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첼 그린리는 전직 테크기업 임원으로 현재 에세이집을 집필 중이다.
원격 근무에 관한 한 기업 경영진은 직원들이 자기들이 말하는 대로 잠자코 따라주기를 바란다. 반대로 자기들이 일하는 식으로 직원들이 일하는 걸 좋아하는 경영진은 거의 없을 거다.
세일즈포스의 최고경영자 마크 베니오프는 "나는 사무실에서는 일을 잘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세일즈포스는 다른 많은 기업처럼 직원들에게 일주일에 3~4일은 사무실로 출근해서 일하라고 지침을 바꿨다. 이 지침을 결재할 때 베니오프는 어디에 있었을까? 아마도 하와이 와이메아 제도의 섬 내륙에 있는 고풍스러운 별장에 마련한 홈오피스에 있었을 거다. 아니면 바다가 보이는 언덕 아래 저택에 있었을 수도 있다.
지난 10월 말, 스타벅스의 브라이언 니콜 신임 사장은 회사의 사무직 직원들에게 전부 오는 1월까지는 일주일에 최소 3일은 사무실로 출근해서 일하라고 통보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캘리포니아 뉴포트 비치에 있는 자택에 주로 머물고 있다. 스타벅스가 니콜 사장에게 사무 공간과 개인 비서를 제공하고, 필요하면 본사가 있는 시애틀까지 1천 마일을 당장 날아올 수 있도록 회사 전세기도 늘 근처에 대기시켜 놓기에 가능한 일이다. 스타벅스 측은 CNBC에 니콜 사장도 최소 주 3일 출근 요건을 따를 거라고 설명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상이 봉쇄되면서 미국의 수많은 사무직 노동자는 갑자기 집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팬데믹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유연한 근무 방식이다. 사람들은 훨씬 더 저렴한 곳으로 이사할 수 있게 됐고, 지역,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됐으며,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기도 훨씬 더 수월해졌다. 이런 특권이나 다름없는 혜택은 전염병에 노출될 위험을 무릅쓰고 일터로 나가야 했던 다양한 필수 노동자들의 처지와 대조를 이루며 논란을 낳기도 했다.
여전히 사무실 곳곳에는 빈자리가 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무직 노동자가 다시 사무실로 출근해 일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집에서 일할 수 있는 권한은 원래 경제적으로 계층에 따라 달리 적용됐다. 이제 이 특권은 대개 가장 부유한 이들에게만 허락된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경제학자이자 원격 근무 전문가인 닉 블룸의 연구를 보면, 팬데믹 이후 노동자들에게 허락된 재택근무 일수와 노동자들의 소득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1만 ~ 10만 달러 연봉을 받는 노동자들의 재택근무 일수는 16% 줄어든 반면, 연봉을 20만 달러 이상 받는 고소득자들의 재택근무 일수는 5%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소득과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얼마나 가까이 사는지 사이에도 상관관계가 발견됐다. 연봉이 1만 ~ 5만 달러인 노동자 중에 출근해야 하는 본사에서 80km 이상 떨어진 데 사는 노동자는 5%에 불과했다. 그러나 연봉이 25만 달러를 넘어가면, 회사에서 80km보다 더 먼 데 사는 사람이 14%로 늘어난다. 유연한 재택근무는 노동자만 좋은 게 아니라 고용주에게도 이득이 많다는 연구 결과가 무색한 통계라고 할 수 있다. 블룸은 재택근무가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을 늘려 성별 격차를 줄이고, 구직자의 수가 늘어나 노동 공급이 확대되며, 장애인의 고용 격차도 줄어들고 노동자들이 소위 "워라밸"을 맞추기 좋은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블룸이 링크드인에 올린 연구 결과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근무 시간에 짬을 내 빨래를 돌려놓고 올 수 있다는 게 전반적인 행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중국과 튀르키예의 콜센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완전 원격 근무하는 사람과 일정 시간은 사무실에 나와서 일해야 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를 비교한 연구 결과를 보면, 완전히 원격으로 근무하는 직원들이 병가도 덜 내고,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고객을 응대하는 등 성과 지표가 좋았다.
그러나 기업들은 데이터가 가리키는 결론을 무시하는 것 같다. 한때 내가 일했던 아마존은 직원들에게 "데이터를 거스르는 사례가 발견되면 일단 의심하고 보라"는 지침을 내리는 등 조직 전체가 철저히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자랑스레 내세우는 회사다. 그런 아마존이 새해부터 전 직원들에게 일주일에 5일을 전부 사무실에 나와서 근무하라고 지침을 내렸는데,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그 중요하다던 데이터가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공고였다는 점이다. 대신 아마존 웹서비스의 CEO 맷 가먼은 회사 전 직원이 참석한 회의에서 "내 느낌에는..." 또는 "우리가 믿는바"와 같은 표현을 써가며 주장을 폈다고 한다. 데이터를 그렇게 귀하게 떠받드는 회사가 정작 중요한 결정은 고위 간부의 직감에 의존하다니, 이상한 일이다.
최고위급 경영진, 임원들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무엇일까?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진이 지난 10월 원격근무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재택근무를 종식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라고 근무 기준을 바꾼 1,200여 개 회사 가운데 상당수가 재무 실적이 부진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재택근무를 끝내거나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진이 출퇴근을 옹호하는 건 직원들이 실제로 사무실에 나와서 일을 해야 회사가 더 잘 굴러가서가 아니라, 그저 주주들에게 경영진이 뭐라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또한, 재택근무가 어려워지면 오래 일하면서 불만이 쌓인 직원들이 퇴사하거나 이직할 가능성도 커진다. 인원을 감축하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인건비가 줄어 경영 실적이 올라가므로, 경영진으로서는 재택근무를 종식해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면 일석이조다.
재택근무를 없애고 노동자를 다시 사무실로 불러내는 건 연구 결과만 봐도 안 좋지만, 특히 장애인과 간병인에게는 직접적인 손해를 끼친다. 팬데믹 기간 장애인의 고용률은 22%나 증가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는 올해 노벨상 수상자 강연에서 사무실에 있는 것과 비슷한 가상 오피스에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늘어나면 전문 간병인, 특히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활발해진 데 주목했다. 돌봄노동을 하는 간병인이나 장애가 있는 노동자들이 임금이 낮거나 노동 조건이 불리한 일자리를 억지로 선택하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아마존, 스타벅스에서 일하면서 나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던 동료들이 감수해야 했던 끔찍한 출퇴근, 이를 참다못해 전국 곳곳으로 이사하며 느낀 스트레스와 고충에 대해 익히 들었다. 특히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는 완전 원격 근무가 가능한 일자리로 알았는데, 어느 날 난데없이 사무실로 출근해야 한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받는다면 황당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사무실이 같은 주도 아니라 옆의 주까지 건너가야 한다면 막막한 일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