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지난해 방영된 '스테이지 파이터'라는 무용 오디션 프로그램을 봤다면, 최호종이라는 무용수를 알게 됐을 겁니다. 이 프로그램 최종 우승자인 최호종은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국립무용단 주역으로 춤췄고, 지금은 복합예술단체 SAL(Subverted Anatomical Landscape: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 부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무용가입니다. 한국무용이 기반이지만, 어느 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고유한 춤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가 수석 무용수로 있는 STF 댄스컴퍼니 전국 투어 공연이 얼마 전 성황리에 끝났는데요, 발레를 제외하면 무용 장르는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 어렵지만, STF 댄스컴퍼니의 공연은 방송으로 높아진 인지도 덕분에 열광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습니다. 최호종은 또 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는 창작산실 올해의 홍보대사로, 창작산실 브랜드 영상을 직접 안무해 춤추기도 했습니다.
최호종을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초대해 그의 삶과 춤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무용을 하게 된 과정, 그리고 어떻게 더 자유롭게 춤출 수 있게 되었는지 들려준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고3 때에야 무용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무용 이전에 연극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청소년 극단에 들어가 극단 활동을 했습니다.

"극단에 들어가실 때는 연극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신 거예요?"
"아뇨. 지금의 저는 진취적이고 담대하고 경쟁도 즐기지만 어릴 때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무대에 서지 않았다면 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생각보다 무기력한 친구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열정이 없다고 해야 될까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거의 최후의 보루가 아니었나... 어머니께서 오디션을 추천해 주셔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연극을 하면서, 그는 점차 자신이 변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연극 치료'라는 게 있잖아요. 예술의 치유적 효과를 체감한 겁니다.
"무대라는 것은 그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부분도 생기게 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을 더 성찰하게 되고 더 성숙해지게 되기도 하고 이런 면들이 있는데, 제가 그런 것들을 겪다 보니까 저라는 사람을 정말 그냥 더 열어서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고, 무기력하고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던 아이가 나중에는 정말 열정을 뿜어내는 그런 사람으로, 연극을 통해서 무대를 통해서 그렇게 변하게 된 것 같아요."
최호종은 자신이 공부도 꿈도 흐릿하고 무기력한 아이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많은 10대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 속에, 내가 진정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꾸역꾸역 수험 생활을 이어 나가야 하는 게 대다수 학생이 처한 현실이니까요. 그런데 최호종은 연극과 만나면서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고, 자존감을 찾고, 무대에 열정을 쏟게 되었던 겁니다. 그는 무대와 만나 자신이 변화했다면서, 이를 '첫 번째 터닝 포인트'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터닝포인트는 그에게 무대의 매력을 알려준 연극에서, 무용으로 전향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무대에서 몸 쓰는 것을 본 류미선 연출가가 무용으로 전향할 것을 강력하게 권유했습니다. '너는 연기해서 20년이면 빛을 볼 것을 무용이면 10년에 볼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하죠. 그의 인생 항로에 정말 중대한 영향을 끼친 말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믿는 분이니까, 그리고 제가 사랑한 것은 연기도 춤도 아닌 무대였기 때문에, 바로 네 알겠습니다, 하고 무용으로 전향했죠. 단기간에 배우고 정말 많이 노력해서 무용을 시작하게 됐어요"
무용을 배우고 불과 7-8개월 만에 대학 입시를 치렀습니다. 발레처럼 기본기가 중요한 장르를 짧은 기간에 익히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한국무용 전공을 택했습니다. 한국무용도 물론 기본기가 중요하지만, 창작 부문은 한국무용의 정서와 호흡을 응용하되 좀 더 유연하고 독창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한국무용 창작으로 응시했고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그는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무용을 익히고 입학한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늦깎이로 무용을 배운 자신의 실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걸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했지만, 열등감이 너무 심했어요. 친구들한테는 티를 안 내고 싶었지만, 너무 비교되는 상황이 자주 생기다 보니까 그걸 극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시험을 보는데 다른 친구들은 교수님이 주신 순서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면, 저는 그 순서를 외우는 것만으로도 평가를 받는, 남들과 다른 기준점에 놓여 있는 상황이 많이 힘들었어요."
그는 어떤 동작이 안된다고 지적받으면 거울 앞에서 8시간 동안 그 한 동작만 맹목적으로 반복 연습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단순 무식'하게 일을 해결했다면서, 그야말로 '집요하고 독기 그 자체였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열등감에서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습니다.
"마지막 콩쿠르에 나가기 이전에, 너무 답답하고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싶고, 내가 무용을 처음 시작했던 건 이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내가 봤던 건 행복하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그런 거였는데, 왜 지금 이렇게 독기에 빠져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있지? 이건 몇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데, 앞으로 몇 년을 더 이렇게 해야 되지? 계속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정말 극에 다다랐을 때 제가 일종의 선택을 했어요."

