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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저 좀 만나주세요"…'얼굴 도장' 찍으려 줄 선 기업인들 [스프]

[뉴스페퍼민트] 마라라고 찾은 기업인들이 이구동성 요구하는 "재택근무 철폐" (글 : 권채령 뉴스페퍼민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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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트럼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두 번째 취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은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의 명사, 부자, 권력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기를 만나 어떻게든 눈도장을 찍고 싶어서 마라라고 저택 앞이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죠.

트럼프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돈, 권력, 권세보다도 모두가 자신을 좋아하는 상황, 즉 인기를 꼽는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제 첫 번째 임기 때는 모두가 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죠. 그런데 뭐가 바뀌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모두가 저랑 친구가 되고 싶어 하더군요. 좋은 일이에요.

잇단 회의와 만남에 지친 기색도 있었지만, 그래도 저 말을 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습니다. 모두가 자기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을 싫어할 사람은 없겠죠.

트럼프는 구글의 순다 피차이, 애플의 팀 쿡,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CEO, 회장들이 자기를 만나고 갔거나 만나러 올 예정이라고 말했는데, 이 만남에는 여느 대통령 당선인과 뚜렷하게 다른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만나기 위해 내야 하는 푯값이 사실상 정해져 있습니다. 주요 기업과 CEO들이 모두 최소 100만 달러씩 내고 트럼프 당선인을 만나고 갔습니다. 물론 그 돈을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챙기는 건 아니고, 취임 기금(inauguration fund)에 기부돼 취임식을 비롯한 정권 인수인계 업무에 쓰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다 취임 기금을 모으고 운영하긴 했지만, 이를 십분 활용해 자신의 인기와 권세를 온 세상에 알린 대통령은 단연 트럼프가 처음입니다. 미국의 많은 법이 그렇듯 취임 기금 모금과 지출, 내역 공개 등에 관한 법률은 빠져나갈 구멍이 많습니다. 200달러 이상 돈을 낸 사람이나 단체는 누구인지 자금의 출처까지 공개해야 하고, 모은 돈은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쓰고 남는 돈이 있다면 어떻게 처리했는지 다 밝혀야 하지만, 규정이 명확하고 세세하지 않아 적당히 에둘러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이번에도 법적으로는 문제 삼기 어렵지만, 관례를 보면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은, 도덕적으로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도 미국 지사를 통해 10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미국인이나 미국 단체만 돈을 낼 수 있다는 규정을 지켰으니,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외국 정부나 기업이 미국 정치에 과도한 영향력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법의 취지는 무색해지는 일입니다.

어쨌든 트럼프 당선인의 마라라고 저택 앞에 줄을 선 기업 CEO들은 길지 않은 만남 중에 특정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당장 어떤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보다는 그저 '얼굴도장'을 찍고 필요할 때 직접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핫라인'을 개설해 두는 데 만족했을 겁니다. 경쟁사들이 너도나도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고 오는데 우리 기업만, 나만 안 하면 트럼프한테 '찍히기' 딱 좋은 일일 테니 더 눈치가 보이고 신경이 쓰이기도 했을 겁니다. 100만 달러가 절대 작은 돈이 아니지만, 기업들이 로비에 쓰는 돈을 생각해 보면 큰돈도 아닙니다. 게다가 트럼프가 워낙 정치도 사업하듯 계산적으로 주고받는(transactional)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이라서 이 정도는 얼마든지 투자하고 보험을 들어 둘 만한 돈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업종 불문 CEO들의 바람 '재택근무 종식'
업종에 따라, 관심 가는 사안에 따라 CEO마다 트럼프에게 바라는 게 당연히 다를 겁니다. 그러나 아마 모든 CEO가 말하지 않아도 다 마음이 통하는, 한목소리로 원하는 게 하나 있을 텐데, 그게 바로 코로나19 이후 관행으로 자리 잡은 재택근무를 종식하는 일입니다. 많은 기업 CEO와 경영진은 재택근무가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 직원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직의 기강이 흐트러진다고 생각합니다. 경영 실적이 나쁠 때 경영진이 재택근무를 원흉으로 꼽기 딱 좋습니다.

당장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실세 중의 실세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일론 머스크가 민주당과 거리가 멀어진 결정적인 원인도 코로나19 팬데믹 때 방역 조치의 하나로 (테슬라 공장 노동자를 비롯해) 필수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들의 출근을 금지한 캘리포니아 주정부와의 마찰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치사율이 얼마나 높은지도 모르는데 잔뜩 겁먹고 온 사회를 가동 중단시키는 건 머스크가 보기엔 어리석은 결정이었습니다.

