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하고자 트랜스젠더가 된 멕시코 마약상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가 올해 아카데미(오스카)상 최다 후보에 올랐습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발표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명단에 따르면 '에밀리아 페레즈'는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조연상, 외국어영화상, 촬영상, 각색상 등 총 13개(12부문) 후보로 지명됐습니다.
프랑스 거장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수장이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하고자 아무도 모르게 여자로 다시 태어나 인생 2막을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실제 트랜스젠더인 배우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또 스페인어로 제작된 이 영화는 역대 영어가 아닌 언어로 제작된 영화 중 아카데미 후보에 최다 지명된 영화로 기록됐습니다.
'에밀리아 페레즈'의 뒤를 이어 작년 흥행작인 뮤지컬 영화 '위키드'와 유명 제작사 A24의 상영시간 3시간 35분짜리 대작 '브루탈리스트'가 각각 10개 후보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개봉한 실사영화 중 '데드풀과 울버린'에 이어 세계 흥행 수입 2위를 기록한 SF 영화 '듄: 파트2'는 아카데미 5개 후보에 올라 전작 '듄'(2022년 10개 후보)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작년 최대 흥행작인 픽사 스튜디오의 '인사이드 아웃 2'는 장편 애니메이션 후보에 올라 올해 골든글로브 수상작인 유럽 애니메이션 '플로우' 등과 경쟁합니다.
가장 주목받는 작품상 부문에서는 '에밀리아 페레즈'와 '위키드', '브루탈리스트', '듄: 파트2', '아노라', '컴플리트 언노운', '아임 스틸 히어', '니클의 소년들', '서브스턴스' 등 10편이 경합을 벌입니다.
'서브스턴스'의 주연배우 데미 무어는 올해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이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라 '위키드'의 신시아 에리보 등과 경쟁합니다.
영화 '마리아'로 오랜만에 여우주연상을 노린 앤젤리나 졸리는 이번 아카데미 후보 명단에 들지 못했습니다.
연기상 부문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어둡게 그린 영화 '어프렌티스'의 두 핵심 배우가 남우주연상(서배스천 스탠)과 남우조연상(제러미 스트롱) 후보에 나란히 올라 눈길을 끌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을 싸잡아 "인간쓰레기"(human scum)라고 지칭한 바 있습니다.
남우주연상 후보로는 '어프렌티스'의 스탠과 함께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밥 딜런을 연기한 청춘스타 티모테 샬라메와 '브루탈리스트'의 연기파 배우 에이드리언 브로디, '콘클라베'의 랠프 파인스 등이 경쟁합니다.
'위키드'에 출연한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는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에밀리아 페레즈'의 조 샐다나, '콘클라베'의 이사벨라 로셀리니 등과 경합합니다.
한국과 관련된 작품으로는 그림책 작가인 백희나의 '알사탕'을 원작으로 한 동명(영어 제목 '매직 캔디즈')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로 올라 수상에 도전합니다.
21분 분량의 이 애니메이션은 소통에 서툰 동동이가 신비한 알사탕을 만나며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번 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3월 2일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리며 유명 방송인 코넌 오브라이언이 진행을 맡았습니다.
이번 시상식은 LA에서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대형 산불과 수많은 피해자를 고려해 조촐하게 치러질 예정입니다.
주최 측은 올해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가수의 축하 공연을 생략하기로 했다면서 "전 세계 영화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작품을 기념하고 산불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사람들을 기리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