 고속도로 논란이 본격화되자 국회에서는 자료 제출 요청이 이어졌고, 국토부는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며 홈페이지에 55건의 파일을 올렸습니다.
문제는 서울∼양평고속도로 타당성조사를 수행한 용역업체가 2022년 3월 작성한 38페이지짜리 과업수행계획서 중 '종점부 위치 변경 검토' 내용이 담긴 4페이지를 통째로 들어낸 파일을 올렸다는 점입니다.
내용 삭제 후 쪽수도 다시 매긴 문서였습니다.
자료 누락이 드러나자 당시 국토부는 "실무진 실수"라고 해명한 뒤 누락된 4페이지를 추가한 파일을 다시 업로드했습니다.
감사 과정에서 국토부 담당자는 '문서에 오타가 있어 국회에 그대로 제출되면 자료 부실 작성으로 인한 신뢰성 문제가 생기고, 노선에 대한 추가 민원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4페이지를 삭제하고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며 고의 누락을 인정했습니다.
감사관은 담당 공무원 2명에 대한 징계 처분을 권고했습니다.
이번 감사로 수조원대 예산이 소요되는 고속도로 등 사회기반시설(SOC) 추진 과정에서 국토부의 관리 부실 문제가 드러난 데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1년 넘게 떠들썩하게 이어진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이 결국 실무 공무원 '꼬리 자르기'로 끝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관계자는 "서울∼양평 고속도로와 관련한 근본적 의문 해소는 추후 과제로 남게 됐다"고 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