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도심을 하얗게 뒤덮는 함박눈은 직장인에게 마냥 반가운 소식만은 아닙니다.
쌓인 눈으로 대중교통이 지연되고 얼어붙은 도로 곳곳이 정체되면 출근길 '대란'이 빚어지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7일 서울에 16cm가 넘는 기록적 폭설이 내렸을 때도 많은 직장인은 제시간에 출근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제주도나 해외로 떠난 여행객 중에는 항공편이 결항해 출근이 불가능해진 이들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이맘때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폭설로 출근 못 하면 무단결근인가요?" 등의 질문이 올라오곤 합니다.
과연 폭설은 정당한 지각이나 결근 사유로 인정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행법에 천재지변과 관련한 근무 규정이 없어 회사가 별도로 이를 허가하지 않는 한 인정될 수 없습니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은 지진, 홍수, 폭설, 태풍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결근에 대한 처리기준과 방법에 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천재지변으로 인한 지각·결근도 개인적 사유와 마찬가지로 간주하며, 출퇴근 시간 조정이나 유급 휴가 여부는 전적으로 개별 사업장의 내규나 고용주의 재량에 달려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사업주는 근로자가 천재지변으로 결근해도 임금을 공제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해당 주에 주휴일(1주일간 정해진 근로일을 모두 채워 일하면 주어지는 주 1회의 유급휴일)을 부여하지 않아도 되며, 1년 미만 근속자는 연차휴가도 부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각사별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천재지변으로 인한 지각을 용인하거나 결근 시 유급으로 처리한다는 공가 규정이 있다면 근로자는 불이익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일선 기업들은 대부분 출근이 어려울 정도의 폭설이 내리면 규정 외로 재택근무를 허용해주거나 출근 시간을 1∼2시간 늦춰주고 있습니다.
회사가 이런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근로자는 개인 연차를 소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7월 발표한 직장인 1천 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1.4%는 '정부가 재택근무·출퇴근 시간 조정 등을 권고한 상황에서도 정시 출근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15.9%는 '자연재해 상황에서 지각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거나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연차는 강제할 수 없어 근로자가 개인적으로 연차를 쓸 의사가 있다면 사용해야 하고, 회사가 별도로 정한 규정이 있으면 그에 따르면 된다"며 "법적으로 정당한 결근 내지 지각 사유로 인정할 근거 조항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공무원은 국가 및 지방공무원의 경우 복무규정에 따라 공가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복무규정은 '천재지변, 교통차단 또는 그 밖의 사유로 출근이 불가능할 때' 기관장이 직접 필요한 기간 또는 시간을 공가로 승인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공가는 질병·부상에 따른 병가의 원인 외에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허가되는 공적 휴가로, 연가·병가와 다른 별도의 휴가입니다.
임금도 전액 지급됩니다.
다만 '천재지변' 또는 '교통차단'의 범위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기관장의 재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폭우·폭설 등으로 시설물이 파괴되거나 통근 수단이 현저히 마비될 정도가 아니라면 공가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010년 1월 폭설로 교통대란이 빚어져 정시에 출근하지 못한 공무원들이 속출하자 천재지변에 의한 것으로 판단해 지각 처리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2022년 8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을 때 수도권 공공기관 및 산하기관은 출근 시각을 오전 11시로 늦추기도 했습니다.
대안으로는 노동관계법에 기후 유급휴가 제도를 신설하는 방법, 공무원 복무규정처럼 공가 규정을 명문화하는 방법, 취업규칙·단체협약에 폭우·폭설 등을 증빙할 수 있는 경우 지각·결근을 부득이한 상황으로 명시하는 방법 등이 제안됩니다.
조주희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기후 변화로 매해 폭염, 폭우 등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가 심해지고 있다"며 "변화하는 환경에서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 실질적인 제도와 법령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