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새 학기부터 고교학점제가 모든 학교에 도입되면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부터는 대학생처럼 직접 듣고 싶은 과목을 골라서 시간표를 짜고 수업을 옮겨 들어야 합니다. 3년 동안 192학점을 취득해야 졸업할 수 있는데, 워낙 큰 변화라 현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혜미, 장훈경 기자가 차례로 보도합니다.
<이혜미 기자>
예비 고1 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고교학점제 설명회.
문·이과 구분 없이 과목을 골라 들을 수 있다는 설명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최지원/예비 고등학생 : 어떤 과목을 내가 골라야 하는지, 시간표도 내가 어떻게 직접 짜야 하는지, 이게 가장 궁금했던 것 같아요.]
[이승빈/예비 고등학생 : 자기가 원하는 진로에 맞춰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어요.]
1학년 때는 공통과목을 배우며 2학년에 배울 과목들을 선택해 수강신청을 합니다.
[이지현/고교학점제 연구학교 교사 : 5월에서 6월 정도가 되면 수요조사를 한 번 받습니다. 1학기 말이나 아니면 2학기 시작쯤에 저희가 1차 선택과목 조사를 한번 받습니다. 그리고 10월에서 11월 정도가 되면 최종 선택을 한 번 더 하게 되는데.]
우리 학교에 없는 과목은 권역 내 다른 학교로 가서 듣거나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 있습니다.
교실 풍경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이곳은 고교학점제의 운영을 위해서 마련된 특별한 학습 공간입니다.
제 뒤로 보이는 접이식 문을 활용해서 과목에 따라 교실의 구조를 바꿔가며 수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칠판 옆에 있던 학급 공용 시간표는 사라지고, 사물함도 교실 뒤편이 아닌 '홈베이스'라 부르는 공용공간에 배치됩니다.
[김강연/고교학점제 연구학교 교사 :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책임감을 가지고 자부심도 느끼고 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분명히 고교학점제가 갖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자율성이 부여되지만, 졸업 기준은 엄격해집니다.
과목 출석률 3분의 2 이상, 학업 성취율 40%를 넘겨 3년간 192학점을 취득해야만 졸업할 수 있습니다.
[이지현/고교학점제 연구학교 교사 : 미이수 학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교과 수업을 성실하게 임하는 중요도도 점점 강조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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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경 기자>
충남의 한 고등학교, 공강 시간에 학생들이 대기할 교실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방학인데도 상당수 교사는 출근했습니다.
올해 이 학교 개설 과목은 모두 75개, 1년 전보다 17개 늘었지만 기간제 교사 한 명만 충원됐습니다.
[강승현/충남 지역 고등학교 교사 : 한 명의 교사가 3~4개 이상의 교과목을 담당해야 되기 때문에 수업 준비, 수업의 질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어려움이….]
지역이나 학교 규모에 따라 교육 불평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미 3년 전부터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는 경기도.
한 학년 학급 수가 4개인 학교는 개설 과목 30개, 대부분이 수능 관련 과목입니다.
반면, 학급 수 10개인 학교는 과목수가 76개, 독서토론, 한문고전 읽기, 인공지능, 로봇 등으로 선택의 폭이 넓습니다.
[이선진/경기 지역 고등학교 교사 : 사회과 선생님이 열 분 있는 학교에서와 사회과 선생님이 한두 분 있는 학교에서는 과목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
다만 과목 수가 너무 많아지면 수업의 깊이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경기 지역 고등학교 교사 : 저도 표면적인 것만 알고 애들한테 얘기해 주고, 의아한 부분을 질문하면 얼버무리게 되는 거죠.]
학생마다 시간표를 짜서 움직이는데 지금의 담임제가 적합하냐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김희정/경기교사노조 대변인 : 우리 반 아이들 한 40명 중에 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10명밖에 안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거든요. 그러니까 아이들 관리라든지 지도도 어렵고.]
무엇보다 수능과 상대평가 등 입시 제도와 평가 방식은 그대로라, 학생들이 진짜 원하는 과목을 택하기 어렵고, 도중에 진로를 바꿀 경우 이전 선택과목들이 쓸모없어져, 더 큰, 진로선택을 제약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서울시교육청 고교학점제 설명회 : 1학년 때 2학년 과목을 선택해 놓은 것이 3학년 선택 과목에 영향을 주게 되거든요. 그래서 지도를 잘 그려야 해요. 지도를 잘못 그리면 늪에 빠질 수 있어요.]
[김세윤/예비 고등학생 : 중간에 진로를 바꾸면 전에 희망했던 직업을 위해서 (노력)해온 시간이 허사가 되는 거잖아요.]
교육부는 온라인학교를 도입해 교육 격차를 줄이고, 내신등급을 9에서 5등급으로 완화한다고 했지만 학점제 취지를 살리기 위한 보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영상취재 : 황인석·신동환·설민환, 영상편집 : 이상민·박나영, 디자인 : 방민주·박소연, VJ : 신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