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세계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모든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모든 핵무기, 기존 핵 프로그램 및 기타 대량살상무기(WMD) 및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포기할 것을 북한에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G7 회의에서 북한 비핵화의 CVID 원칙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라는 말은 강경 네오콘이 득세하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며 생겨난 개념입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를 의미했는데, 리비아의 비핵화 작업을 실현할 때 이 개념이 적용됐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합니다.
당시 미국 국무부 군축·국제 안보 담당 차관이었던 존 볼턴이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체'의 뜻을 가진 'Dismantlement' 대신 개념을 확대해 "비핵화"란 의미를 가진 'Denuclearization'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2004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북핵 6자회담에서 CVID 원칙이 북한을 제외한 다섯 나라에 의해 공식 수용됐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강력 반발했습니다.
CVID는 패전국에만 강요하는 주장으로, 평화적인 핵계획을 송두리째 말살하는 굴욕적인 것이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그리고 이 용어 사용을 말아줄 것을 6자회담 의장국 중국에 공식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북한과의 협상을 선택한 부시 정부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첫 참가한 2005년 7월의 4차 6자회담에서부터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해 9월 4차 2단계 6자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을 포함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한반도 비핵화의 설계도를 담은 것으로 평가되는 9.19 공동성명을 채택했습니다.
이후 CVID라는 용어는 미국과 북한 관계, 그리고 북한 비핵화 협상 고비고비마다 다시 등장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 북한 비핵화가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하던 2009년 7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 동의하면 우리는 관계정상화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논의할 의지를 밝힌 발언이었지만 북한은 강력 반발했습니다.
북한 대표단의 리흥식 외무성 군축국장은 "이것은 부시 행정부 시기에 이른바 'CVID'를 그대로 넘겨받은 것"이라고 불쾌감을 피력했습니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으로 일관하며 북한 비핵화 전략을 강하게 추진하지 못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한때 '영구적이고(permanent)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폐기를 의미하는 PVID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자극하는 용어를 자제했습니다.
그 결과 2018년 6월 1차 미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담은 공동성명에서 CVID라는 표현은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당시 미국의 뜻대로 공동성명에 CVID를 명기하려면 그에 준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대북안전보장(CVIG)을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시 공동성명에는 결국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담기게 됐습니다.
대통령직에 복귀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적극적인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번 G7 회의에서 CVID 원칙이 명기된 것은 시의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