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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서 공연된 레미제라블 '민중의 노래'…그런데 대통령의 애창곡이라고? [스프]

[커튼콜+] 전당대회 대통령 입장곡으로 쓰기도…그는 이 곡의 의미를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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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대통령 파면을 요구하는 집회 무대에서 뮤지컬 넘버가 울려 퍼졌습니다. 무대의 주인공은 시함뮤,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로 불리는 팀이었습니다. 시함뮤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당시 촛불집회 무대에 처음 섰던 팀입니다. 고정된 멤버로 구성된 공식 단체는 아닙니다. 뜻이 맞고 일정이 되는 뮤지컬 배우와 스태프들이 그때그때 참여합니다.

시함뮤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인 지난해 12월 21일, 동십자각에서 열린 집회 무대에 다시 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이후 8년 만에, 또다시 대통령 파면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려 공연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합니다. 시함뮤가 2016년 촛불집회 때 여러 차례 공연하면서 즐겨 불렀고, 8년 만에 다시 선 집회 무대에서도 맨 처음 부른 곡은 바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대표 뮤지컬 넘버인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였습니다.

김수현 커튼콜+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 심장 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리네 /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노래 도입부를 선창한 배우 이아진 씨는 2016년 촛불집회 공연 때 주축이 되었던 가수 겸 배우 이정열 씨의 딸이라는 인연도 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로도 친숙한 김국희 씨를 비롯한 배우 19명과 여러 스태프들이 시함뮤의 이번 무대에 참여했습니다.

노래 도중 '너는 듣고 있는가'가 불리는 부분에서 배우들은 몸을 돌려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바로 헌법재판소가 있는 방향이었습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였으니, 헌법재판관들이 민중의 외침을 들어달라는 바람이 담긴 몸짓이었던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당시에는 청와대 쪽을 가리키는 퍼포먼스를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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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함뮤' 집회 공연 보기 (24년 12월 28일, SBS D리포트)

'레미제라블'의 원작은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처럼, 빵을 훔친 죄로 오랜 징역 생활을 한 장발장을 비롯해, 고난 속에 사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1832년 프랑스의 '6월 항쟁'이 주인공들의 운명을 바꾸는 주된 사건으로 다뤄지는데, '민중의 노래'는 바로 이 6월 항쟁의 혁명가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 영화 레미제라블 '민중의 노래' 보기
▷ 뮤지컬 레미제라블 한국어 초연 '민중의 노래' 보기

이 노래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며, 현실의 억압을 타파하려는 시민들의 외침을 담고 있습니다. 노래 가사 그대로 심장 박동을 요동치게 하는 감동적인 곡이죠.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독재 권력에 맞서 싸우는 시위,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단골로 불리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위 현장에서 사랑받는 '민중의 노래'가 윤석열 대통령의 애창곡이기도 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 사실은 지난 2023년 3월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알려졌는데요, 경기도 킨텍스 전당대회장에 대통령이 당원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입장할 때, 연주곡으로 편곡된 이 노래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2023년 3월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참석해 축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시 영상 보기 (01:04:29부터 '민중의 노래' 연주곡이 울려 퍼지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입장하는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 곡을 썼을까요. '민중의 노래'를 집권당 전당대회에서 장식으로 가져다 썼다면서 모욕감을 느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이 곡이 뮤지컬에서 쓰인 맥락을 안다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입장곡으로 쓰는 게 어색하다는 생각을 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당시엔 국민의힘 소속이었던 이준석 현 개혁신당 의원은 '대통령 입장 음악으로 이걸 고른 사람은 윤리위 가야 할 듯'이라고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분노한 사람들의 노래'라는 가사의 내용과 당시 그가 주창해 온 친윤(친윤석열) 그룹을 향한 '분노 투표'를 정치적 맥락으로 연결시켜 비꼰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그러자 김행 전 비상대책위원이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실에서도 이 곡을 쓴 적이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용산 내부에 전체 비서관들과 오찬할 때 이 곡을 사용했는데 대통령님이 입장하면서 이 곡을 들으시고 '자유에 관한 곡이며 내가 좋아하는 곡'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도 이 곡이 대통령의 애창곡/애청곡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해 군을 동원하고, 포고령을 내려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언론 출판 자유도 제한하고, 반대하는 세력은 '반국가세력'으로 '처단'하겠다고 했던 대통령입니다. '민중의 노래'를 부르는 '민중'과는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사람이 이 노래를 좋아한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김수현 커튼콜+
그는 이 곡에서 느껴지는 '영웅적인 분위기'에 취했던 것일까요? 개인의 음악적 취향 탓으로만 돌리기는 좀 찜찜합니다. 그동안 대통령 측에서 구사해 온 워딩과 용례를 보면, 그는 이상한 사전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전에 따르면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수많은 국민들이 '반국가세력'이요 '종북세력'입니다. 이 사전에서 '민중'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민중의 노래'는 '자유에 관한 곡'이라고 했다는데, 과연 그가 생각하는 '자유'란 무엇일까요? 반대 세력을 척결하고 내 뜻에 맞는 사람들끼리만 누리는 자유일까요? 그의 사전에 따른 자의적인 해석으로는, 군을 동원해 계엄을 선포하고 반대 세력 처단에 나서는 자신의 모습을 '민중의 노래'를 부르는 혁명가들과 나란히 놓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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