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명문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에서 동양인 최초, 여성 최초로 제2바이올린 악장을 지낸 이지혜 씨,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비롯한 유명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두각을 드러낸 김태형 씨. 독주자로서도 일가를 이룬 이들은 25년지기 친구 사이죠.
이들이 재미로 시작했다가 10년 이상 함께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트리오 가온'이라는 실내악 팀인데요, 첼리스트 사무엘 루츠커와 함께 하는 트리오 가온은 멤버들이 한국과 독일에 흩어져 있지만 계속 연주하고 음반을 녹음하고 있습니다. 팀 결성 계기와 우리말로 지은 이름의 의미, 연주 여행 중 에피소드 등등, 우정의 결실인 트리오 가온 이야기 직접 들어봅니다.
김수현 기자 : 트리오 가온이라는 이름은 누가 만드신 거예요?
김태형 피아니스트 : 후보를 고르다가 '이거다' 싶은 느낌이 있었어서 가온으로 정하게 된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가온'은 우리말로 지은 거잖아요. 어떤 의미인지 소개해 주세요.
김태형 피아니스트 : '세상의 중심', 또 하나는 '온도를 가하다'. 거창하게 표현을 하자면 저희 세 명이 세상의 중심에 모여서 저희의 음악을 연주하면서 음악으로 온도를 가한다.
김수현 기자 : 뜨끈뜨끈하게.
김태형 피아니스트 : 또 하나는 유럽에서 발음하기 편한 걸 찾았어요. 그래서 '가온'. 많은 분들이 물어보시고 궁금해하시고, 그러면서 조금 더 호기심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트리오 가온은 언제 결성된 거예요?
김태형 피아니스트 : 2013년이요.
이지혜 바이올리니스트 : 이번에 11주년, 작년에 10주년이었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그렇네요. 어떻게 하다가 '우리가 트리오 가온을 만들어 보자' 하셨나요?
김태형 피아니스트 : 제가 그즈음에 러시아 공부를 마치고 다시 뮌헨으로 돌아올 즈음이었고요. (이지혜 바이올리니스트는) 그때 이미 보스턴에서 공부를 하다가 뮌헨으로 이주를 한 상태였고요. 그래서 제가 모스크바에서 전화를 했었어요. '한번 해보고 싶은데'(하고)... 근데 저희가 뭘 정할 때 항상 다 그런 것 같아요. '좋은데 그냥 해보지 뭐'. 딱히 '지금 이런 계획이 있는데 트리오 할까 말까?' 이러지 않고, 그냥 '재밌겠는데' 좋아서 그렇게 하게 됐고.
김수현 기자 : 첼리스트는 어떻게 물색을 하신 거예요?
김태형 피아니스트 : 지금 같이 활동하고 있는 사무엘 루츠커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에서 만난 친구예요. 지혜 씨가 한번 만나보라고 자리를 마련해 줘서 피자 먹었던 것 같아요. 그랬더니 너무너무 눈치를 보는 거예요. 제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자꾸 살피는 거예요. 저는 이미 처음 몇 마디에서 마음을 열었는데.
이지혜 바이올리니스트 : 너무 좋아했는데, 저는 성격을 조금 아니까.
김수현 기자 : 아, 어떤 성격이에요?
이지혜 바이올리니스트 : 나름 쉽지 않고 섬세한. 근데 또 저희 첼리스트는 성격이 아이 같거든요. 순수하다고 해야 되나?
김태형 피아니스트 : 그리고 저쪽(사무엘 루츠커)도 지혜 씨한테 되게 많이 물어봤다고 알고 있어요. 제가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고.
이병희 아나운서 : 아 정말요?
이지혜 바이올리니스트 : 이 첼리스트는 워낙 또 그런 거에 되게 예민한 면이 있어서 저한테 계속 '근데 별로 태형이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것 같지 않았어?'
김태형 피아니스트 : 맞아요 그랬어요. 저는 별 생각 없이 마음을 열고 피자 먹고 재미있어하고 있었는데.
김수현 기자 : 피자 먹는 데 열중해서.
