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데다 세밑에 일어난 비행기 사고로 국가애도기간까지 겹친 상황에서 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가 예년처럼 으레 하는 새해 결심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시기인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뉴스가 어디까지나 '외신'에 속하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란에는 예년과 크게 다름없는 새해맞이 칼럼들이 올라왔습니다. (물론 절반 가까이는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 관한 칼럼이지만요.)
오늘은 이 가운데 눈에 띈 깔끔한 집 정리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심리치료사의 글 한 편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은 집을, 자기 방을, 일하는 공간을, 머문 자리를 깔끔하게 치우고 정리하는 편에 드시나요? 아니면 정리를 안 하거나 못 한다고 같이 사는 사람에게 핀잔을 받는 쪽인가요? 세상에 의견과 성향이 갈리는 많은 문제는 옳고 그름을 논하기 어려운, 말 그대로 '성격 차이' 아니면 '취향 차이'에 드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정리 잘 못 하는 성격이 남한테 명시적인 피해를 준다고 보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그러나 또 그런 문제 가운데 적잖은 경우 이른바 헤게모니를 쥔 쪽이 있습니다. 다수가 따르는 방식이 대세를 넘어 정답으로 간주되고, 그에 맞지 않게, 다르게, 반대로 사는 사람들은 손가락질받기 십상입니다.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이런 문제는 꽤 많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저는 '아침형 인간'이 누리는 헤게모니를 꼽겠습니다. 아침형 인간이 소위 올빼미족보다 더 부지런하고, 효율적이며, 착실하고 근면하다는 생각을 사람들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입니다. 일찍 일어나서 남들이 아직 마지막 단잠을 자는 시간에 무언가를 하는 생활 주기에 무려 기적을 뜻하는 '미라클 모닝'이란 말이 붙었을 정도니까요.
저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남들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전형적인 올빼미족으로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에게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의지가 빈약하고 심지어 능력도 부족하다는 낙인과 딱지를 붙이는 건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수면 주기가 다르고, 생활 패턴이 다를 뿐입니다. 정해진 근무 시간에 출퇴근해야 하는 일을 한다면 그 시간을 지키지 못 하는 게 책망받을 일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알아서 일을 잘하고 있는데도 함부로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불필요한 일입니다.
'부당한 헤게모니'의 사례는 또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부지런한 사람이 칭송받는 것도 지나치면 문제가 됩니다. 부지런하고 근면한 태도가 물론 좋기는 하지만, 누구만큼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은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규정할 권리는 사실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자기만의 속도에 맞춰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사람은 다 열심히 사는 겁니다.
깔끔한 사람이나 정리를 잘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를 본능적으로 선호할 겁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어지른 공간을 누가 와서 싹 치우고 정리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깔끔한 정도,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정리의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따라 어려서부터 몸에 밴 정리하는 능력도 천차만별일 겁니다. 정리벽이 남다른 이도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이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정리 무능력자'도 있을 겁니다. 저는 이것도 성향 차이로 받아들여야지, 옳고 그름으로 규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정리를 잘 못 하는 사람이 못나고 무능하다고 손가락질받는 건 부당하고 지나치다는 겁니다. 일상이 정돈돼 있지 않은 사람 중에도 잘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이 주장에 대한 일리 있고 타당한 반론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왕이면 깔끔한 것이 낫지 않느냐"는 주장이죠. 이 말도 맞습니다. 다만 어수선하거나 정리가 덜 돼 있거나 (자의적인 기준에 비추어) 깔끔하지 못 하다는 이유로 정리하는 능력 외의 것까지 의심받고 부정당하는 건 잘못됐다는 겁니다. 칼럼을 쓴 KC 데이비스처럼 깔끔한 사람이 보기엔 정신없어 보이는 공간에서 창의적인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사람들 기준에선 어수선하지 않은, 나름대로 정리가 돼 있는 공간에서 일하는 셈이니까요. 주장을 명확하게 다듬기 어려운 건 글머리에 언급했듯이 세상의 많은 일, 특히 개인의 성향에 관한 일은 옳고 그름을 논하기 어려운, 정답이 없는 문제라서 그렇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세간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을 만한 잣대를 솔직하고 냉철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 기준도 없이 만사를 귀찮아하고 주위를 마구 어지르며, 지나간 자리마다 흔적을 남기는 사람은 당연히 문제일 겁니다. 너무 사방을 어질러놓고 정신없이 사는 건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 본인뿐입니다. '나는 이 정도만 정리해 놓고 일할 때 가장 능률이 오른다'고 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와 있다면, 그건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에 따라 나오는 업무의 효율과 그에 대한 보상, 성과도 당연히 본인이 책임지면 되는 거죠.
다만 일상의 공간을 함께 쓰는 이가 있을 경우엔 좀 더 세심하게 소통하고 조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집에 사는 가족이나 룸메이트 사이에 공유하는 공간, 또 사무실을 같이 쓰는 직장 동료에게 모두 해당하는 이야기죠. 이때는 내 기준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기준도 이해하며 접점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건 상대적이라서 정말 깔끔한 사람과 사는 집 안에선 정리를 못 한다고 구박받는 사람이 사무실에선 가장 깔끔해서 전반적인 청결, 정리를 책임지는 사람일 때도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