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전을 벌이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후 안보보장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됐다"는 서한을 보내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귀추가 주목됩니다.
두 정상이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공개적으로 설전을 벌이며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은 지 나흘만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4일 워싱턴 DC 미 의회의사당에서 진행한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에게서 '중요한 서한'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서한에는 "우크라이나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협상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돼 있다. 우크라이나인보다 평화를 더 원하는 사람은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미국의 안전보장 없는 즉각 휴전'이란 자신의 종전 구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면박을 주고 백악관에서 쫓아내듯이 했고, 전날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 제공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대로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이 없는 상황에서 종전 협상에 나서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면, 미국의 '팔 비틀기'에 사실상 백기투항을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지속 가능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일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적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우크라이나가 주권과 독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미국이 해준 일이 정말 소중하다"며 감사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백악관 설전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고마워할 줄 모른다"며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행정부에 고개를 숙인 것은 미국이 발을 뺄 경우 러시아에 맞서 전쟁을 이어가기 힘들 수 있다는 현실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 주요국들이 잇따라 연대의 뜻을 밝혔지만, 최대 원조국인 미국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유럽은 오랜 군축으로 충분한 물량의 무기를 뽑아낼 능력이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해 신속한 움직임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번 전쟁이 시작된 뒤에도 프랑스 등이 유럽 내 생산을 고집해 포탄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앞서 서방언론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비롯한 유럽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면박을 당하고 쫓겨난 젤렌스키에게 '백악관으로 돌아가라'는 취지의 압박을 가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보도가 사실이라면 유럽 정상들 역시 당장은 미국 없이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지키기 어렵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진지한 논의를 해 왔고, 그들이 평화를 이루기 위해 준비돼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조만간 종전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또, 그동안 미국이 제공한 원조의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매장된 희토류 등 광물 개발권을 확보하는 내용이 담긴 '광물협정'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언제든 서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강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협정에 따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면 공식적인 안보보장 없이도 충분히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는 억지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대로 신속한 종전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합니다.
점령지 반환과 전후 안보보장 등 쟁점에서 양측의 입장이 워낙 첨예하게 엇갈려 이견 조율이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전 국경 회복을 원하지만, 러시아는 헤르손 등 현재 점령하지 못한 지역들도 러시아계가 다수 거주한다는 이유로 러시아 땅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또 유럽 각국이 전후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데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친러 행보로 서방의 대러 전선이 크게 흔들린 상황을 이용해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의 가혹한 조건을 들이밀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