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월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 군인 2명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됐다가 포로로 붙잡힌 북한 병사들이 서방 언론과의 첫 인터뷰를 통해 영문도 모르고 전쟁터로 끌려온 경위 등을 증언했습니다.
심각한 부상 때문에 군의 지침대로 자결하지 못하고 사로잡힌 이들은 '포로는 곧 배신'이라는 낙인을 두려워하면서 앞날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지시간 28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수용소에서 조사받으며 부상을 회복하고 있는 북한 병사 백모(21)씨, 리모(26)씨와 인터뷰를 보도했습니다.
지난달 9일 전쟁터에서 생포된 이들은 모두 대남공작을 담당하는 정찰총국 소속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상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전장에 배치돼 악몽을 경험했습니다.
백 씨는 의사 아버지와 판매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아들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에서는 특권 계층에 속하기 때문에 학교에 다니며 영어를 배우기도 했고, 축구 대표 선수로 뛰기도 했습니다.
교사는 러시아를 '동맹'이라고 가르쳤다고 백 씨는 전했습니다.
백 씨는 친구들과 스마트폰도 사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비록 북한 인트라넷에만 접속할 수 있는 수준이긴 했지만 많은 것을 누리고 자란 셈입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계 여행을 꿈꿨다고도 백 씨는 밝혔습니다.
군 복무는 17세에 시작됐습니다.
2021년 5월 입대 날 "건강히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당부가 부모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소총수로 훈련받으며 각종 건설 공사 현장 사역 등을 하던 백 씨가 러시아로 이동한 건 지난해 11월이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기차를 타고 극동지방에 내린 백 씨는 러시아 군복과 군인 신분증을 받았습니다.
신분증에는 읽을 수도 없는 키릴 문자로 낯선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백 씨는 "러시아로 가는 줄도 몰랐다. 도착한 뒤에야 알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방탄복과 러시아제 소총 등을 지급받은 그는 러시아 교관으로부터 살상용 드론의 운영 방식 등을 배운 뒤 다시 며칠 간의 여정을 거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곧바로 전선 근처의 벙커에 배치된 뒤에야 전쟁의 실감이 덮쳐왔습니다.
"듣기만 하던 전쟁 속으로 실제 들어오니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고 백 씨는 말했습니다.
북한군 지휘관은 12월 31일 부대원들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읽어줬습니다.
파병된 병사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병사에게 주어진 의무에 따라, 백 씨는 읽어주는 내용을 받아 적었습니다.
실제 전쟁터는 러시아인 교관에게 배운 것과도, 상상한 것과도, 김정은 위원장이 격려한 것과도 달랐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의 도로를 막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도보로 장애물을 나르던 백 씨 부대에 포격과 드론 공격이 덮쳤습니다.
땅이 울리는 굉음과 함께 동료들이 쓰러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백 씨도 나뒹굴었습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백 씨는 북한군의 지침대로 자결하려 했지만 이내 의식을 잃었습니다.
차가운 숲에 누워 피를 흘리던 그를 우크라이나군이 발견한 것은 닷새 뒤였습니다.

저격수인 리 씨 역시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고 여행을 꿈꾸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리 씨는 간부들로부터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도와 싸우고 있다고 들었고, 점령당한 러시아 땅을 해방하고 실전 경험을 얻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지난해 10월 러시아 배에 올라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리 씨는 "나는 러시아를 조국처럼 생각하며 싸웠다"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두려움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리 씨에게도 현실은 달랐습니다.
리 씨는 총탄에 팔과 턱을 맞아 위중한 상태로 5명 넘는 동료 병사들의 시신과 함께 발견됐습니다.
리 씨와 백 씨 모두 전쟁 포로를 배신자로 간주하는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앞서 리 씨는 지난 19일 공개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80% 결심했다"며 "우선 난민 신청을 해 대한민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도 귀순 의사가 확인되면 수용하겠다는 원칙을 우크라이나 측에 알린 상태입니다.
양국 관계자들이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WSJ은 전했습니다.
다만 백 씨의 마음은 아직 복잡해 보입니다.
다리를 심각하게 다친 백 씨는 괴저가 심해 발가락 여러 개를 잘라낸 상태로 대부분 시간을 병상에 누워 보냅니다.
백 씨는 "외국인들은 우리와 많이 다른, 심지어 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이곳에 와서 보니 다를 게 없더라.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라며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도 "결국 우리는 하나의 나라, 하나의 민족"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건네받은 메모리 카드에 담긴 K-드라마 속 자본주의 한국의 모습은 여전히 낯선 듯합니다.
백 씨는 수용 거실 TV에서 재생되는 '이태원 클라쓰'를 가리키며 모두가 돈을 좇아 싸우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백 씨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군이 돈 때문에 싸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 전쟁에서 번 돈은 없다"며 "이 전쟁에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단지 명령이기 때문에 싸웠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젤렌스키 대통령 엑스 캡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