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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58년간 노래로 국민 달랜 송대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58년간 노래로 국민 달랜 송대관
▲ 가수 송대관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오늘(7일) 세상을 떠난 가수 송대관은 대표곡 '해뜰날' 가사처럼 무명 시절을 이겨내고 '쨍하고' 성공한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가수였습니다.

1946년 '판소리의 고장'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했지만 수년간 무명 생활을 거쳤습니다.

이후 1970년 '당신은 떠났어도'와 1971년 '세월이 약이겠지요'로 이름을 알렸고, 1975년 '해뜰날'이 크게 히트하면서 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해뜰날'은 마치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경제 개발 시대에 딱 맞는 주제가처럼 울려 퍼졌다"며 "이 노래 때문에 '쨍'이라는 단어가 크게 유행했다"고 말했습니다.

송대관은 이처럼 '해뜰날'을 비롯한 숱한 히트곡으로 가수로 산 58년 동안 많은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노래를 들려줬고, '시대의 응원가'를 만들어냈습니다.

송대관의 '해뜰날'이 히트한 데는 흥이 절로 나는 멜로디와 희망을 주는 가사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1975년 당시는 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정부가 '공연활동 정화대책'을 발표하며 심의를 강화하던 때였습니다.

이 때문에 그때까지 트로트와 함께 가요계를 양분하던 포크와 그룹사운드 팀들이 급격하게 위축됐습니다.

반대로 트로트와 스탠더드 팝 등 복고풍 음악은 인기가 올라갔던 것입니다.

실제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최헌의 '오동잎', 조경수의 '아니야', 김훈의 '나를 두고 아리랑', 최병걸의 '진정 난 몰랐었네',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등 그룹사운드 출신들이 잇따라 트로트를 발표해 인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송대관은 미국 이민을 떠났다가 1980년대 후반 귀국해 1990년대 이후에도 신나고 구수한 멜로디를 앞세워 '차표 한 장', '네 박자', '유행가' 등 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는 수년 전 암 투병을 했고, 이후 이런저런 질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습니다.

몸이 쇠약해진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최근까지 '가요무대' 등 TV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2008년에는 제2대 대한가수협회장에 취임해 가수들의 권익 신장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송대관은 과거 인터뷰에서 "내 신조가 '인조이 마이 라이프'(Enjoy My Life)다. 재방송 없는 인생인데, 열심히 살아도 늘 부족하다"며 "그러나 지금 부족한 것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 작사·작곡가, 연주인, 제작자, 방송인 등 모두가 힘을 합쳐 나아가다 보면 보다 밝은 내일이 반드시 온다"고 긍정적인 인생관을 드러냈습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송대관은 '해뜰날' 등으로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위로를 안겨 준 가수"라며 "1980년대 이후 현철, 설운도, 태진아와 '트로트 4대천왕'으로 불리며 트로트의 전성시대를 일궈냈다"고 평했습니다.

"네 박자 속에 /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울고 웃는 인생사 / 연극 같은 세상사 /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 쿵짝∼." ('네박자')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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