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형 제약사의 자회사 전·현직 임직원들이 리베이트 용도로 의심되는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횡령한 돈의 사용처는 끝내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앞서 서울서부지검 식의약조사부는 병·의원에 리베이트를 제공할 목적으로 회삿돈 67억여 원을 조성한 혐의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제약회사 종근당의 계열사인 경보제약 전·현직 임직원 4명을 지난달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검찰은 횡령 자금이 어디로 흘러들어 갔는지 추적했지만, 이 돈이 누구를 통해 옮겨지고 어떻게 쓰였는지는 끝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검찰은 경보제약 대표이사를 비롯해 영업 직원 등 10여 명은 지난달 26일 불기소 처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리베이트 의심 정황은 있지만"…끝내 용처 못 밝혀내
재판에 넘겨진 경보제약 전·현직 임직원 4명은 67억여 원이 리베이트 자금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는 영업 활동비였다는 겁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 돈이 리베이트 용도로 조성된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제약사 사원과 가족들이 이 돈을 전액 100만 원권 자기앞수표로 인출한 점이 드러났고, 2019년과 2020년 거액의 자금을 리베이트 용도로 지출했다는 회사 내부 보고서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통상의 의료계 리베이트 사건과 달리 이번에는 약사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자금의 흐름을 추척하고 경보제약 영업 직원 등을 조사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포착하지 못한 겁니다.
리베이트를 제공했다는 관계자들의 구체적인 진술이 나오지 않았고, 리베이트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병원들을 특정하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 1년 넘게 수사했지만…대표이사 '혐의 없음' 결론
경보제약 대표이사에 대한 불기소 결정서를 보면 검찰은 해당 돈을 리베이트로 제공했다는 일부 진술을 확보하긴 했습니다.
자기앞수표를 현금화해 거래처 리베이트로 제공하거나 사비로 먼저 지급한 리베이트 비용을 보전받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영업 직원의 진술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리베이트를 제공한 구체적 일시·금액과 관련한 증언은 없었기 때문에 검찰은 약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또, 경보제약 관련자들은 67억여 원의 조성과 인출 과정에 대표이사가 관여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1년 넘게 이뤄진 수사는 부정한 목적으로 돈이 조성된 내용만 밝히는 데 그쳤습니다.
◆ "사건의 중요한 실체 안 드러났다"…공익신고자 '항고'
이번 사건은 공익신고자 A 씨가 경보제약이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전국 병·의원 수백 곳에 약값의 20%가량을 현금 등으로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400억 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고 2021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하면서 본격화됐습니다.
A 씨 측은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자 가장 중요한 실체는 드러나지 않아 재수사가 필요하다며 검찰에 항고장을 제출했습니다.
검찰이 확보한 전표 등만 보더라도 50만 원 이상을 지출할 때는 대표이사의 결재가 이뤄졌다며, 직원들의 10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 발행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대표이사의 주장을 검찰이 받아들인 건 수용하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리베이트를 확인할 수 있는 보고서와 기안 서류, 경위서 및 녹취도 존재했지만, 영업 사원들의 구체적 진술이 존재하지 않아 쓰임새 파악을 못 했다는 것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A 씨 측은 검찰 논리대로라면 자백에 의존한 수사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근절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도 꼬집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