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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반기 들면 쿠데타?…계엄 장군의 문민통제 몰이해 [취재파일]

대통령에 반기 들면 쿠데타?…계엄 장군의 문민통제 몰이해 [취재파일]
▲ 어제(6일) 국회 국조 특위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 왼쪽은 김명수 합참의장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문민통제 체제에서 저 같은 야전에 있는 군인이 대통령이라든가 장관의 명령이 위법이라 생각해서 반기를 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습니까? 제 마음대로 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쿠데타입니다."

12·3 비상계엄 때 계엄군의 국회 작전을 지휘했던 전 수방사령관 이진우가 어제(6일)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한 말입니다. 귀를 의심했습니다. 수방사령관씩이나 했던 별 셋 육군 중장이 민주주의 문민통제를 몰라도 너무 몰라 충격이었습니다.

민주주의 문민통제의 의사결정 원칙은 문민과 군이 치열하게 토의해서 정책 결정하고, 확립된 정책에 군은 순응하는 것입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장군은 대통령에게 반기 들 수 있습니다. 이는 군사 전문가의 소신을 발현하는 것이지, 쿠데타가 아닙니다. 정책이 결정된 다음은 복종만이 길입니다.

12·3 비상계엄은 민주주의 문민통제 의사결정 원칙과 전면 배치됩니다. 이진우 등 계엄 장군들은 12·3 비상계엄의 위헌성, 위법성을 판단할 시간이 충분했지만 침묵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독단에 입 다물고 끌려 다녔습니다. 이진우 전 사령관의 "문민통제 체제에서 대통령 명령에 반기 들면 쿠데타" 발언은 문민통제, 정책 결정, 대통령, 반기 사이의 맥락을 건너뛴 궤변입니다. 지난달 23일 군사법원에선 "계엄군이 국회 본관에 진입한 행동은 기물손괴 정도"라더니… 장병들이 배울까 두렵습니다.

군인들이 사랑하는 민주주의 '객관적 문민통제'


사무엘 헌팅턴의 『군인과 국가(The Soldier and The State)』를 필두로 문민통제 교과서들은 문민통제의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객관적 문민통제와 주관적 문민통제입니다. 객관적 문민통제는 군의 전문직업화를 통해 군인을 군인답게 만들고, 탈정치화를 통해 군이 국민과 국가의 도구가 되는 방식입니다. 요체는 군의 정치 중립입니다. 이에 반해 주관적 문민통제는 문민이 군을 수단으로 삼아 권력을 강화하는 방식입니다. 권력은 군부를 포섭하고, 군부는 권력에 호응하는 정치의 과정이 불가피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문민통제는 객관적 문민통제입니다. 전문직업군의 대표인 장군들은 문민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군사 전문가로 참여합니다. 군을 잘 모르는 대통령, 장관 등 문민 고위직을 상대로 활발하게 전문적인 의견을 개진합니다. 정책 결정은 문민의 선호와 군의 선호를 각각 따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의 선호로 기울든 정책이 결정되면 군은 뒤돌아보지 말고 복종해야 합니다. 한국의 군인들은 열이면 열 객관적 문민통제를 지지합니다.

반면 주관적 문민통제에서 군은 특정 권력을 좇습니다. 그래서 주관적 문민통제는 군의 정치 개입, 정치화와 동시에 작동합니다. 군이 정파의 이익에 복무하는 극단적 상황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민통제입니다. 한국의 군인들은 권력의 노예가 되는 주관적 문민통제를 반대합니다. 열이면 열 그렇습니다. 12·3 비상계엄이 어떤 문민통제에 속하는지 군인들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분간할 수 있습니다.

12·3 비상계엄은 어떤 문민통제?

2023년 11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열린 중장 진급·보직 신고식에서 기념촬영하는 이진우 수방사령관과 윤석열 대통령

계엄 장군들은 계엄 1년 전인 2023년 12월부터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계엄의 의지와 계획을 전해 들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진우 전 사령관도 윤 대통령이나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계엄을 말하는 자리에 두어 번 있었습니다. 계엄을 윤석열 정부의 안보 정책이라고 가정하면 윤 대통령과 계엄 장군들 사이에서 치열한 토의가 진행됐어야 했습니다. 안타깝지만 그 누구의 공소장에도 계엄 토론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계엄 장군들은 대부분 저항 없이 계엄을 수명해 이행했습니다. 전문직업군의 명예를 버리고 권력에 줄을 선 꼴입니다.

한국 군인들이 지향하는 민주적 문민통제인 객관적 문민통제에 12·3 비상계엄과 같은 일방향적 소통의 사례는 없습니다. 12·3 비상계엄은 군이 권력의 도구로 정치에 개입하는 권위주의 국가의 주관적 문민통제와 비슷합니다. 군이 권력의 노예로 전락하는 주관적 문민통제에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쿠데타라고 불릴 법합니다. 이진우 전 사령관의 어제 발언은 권위주의 국가의 주관적 문민통제에서나 통할 망언입니다.

이 전 사령관은 권위주의 국가의 주관적 문민통제주의자에 가깝습니다. 민주주의 객관적 문민통제를 도통 모릅니다. 김용현, 여인형, 문상호 등도 권력에 전문성을 바친 주관적 문민통제의 화신들입니다. 이런 계엄 장군들이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우리 국방의 인사 시스템이 민주주의 문민통제의 관점에서 실패했다는 방증입니다. 군을 뿌리부터 개혁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계엄에 동원됐던 젊은 장병들이 국회에서 엉덩이 뒤로 빼고 엉거주춤 행동했다는 점입니다. 젊은 장병들은 민주주의 문민통제를 내팽개친 계엄 장군들의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주관적 문민통제를 거부했습니다. 12·3 비상계엄에서 건진 작은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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