테슬라에는 집에서 화상으로 회의하며 일해도 어느 정도 업무가 가능한 사무직 노동자들도 일하지만, 공장에 직접 나오지 않으면 회사가 돌아갈 수 없는 현장 노동자들이 당연히 중요했습니다. 머스크는 "나도 회사에 나가서 일하는데, 내가 다 책임질 건데 회사 경영에는 아무런 책임도 질 생각이 없는 정부가 규제랍시고 내가 고용한 직원들의 출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캘리포니아 정부(민주당)와 정면충돌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기가팩토리 등 핵심 생산 시설을 전부 캘리포니아에서 빼버리는 초강수를 뒀죠.

머스크의 주장은 사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노동자가 직접 생산 라인에서 일을 해야만 가동할 수 있는 공장의 경우 다른 식으로 방역 수칙을 강화할 수도 있는데 일괄적으로 출근을 금지하면 사실상 강제 휴업이나 다름없는 조치로 비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중 보건과 방역을 우선하느냐 기업 활동의 자유를 우선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는 있어도 머스크의 주장을 터무니없다고 비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한적한 호화 별장에서 편하게 일하면서 직원들에겐 반드시 사무실로 나오라고 강제하는 경영진, 임원은 얘기가 좀 다릅니다. 이중잣대에 평직원들이 충분히 분노할 만하죠.
 
레이첼 그린리가 칼럼에서 주로 지적하는 점도 바로 이중잣대입니다. 경영진이 자신은 별장이나 안락한 홈오피스에서 일하면서 직원들더러 출근하라고 종용하는 게 공평하지 않다는 거죠. 집에서 일하는 게 효율이 떨어진다면 임원이든 관리자든 말단 직원이든 똑같이 사무실에 나오는 게 맞습니다. 경영진이 하는 일과 보통 직원이 하는 일이 성격이 달라서 경영진은 재택근무를 해도 일을 똑같이 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입증된 적도 없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공평하지 않은 처우와 이중잣대가 더욱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근무 형태에 관한 규정은 정말 사소해 보일 만큼 임원과 일반 노동자의 처우가 지난 40여 년 사이 급격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역시 가장 큰 격차가 벌어진 부분은 급여입니다.

CEO와 평직원의 연봉 격차에 관한 자세한 분석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보통 회사 대표와 평직원의 임금 차이는 약 20배에 불과했는데,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잇단 부자 감세 정책, 그리고 주주 자본주의가 득세하면서 지금은 350배나 차이가 납니다. 미국 부자들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벌고, 얼마나 돈을 쌓아놓고 사는지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이유가 짐작이 갑니다. 1978년을 기준으로 보면 CEO의 연봉은 1,085%, 즉 11배 가까이 높아졌는데, 일반 노동자의 연봉은 24%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일반 노동자들이 보기엔 오르지 않는 연봉이나 갑자기 더는 재택근무 허용 안 된다며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통보나 비슷한 맥락이 있습니다. 자기들 연봉은 성과급에 인센티브, 스톡옵션 최대한으로 적용해 꼬박꼬박 책정하면서 노동자 월급은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져 주주 이익에 해롭다며 벌벌 떠는 경영진이 있습니다. 바로 그 경영진이 자기들은 휴양지 별장에 마련한 사무 공간에서 안락하게 결재하면서 또는 전세기 타고 출근하는 사치를 누리면서 직원들에게 쓸데없는 출퇴근 부담을 지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사무실에 모여서 회의를 안 하다 보니 일 처리가 안 되고 회사가 잘 작동을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번에도 실적이 다른 이유로 안 좋게 나왔는데, 그저 주주들에게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재택근무를 없애고 출근을 명령한 거라면? 충분히 화가 날 만합니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시장에 맡겨놓은 나라입니다. 노동시장도 마찬가진데,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우수한 인재가 재택근무를 못 하게 하는 기업을 등지고 떠나 유연하게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기업으로 이직해야 합니다. 그래서 재택근무를 가로막은 기업들은 경쟁사에 인력을 빼앗기고 도태돼야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렇지만, 그런 일이 쉽사리 나타나지 않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기업과 경영진들 사이에 암묵적인 짬짜미가 형성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라라고에 모인 CEO들 대부분 생각이 비슷할 겁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말고, 자기가 경영하는 회사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 걸 좋아하는 경영자는 많지 않습니다. 또한, 이직이라는 게 말은 쉬워도 분명 위험을 감수하고 비용을 치러야 하는 일입니다. 명백히 좋은 옵션이 보장되지 않는 한 선뜻 실행에 옮기기 어렵죠. 그러다 보니 불만이 쌓여도 적당히 참고 힘겹게 출퇴근하면서 지금 회사를 계속 다니는 편을 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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