김태형 피아니스트 : 아니 지금 일단 마음은 열었고, 그전에 제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연주를 보러 갔었어요. 기억이 난다. 그때 쇼스타코비치를 했어요. 그 부분에 첼리스트들이 어떻게 약간 이렇게 했는데, 제가 느끼는 저 첼로 파트는 좀 다르게 표현을 할 것 같은데? 하고 있는데 샘(사무엘 루츠커)이 혼자 모션을 그렇게 하면서 (연주)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 저걸 저렇게 느끼는구나. 나도 저렇게 느끼고 있는데' 했던 부분이 하나가 있었고, 사전에.
김수현 기자 : 아, 이미 통했구나.
이지혜 바이올리니스트 : 모르는 얘기였어요. 처음 들어봐요.
김수현 기자 : 이미 다 마음을 열었는데 정작 두 분은 모르시고.
이지혜 바이올리니스트 : 저도 눈치 보고, 첼리스트는 첼리스트대로 눈치 보고, 둘이 만나서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 이랬는데, 너무 바로 한 번에, 그래서 바로 리딩하고.
김태형 피아니스트 : 맞아 리딩했다.
이지혜 바이올리니스트 : 그리고 그때 다 알았어요.
김수현 기자 : 피자 먹을 때는 잘 모르다가. (웃음) 근데 참 실내악이 어렵다고들 하더라고요. 오케스트라 맞추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런 얘기도 하시던데.
이지혜 바이올리니스트 : 다른 면으로 어려운 게 또 실내악에서는 있는 것 같아요. 당연히 스트링 쿼텟(현악 4중주)이랑 피아노가 들어가는 편성이랑 좀 다르게 어렵긴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대규모의 사람들이 좀 큰 규모라 각자의 역할이 다르다면 실내악에서는 각자의 역할이 도드라지게 중요하게 나타나고. 그런데 또 서로의 융합, 어우러짐이 너무 중요해서 음악뿐 아니라 인간관계로도 굉장히 큰 과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어느 한 단체를 오랫동안 갖고 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굉장한 일이라는 걸 점점 더 느끼고 있긴 해요.
이병희 아나운서 : 11년.
김수현 기자 : 그동안 위기는 없으셨나요? '아, 더 이상 못하겠다' 이런.
이지혜 바이올리니스트 : 어떻게 말해야 되지?
이병희 아나운서 : 뭔가 지금 입이 막 이렇게 말씀하고 싶은. (웃음)
김태형 피아니스트 : 무대 위에서뿐만이 아니고, 연주하러 가는 곳까지의 여정, 여행도 같이해야 되고.
김수현 기자 : 그렇죠. 계속 같이 해야 되잖아요.
김태형 피아니스트 : 스타일이 사실 좀 다를 수도 있는 것 같은데, 싫어하는 것을 안 하면 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해주면 좋지만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 것 같아요. 싫어하는 걸 하면 거슬리지 않나 싶어요. 이제 서로 어느 정도 잘 아니까 그런 것들을 좀 잘 배려하는 것 같고.
김수현 기자 : 그런데 지금은 첼리스트는 독일에 있고 두 분은 한국에 계셔서 자주 만나기는 어렵잖아요. 어떻게 하고 계세요?
김태형 피아니스트 : 제가 처음에 한국으로 들어갈 때부터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이후에 충분히 계속해오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혜 씨가 한국으로 들어올 때도 첼리스트가 조금 더 걱정은 했지만 제가 해온 대로 또 잘 돌아가지 않을까 싶었고. 그렇게 해서 저희가 올해만 해도 1월에 만나서 연주를 하고 레코딩까지 했고, 4월에 굉장히 유명한 독일 페스티벌 가서 연주도 했고, 그런 식으로 저희가 조정할 수 있는 선 안에서 계속 연주를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하고 있어서, 내년 1월에도 있고, 4월에는 우리나라에서 하고, 6월에는 독일에서 이곳저곳 잡혀 있고, 그런 식으로 맞춰가면서 하고 있어요. 저희가 또 <방학>이라는 곡이 있어서 그때 맞춰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끝나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 이런 것보다 '그냥 해보는 거지, 뭐' 이런 마인드인 것 같아요. 그래서 되는 대로,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같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