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스포츠취재부 야구조 기자들이 매주 색다른 관점으로 야구를 들여다 봅니다.
2024년의 마지막을 앞두고 또 하나의 대형 트레이드가 성사됐습니다. 올해 7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KIA가 2년 연속 정상 도전을 선언하며 키움에서 조상우를 영입한 겁니다. KIA가 키움에게 내준 대가는 1라운드 10번째 픽, 4라운드 40번째 픽 등 총 두 장의 지명권과 10억 원이었습니다.
지난 2020년 4월 KBO 이사회에서 지명권 거래가 허용된 이후 리그에서 벌어진 트레이드는 모두 14건입니다. 그중 최근 두 번은 두 장의 지명권이 포함됐습니다. 특히 지명권 확보에 적극적인 키움을 중심으로 지명권 트레이드는 더 이상 야구팬들에게 낯설지 않은 개념이 됐습니다.
야구팬들에게 이런 지명권 트레이드의 소소한 문제점(?)은 당장의 손익 계산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트레이드 지명권이 대략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이번 조상우 트레이드와 관련해서도 야구팬들의 전반적인 여론은 '윈나우'를 선언한 KIA가 영리한 움직임을 펼쳤다는 것이었지만, 두 팀 다 윈-윈이라거나, 오히려 FA까지 1년을 남긴 조상우를 키움이 빨리 잘 팔았다는 의견도 일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지명권의 가치를 잴 방법이 전혀 없을까요? 지난 수년간 드래프트 된 선수들에 대한 분석을 이어온 <야구수다>에서는 10개 구단이 드래프트에 참가한 2014년 이후의 드래프트 데이터와 선수들의 WAR을 접목해 드래프트 픽의 가치를 국내 최초로 평가해 봤습니다.
이런 시도에서 가장 큰 문제는 2014~2022 드래프트에서 선수의 가치대로 순번이 정해지는 전면 드래프트가 아니라 지역 내 유망주를 우선 선발하도록 돼 있는 1차 지명이 유지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구수다>는 지명 순서에 상관없이 ‘더 출중하다고 평가받는 유망주가 더 많은 계약금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가정하에 2014년 이후 드래프트를 계약금 순서대로 재조정했습니다.
2018년 드래프트에서 뽑힌 110명 가운데 가장 많은 계약금(6억 원)을 받은 안우진을 1R 1번으로, 2022년 드래프트에서 한화에 5억 원을 받고 입단한 문동주를 1R 1번으로 간주한 겁니다. 비슷한 순번에 같은 계약금을 받은 선수가 여러 명이어서 순위를 매기기 곤란하다면(6위~12위가 모두 같은 계약금을 받은 경우), 그 선수들을 모두 더해 평균 내는 방법으로 절충했습니다.
1번의 가치 = 1.53 = 2024 최형우?
물론 쉽사리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선수도 있었습니다. 사실상 순수 타자로는 유일하게 1R 1번 자리에 이름을 올린 두산 김대한(3.5억, 2019년 드래프트 공동 1위)은 2019년 이후 4시즌 동안 -1.19의 WAR을 기록하는 데 그치고 있고, 2014년 KT의 신생팀 특별 지명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린 류희운은 7시즌 동안 -0.57의 WAR을 쌓고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공동 1위를 포함해 가장 높은 순위에 지명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15명의 누적 WAR은 105.31, 연평균 WAR은 1.53이었습니다. 지난 시즌, 이와 가장 비슷한 기록을 낸 선수는 KIA의 지명타자 최형우(1.54)입니다. FA 취득까지의 서비스 타임이 7년~8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전면 드래프트 1R 1번 지명권은 평균적으로 봐도 올해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최형우를 그 기간만큼 보유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셈입니다.
10번과 40번. 일단 긁어봐야 안다?
10번째 픽 언저리의 지명자 중 가장 높은 가치를 자랑하는 건 2014년 KT에 지명돼 롯데로 트레이드된 선발투수 박세웅(2억, 2014년 드래프트 공동 6위)이었습니다. 10년 동안 총 30.55의 WAR을 기록했고, 연평균 3.06의 WAR을 쌓았습니다. 국가대표 유격수로 성장한 NC의 김주원(1.5억, 2021년 드래프트 공동 10위)과 KIA의 우승 마무리 정해영(2억, 2020년 드래프트 공동 7위)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아직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키움 박주홍(2억, 2020년 드래프트 공동 7위)은 5시즌 동안 –1.6의 WAR을 기록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10위권 근처의 지명자 40명 중 1군에 데뷔하지 못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들이 쌓은 누적 WAR 94.13, 연평균 WAR은 0.55였습니다.
40번째 픽 언저리의 지명자도 따로 살펴봤습니다. 가장 돋보이는 건 KBO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골드글러브 수상의 영광을 안은 김하성(1억, 2014년 드래프트 공동 35위)이었습니다. 7시즌 동안 총 32.66의 WAR을 쌓았고, 연평균 4.67의 WAR을 기록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선수는 국가대표 내야수로 거듭난 LG의 문보경(0.8억, 2019년 드래프트 공동 29위), 역시 국가대표 유니폼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SSG의 외야수 최지훈(0.8억, 2020년 드래프트 공동 35위)였습니다.
40위권 근처 지명자 101명 중 1군 데뷔에 성공한 선수는 67명으로 전체의 66.3%였습니다. 이들이 쌓은 누적 WAR은 91.73, 연평균 WAR은 0.41이었습니다. 다만, 1군에 데뷔하지 못한 선수 중 절반 넘는 선수(19/34)가 2020년 드래프트 지명자라 향후 이 드래프트 픽의 가치는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10번 + 40번 + 10억 = 조상우?
조상우는 올해까지 누적 WAR 12.98, 연평균 WAR 1.44라는 훌륭한 성적을 쌓았습니다. 불펜투수로서는 사실상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성적을 4년 이상 유지하면서 팀의 우승 도전에 밑거름이 된다면 지명권 두 장의 값을 하고도 남을 겁니다. 하지만 조상우는 내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는, 서비스 타임이 1년 남은 선수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