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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소극적 저항'의 소중함 일깨운 그날 밤 [스프]

[갑갑한 오피스] (글 : 권남표 노무사)

권남표 갑갑한 오피스 썸네일12월 3일 계엄령의 충격으로 어지러운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되기 직전 저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평소에 갖고 싶었던 메이커 제품이 블랙프라이데이를 앞두고 파격 할인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TV와 노트북을 두고서 각을 재다가 둘 다 살 수 없다는 호주머니 사정을 알아차리고서 다소 상심하고 있던 차에 SNS에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농담 같은 옛날 말도 들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뉴스와 유튜브, 메신저 방이 계엄령으로 뒤덮였고, 포고령이 이어졌고, 헬기가 날아갔고, 국회 앞은 시민들과 경찰, 군인으로 가득 차 혼란스러웠습니다. 쇼핑을 마치고 싶었지만, 당장 국회 앞으로 모여야 한다는 정치인의 메시지와 계엄령이 선포되고 나면 통행이 금지된다는 뉴스와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누가 영장 없이 잡혀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다며 전화를 하라는 이야기 속에서 소중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고, 이 소란 속에 비상식량을 챙겨야 할까? 하면서 주방에 라면이 몇 개인지 그리고 며칠이나 집에만 있을 수 있는지 계산을 했습니다.

뒤늦게 잠들고 난 다음 날 아침 출근길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았고, 왜인지 더 피곤해 보였습니다. 그날은 보육교사들이 일하는 어린이집에 방문하는 날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그랬습니다. "어젯밤 그 소동에 출근해야 하는 건지 물어볼까 했어요" 말하는 그이는 평소보다 늦게 잠들었는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한낱 소동에 그친 계엄령이 선포되고 윤석열의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우리는 출근을 했을까요? '일상이 깨지는 난동 속에서 어떤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적인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고 충성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경찰과 군인의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계엄령과 포고령이 선포된 뒤 그 세부 명령으로 정치인들을 체포하고, 시민들의 국회 진입을 제한하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하여 서버를 확보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웃음이 얼굴에 피어나는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국군방첩사령부의 요원들이 선거관리위원회로 출동하다가 위례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먹고, 주변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동네를 배회하며 시간을 끌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국회에 진입한 무장한 계엄군은 시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보좌관과 국회의원을 적극적으로 납치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소극적인 저항의 스토리도 나왔습니다.

명령의 수행을 우리는 작전 수행이라고도 하지만, 더 큰 틀에서는 지시받은 일을 해 생계와 자아실현을 하는 노동이라고 합니다. 내란 수괴의 명령이 소극적으로 저항한 군인과 경찰에게는 이렇게 들렸을지 모릅니다. 국회의원 체포가 아니라 납치, 국회 진입 제한이 아니라 무단 점거, 서버 확보가 아니라 탈취라고 말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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