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중국 음식도 예외가 아닌데 세계로 퍼진 중국 음식 속에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까지 곁들어 있다. 지구촌 중국반점의 요리를 통해 중국 본색을 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맵고 얼얼한 마라탕의 유행 덕분인지 요즘은 매콤새콤한 중국음식 쏸라펀(酸辣粉)도 많이 퍼진 것 같다. 심지어 일부 편의점에는 쏸라펀 컵라면도 있다. 수입품인 듯싶은데 포장지에는 마라탕이라고 쓰여있고 또 쏸라펀이라고도 쓰여있어 정체가 헷갈리지만 실체는 쏸라펀이다.
쏸라펀은 어떤 음식일까? 낯설어하는 이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신맛 산(酸) 매울 랄(辣) 자를 쓰니 시고 매운맛 나는 국물, 쏸라탕(酸辣湯)에 당면(粉)을 말아먹는 음식이다. 얼얼하고 매운맛이 나는 마라(麻辣)와는 닮은 듯싶지만 차이가 있다.
쏸라펀은 중국과 대만 홍콩 등지에서 널리 먹는 거리 음식이다. 주로 시장이나 노점에서 간단하고 편하게 한 끼 식사나 간식 야식으로 먹는다. 그만큼 서민적이고 저렴한 대중음식이다.
뿌리도 거리 음식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알려지기로는 사천성 성도(成都)에서 한 노점상이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당면을 식초와 고추기름간장과 다진 고기 등에 섞어 팔면서 크게 호평을 받았다. 이후 사천성을 떠나 호남성과 귀주성 등 서남지역으로 퍼졌고 지금의 쏸라펀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중국 음식문화사에 비춰보면 반은 맞고 반은 그 배경에 대한 보충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먼저 지금은 쏸라펀의 국물인 쏸라탕이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일단 쏸라탕에서 신맛을 내는 재료인 식초는 중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조미료다. 전통적으로 입맛을 돋우며 몸을 따뜻하게 해 주기에 건강에 좋다고 여겼다.
매운맛을 내는 재료인 고추 역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땀을 배출하며 습한 기운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 그런 만큼 청나라 때 쏸라탕은 감기 걸렸을 때 먹는 음식, 입맛 떨어졌을 때 식욕을 북돋아 주는 음식으로 쓰였다.
여기서 고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 고추가 전해진 것은 17세기 초반인 명말청초 무렵으로 추정한다. 그러니 고추가 전해지기 전에는 조미료로 맵고 자극성 강한 후추나 산초 같은 것들이 쓰였다.
이를테면 중원인 호남성 등지에서 발달한 후라탕(胡辣湯) 같은 음식이다. 후추(胡椒)와 식초를 사용해 쏸라탕처럼 시고 매운맛을 냈다. 후라탕은 12세기 송나라 때 등장한 요리라고 한다. 전설에는 신선이 되려고 도를 닦는 도사들이 먹었던 불사약의 비법을 궁중 요리사가 전수받아 황제에게 만들어 바친 것에서 비롯된 요리라고 한다. 12세기는 중국에서도 후추가 금만큼이나 비싸고 귀했던 향신료였으니 후라탕 역시 황제나 부자들 아니면 맛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후추가 들어간 후라탕과 고추가 재료로 쓰인 쏸라탕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많은 다른 음식처럼 값싼 고추가 값비싼 후추를 대체하면서 발달한 음식이 쏸라탕일 가능성이 높다.
쏸라탕에 당면을 말아먹는 음식이 쏸라펀인데 당면을 먹게 된 과정도 흥미롭다. 중국 국수는 재료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한다.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면(麵), 쌀가루로 만든 쌀국수는 선(線), 녹두나 고구마 감자 전분 등으로 만든 국수는 분(粉), 중국어로 펀이다. 우리가 당면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국수다.
중국에서 당면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300년 전이라고 한다. 대략 18세기 초반쯤일 것으로 추정한다. 산동성 연태 등지에서 발달했다고 하는데 이때는 녹두를 갈아 그 녹말에서 나온 전분으로 당면을 만들었다. 당연히 녹두 당면이나 혹은 완두콩으로 만은 당면은 흔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재료가 귀해서였는지 혹은 산지가 제한되었기 때문인지 중국에서 당면이 널리 퍼진 것은 19세기 후반이라고 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