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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서 '미국 못 믿어'…자체 핵우산 확대안 논의 시동

유럽서 '미국 못 믿어'…자체 핵우산 확대안 논의 시동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방의 적대국인 러시아 편을 노골적으로 들면서 유럽 내에서 자체 핵 억지력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친러 행보를 보이며 유럽 방위에 대한 책임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미국 도움 없이도 핵 공격 위협에 대처할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현지 시간 21일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독일 연방의회 총선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중도보수 기독민주당(CDU)· 기독사회당(CSU) 연합의 총리 후보인 프리드리히 메르츠 CDU 대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통한 미국의 핵 보호 없이도 유럽이 스스로 방어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독일 ZDF방송과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더 이상 나토의 상호 방위 약속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유럽인들은 유럽 대륙을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은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와 함께 나토의 핵 공유 정책에 따라 미국 핵무기를 수용하는 유럽 국가 중 하나입니다.

메르츠 대표는 "우리는 유럽의 두 강대국인 영국과 프랑스와 함께 핵 공유, 또는 최소한 두 나라의 핵 방위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발언은 프랑스의 유럽 군사 협력 강화 계획, 특히 핵 방어 계획을 오랫동안 반대해 온 독일의 중요한 전략적 변화를 예고한다고 폴리티코는 분석했습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2007년 독일과 핵무기 공유 방안을 모색하는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이후로도 프랑스는 독일과 핵 협력을 논의하려 했지만 독일은 미국과의 관계를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때문에 메르켈 총리의 친정인 CDU의 대표가 입장 변화를 보인 것을 프랑스는 크게 환영했습니다.

프랑스 하원 국방위원회 소속 장 루이 티에리오 의원은 메르츠의 발언에 놀라움을 나타내면서 "미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결과 미국의 핵우산이 사라질 수 있는 위험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프랑스의 한 군 정책 담당 관리도 "미래의 (독일) 총리이자, CDU 수장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엄청난 일"이라고 평가하며 "수십 년간 우리는 대서양 횡단주의라는 미명 아래 국방에 대한 관심을 잃고 미국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었는데 이제 유럽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제 궁 관계자도 "프랑스가 2020년 제안한 유럽 핵 방위 논의에 대한 응답"이라며 긍정 평가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0년 2월 7일 파리 군사학교 연설에서 프랑스의 핵 억지력을 유럽 안보에서 어떻게 사용할지를 두고 유럽 국가들과 전략적 대화를 하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영국의 EU 탈퇴로 EU 내 유일한 핵보유국의 정상이 된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안보·국방전략을 세울 때 프랑스의 핵 억지력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당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유럽이 미국과 영국의 핵무기 덕분에 이미 오랫동안 효율적인 핵우산 아래에서 보호받고 있다며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을 일축했습니다.

독일 내 기류 변화는 이미 나토를 통해 유럽 동맹국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는 영국으로서도 반가운 소식으로, 집권 노동당 소속 영국 의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인 탠 데시 의원은 "미국의 존재가 사라지거나 현저히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유럽 대륙의 방위를 위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영국 입장에서는 새로운 유럽 핵 방어 체계를 구축한다는 건 매우 민감한 주제라고 폴리티코는 지적했습니다.

영국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미국과 매우 밀접하게 통합돼 있어 독자적인 유럽 핵 방위 체계를 구축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폴리티코는 프랑스의 핵무기로 독일까지 보호해주는 것을 프랑스 여론이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고도 분석했습니다.

프랑스는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영국과는 달리 나토 측에 핵무기 접근권을 허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핵 방위 체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독일과 영국,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유럽 핵 방위 체계를 논의할 경우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큰 유럽 방위 전략 변화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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