그가 했던 '선택'은 그냥 쉬지 않고 춤을 춰보는 것이었습니다. 낮에 춤추기 시작해 어둑어둑한 밤이 될 때까지, 6시간을 쉬지 않고 춤을 췄습니다. 완전한 즉흥춤이었습니다.
"보통 즉흥춤은 5분이면 지치거든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마치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정말 정신이 나갔다가 다시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회복이 되고, 다시 어떠한 고양감으로 인해서 내가 다른 질감이나 다른 제약으로 춤을 시작하면서도 흐름이 끊기지 않다가 어느 순간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멍을 때리고 있고. 안에서 엄청난 혼란과 되게 많은 감정과 지금까지 느꼈던 춤에 대한 사유들이 혼합되더니, 결국 '아,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춤을 춰야겠구나.'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아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춤을 춰야겠구나!
6시간 무아지경 즉흥춤을 통해 그가 도달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마인드'가 바뀌고, 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를 마치 기적과도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열등감이나 괴로움에서 한순간에 벗어나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나의 춤을 추는 상태가 되니까 춤이 행복해졌다고 했습니다. 춤 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치유한 것입니다.
그렇게 바뀐 마인드로 출전한 2016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았습니다. 첫 참가 때 동상, 두 번째 참가 때 은상을 받았던 콩쿠르에서 드디어 정상에 오른 것입니다. '이매망량'이라는 도깨비 수호신과 그를 창조한 절대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한 '마무-아오르다'라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콩쿠르는 남들과 겨루는 경쟁이 분명하지만, 그의 경연 영상을 보면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즐기면서 자유롭게 춤추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합니다. 최호종 스스로도 영상 속의 자신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전에는 테크닉적으로 뭐가 안 된다 이런 걱정도 하셨는데, 마인드가 바뀌니까 그것도 순조롭게 해결이 되던가요?"
"춤은 결국 마음과 그 사람의 통로이기 때문에, 무언가에 압박을 받고 있으면 춤이 절대 잘 나올 리가 없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내가 어떤 자신감을 갖고 있느냐가 그 춤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것 같은데, 그때 저는 춤을 엄청나게 잘 춘다고 하기보다는, 엄청난 자신감으로, 그냥 이미 무대에서 승리하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승리의 깃발을 꽂아놓고 춤을 추는 느낌이었어요. 승패나 경쟁이나 상이나, 이런 걸 다 떠나서 그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승리의 깃발을 꽂아놓고 춤을 추는 느낌'이었다는 말이 귀에 짜릿하게 꽂혔습니다. 무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춤추는 게 아니라, 그저 무대에서 춤출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며 춤추던 순간, 그는 이미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춤으로 해탈한 남자'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런 경험을 진짜 할 수가 있군요!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간절함인 것 같습니다."
그는 다음 해인 2017년 국립무용단에 최연소로 입단합니다. 고3 때 한국무용으로 진로를 정한 뒤 국립무용단의 '그대, 논개여'를 보고 '내가 갈 곳은 저기'라고 생각해 왔다고 합니다. 그는 국립무용단 소속으로 2024년까지 '더 룸' '호동' '사자의 서' 등에서 주역으로 춤췄습니다. 서울무용제 남자최고무용수상, 관객이 뽑은 베스트 상, 한국춤비평가협회 연기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이 보여주듯 최호종은 곧 무용계의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안무가로서도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2023년 국립무용단의 차세대 안무가 양성 프로젝트로 첫 번째 안무작 '야수들'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가족으로 설정된 네 명의 무용수가 보여주는 '가학적 놀이' 속에 한국 사회의 변화를 담아냈습니다. 같은 해 예술집단 SAL이 공연한 'COSMO'는 피터 쉐퍼의 희곡 '에쿠우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었죠. '스테이지 파이터'에서 선보인 그의 안무도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국립무용단은 무용수들에게는 '꿈의 직장'이지만, 그는 안무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2023년 즈음부터 퇴단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국립무용단을 떠나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창작 욕구와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갈증을 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퇴단을 준비하던 중에 '스테이지 파이터' 출연 제안을 받았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출연을 결정했고, 이는 그의 무용 인생에서 또 다른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 방송에 좋은 소재가 되어야겠다. 춤 잘 추는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라, 좋은 자세 좋은 마인드 좋은 태도로 임하는 좋은 선례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출연에 대해 확 (마음이) 열리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참가했던 스테이지파이터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는 이제 무용계를 넘어선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최호종이 참여하는 STF 댄스컴퍼니의 공연은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방불하게 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가 평소 활동하는 SAL에서의 작업은 사실 대중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두 갈래의 길이 최호종이라는 예술가 안에서 어떻게 나아가고 합쳐질지, 기대하게 됩니다.

최호종은 SAL의 작업이 '쉽고 재미있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용 공연이 '하이엔드'라고 말합니다.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는 대중을 위해 무용 공연의 장벽을 낮추는 노력을 하는 것보다는, 예술가 스스로 더 발전시키고, 더 깊은 사유를 하고, 더 진정성 있는 작업을 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무용수가 오랜 시간 뭔가 수련하고 체화하며 쌓은 그 노력의 산물인 무대 춤은 한순간에, 찰나에 소멸되고 눈앞에서 사라지잖아요. 그 안에서 얻어지는 사유가 쉽게 봄으로써 얻어질 수 있을까요? 저는 사실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나오는 '모호성'이 우리의 가치를 드높여주는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모호성이라는 일종의 품격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는 자극이 넘쳐나고 쉽게 도파민을 얻을 수 있는 이 시대에, 관객이 공연장까지 찾아온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용기를 내 준 관객에게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먼 길을 오가는 그런 '용기'가 아니라, 예술가를 통해 다른 사유를 얻고 작품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 대한 '용기'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죠. 누구에게나 있을 수도 없고, 그 용기는 없다가도 갑자기 생길 수 있고, 마치 제가 무대에 오른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무대라는, 예술이라는 것이 찾아와서 내가 삶을 향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기보다는 정말 진귀하고 희귀하고 희소성 있는 그런 순간이죠."
최호종의 말처럼, 예술가를 통해 다른 사유를 얻고 작품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기꺼이 할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저도 최호종의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영감을 받은 느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