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페이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국내 고객의 동의를 받지 않고 4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중국의 알리페이로 넘긴 카카오페이와 애플페이 등에 대한 처분 논의가 이뤄진 지난달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제1∼2회 전체회의에서 애플 측은 이러한 답변으로 일관해 질타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오늘(25일) 개인정보위가 공개한 당시 전체회의 속기록에 따르면 애플의 국내 대리인은 '알리 등 다른 기업에서 (애플의) NSF(점수)를 받아 활용한 국가는 또 어디냐'는 잇단 질문에 "클라이언트(애플 본사)에 말씀드려야 되는 상황이라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 정확히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NSF 점수란 애플이 자사 서비스 내 여러 건의 소액결제를 한 데 묶어 일괄 청구할 때 자금 부족 가능성을 판단하고자 매기는 고객별 점수를 뜻합니다.
앞서 개인정보위 조사 결과 애플은 알리페이에 카카오페이 이용자의 결제정보 전송과 NSF 점수 산출을 위한 개인정보 처리를 위탁하면서, 정보의 국외 이전 내용을 이용자에게 알리지 않은 점이 확인돼 과징금 24억 500만 원을 부과받았습니다.
애플의 국내 대리인은 이 사안의 경위를 입증할 수 있는 문건이 있냐는 질의에도 "담당자 중 퇴사한 분들이 많아 이메일을 못 찾았고, 증빙자료도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개인정보위의 관련 자료 제출 요구에도 "애플 본사에 요청해보겠다"라거나 "찾지 못했다"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이 때문에 처분 수위를 논의하는 다음 회의에선 "(애플이)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여기(까지)밖에 얘기해 줄 수 없다고 하는 게 피심인으로서의 태도인지 의문"이라는 위원들의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다국적 기업 사안이 많아질 테니 세밀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위원들의 당부에 대해 최장혁 개인정보위 부위원장은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관계자들은 다국적 기업에 대한 처분은 국내 기업과 비교하면 한계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라고 짚었습니다.
한 개인정보위 위원은 "국내 기업엔 지속해 문제를 제기하고, 현장 조사까지 벌일 수 있지만, 다국적 기업은 다르다"며 "만약 한국 정부가 국외 기업의 본사로 현장 조사에 나선다면 주권 침해 논란으로까지 번질 수 있어 국가 간 양해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해외 기업의 국내 대리인이 클라이언트(본사)의 허락 없이 바로 답변하긴 어렵다"며 "이들이 홍보나 마케팅 업무 정도만 수행하는 입장이다 보니 주요 정보를 확보하고 있지도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국내에 주소나 영업장이 없는 기업의 경우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고, 개인정보 보호책임자의 업무와 개인정보 유출 등의 통지 및 신고 업무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내 대리인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작년 9월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국내 시장의 직접 진출을 선언한 중국 쇼핑 플랫폼 '테무'의 국내 대리인 근무자는 3명이고, 이 중 상시근무자는 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달 기준 한국의 테무 애플리케이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823만 명인 점을 감안한다면, 국내 대리인 1명이 270만 명이 넘는 국내 고객 정보를 관리해야 하는 셈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토종 기업 입장에서는 역차별에 대한 불만도 감지됩니다.
과거 개인정보위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국내 한 정보통신(IT) 기업 관계자는 "정부 가이드라인 준수 수준이나 조사 협조에 대한 성의 면에서 국내와 국외 기업 간의 차이가 있다"며 "적어도 한국 기업이 국내에서 사업을 벌일 때 불리한 점이 없도록 기준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신종철 연세대 법무대학원 객원교수는 "해외 기업의 국내 매출이나 수집한 개인정보 규모 등을 고려해서 국내 기업과 규제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며 "이들이 개인정보위 조사 거부나 비협조 시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