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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에서 베스트셀러 번역가로…우혜림의 '진짜 성장' [스프]

[오프 더 모먼트] 우혜림 (전 원더걸스 멤버, 번역가)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보는 잠깐의 '틈'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돌보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성인 4만 4천 명을 상담했던 장재열 상담가가 자신의 삶에서 소진을 겪었던 전문가를 만나 일상 속 멈춤과 쉼의 비결에 대해 묻습니다.
 
 
인터뷰어 : 장재열 (상담가 겸 작가, 월간 마음건강 편집장)
인터뷰이 : 우혜림 (전 원더걸스 멤버, 번역가)

상담가로 살아온 지 12년째, 예전의 저는 이 직업이 '누군가의 가장 어두운 순간'을 만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요. 조금 더 세월이 지나고 보니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을 목격하는 직업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두려움과 기대감을 오롯이 함께 느끼는 일, 울타리 밖으로 걸어가고 싶지만,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누군가의 옆에 잠깐 함께 서 있어 주는 일이라는 것도요.

사실 '울타리' 밖을 꿈꾸면서도 주저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직장생활이 길었던 분들, 단단하고 안정된 '브랜드 있는' 울타리에 있었던 분들이라면 더욱 그렇지요. 그런 분들에게 저는 말로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드리는 대신 과제 하나를 드립니다. 당신의 선택에 "희망의 증거"가 될 만한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수집하라는 과제를 말이지요. 지금까지 살던 모습과 전혀 다른 궤적으로 걸어 나간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공통분모가 있으니, 그걸 스스로 찾아 마음 안에 새겨보라고요.

오늘 소개해 드릴 분 역시 그런 희망의 증거 중에 한 사람이 될 겁니다. 원더걸스 출신의 번역가, 우혜림 님입니다.

우혜림 오프 더 모먼트
장재열(이하 장) :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혜림(이하 우) : 반갑습니다. 번역가 우혜림입니다. (웃음)

장 : 아직 혜림 님이 번역가라는 것이 낯선 분들도 계실 텐데, 어떤 작품들을 해오셨는지도 소개해 주시면 어떨까요.

우 : 제일 처음 작업했던 책은 많이들 아시는 작품 <안네의 일기>고요. <곰돌이 푸, 단순한 행복>의 번역도 맡았습니다. 아직 출간은 되지 않았지만 빈센트 반 고흐의 책도 번역 작업을 했었어요. 가장 최근에는 미국에서 출간되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윌 구다이라의 책 <놀라운 환대> 한국어판을 맡아서 번역했어요.
 
장 : <곰돌이 푸> 같은 경우는 굉장히 많은 분께 사랑받았던 책이잖아요? 저도 읽어봤는데, 표지에 적힌 '옮긴이 : 우혜림'이 이 혜림 님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거든요. 아무래도 아이돌이 가는 전형적인 진로가 아니기 때문에 대중의 머릿속에서 쉽게 매칭을 못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우 : 맞아요. 많은 분들이 늘 궁금해하시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아이돌이 번역가라는 진로 자체를 생각한다는 게 흔한 일이 아니긴 하니까요. 저도 처음에는 원더걸스 이후의 삶을 생각할 때, 연기를 해야 하나, 예능을 해야 하나, 솔로를 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다 자신 있게 내 길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럼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지? 나는 뭘 좋아하고 잘하지? 돌이켜 봤거든요. 그런데 활동 기간에 많은 곳에서 저를 불러주셨을 때 늘 '언어'에 대한 기회들을 주셨더라고요. 기사도 늘 '4개 국어 혜림' 이렇게 나오고. (웃음)

활동 당시에는 '내가 가수인데 이런 모습만 주목받는 게 맞나?' 혼란도 들었지만, 그런 생각을 다 내려놓고 내가 '언어'를 좋아하는가?라고 물어봤을 때는 좋아하고 잘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러면 억지로 맞지 않는 것 같은 옷을 입으려 하지 말고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기초부터 다시 쌓아보자고 생각했죠.

장 :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도, 어찌 보면 원더걸스라는 단단한 브랜드 네임을 활용하기에 어려운 전혀 출판 분야로 간다는 선택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사람들의 인식도 쉽게 바뀌지는 않을 수 있고요.

우 : 그래서 천천히 준비하고 쌓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활동할 때는 이 그룹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사실 끝이 있잖아요. 늘 박진영 피디님이 이런 말씀을 해 주셨거든요. 최정상에 올랐을 때 내리막을 준비하지 않고 한순간에 떨어지면 사람이 너무 크게 당황하고 좌절하게 된다. 그런 사람을 정말 많이 봤다. 너희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내려갈 텐데 내려가는 것에도 준비가 필요하다고요. 그래서 저는 늘 그 말씀을 염두에 뒀어요. 원더걸스가 아닌 일반인 우혜림으로 살아가는 순간을 미리 꾸준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나를 탐색했지요.

장 : 대학교 입학도 그 연장선에 있을까요?

우 : 그렇죠.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는 게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원더걸스 이후에는 언어를 살려서 살아가고 싶다. 그럼 어떤 언어가 좋을까?' 생각해 보니, 저는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를 모두 살리고 싶었고, 그래서 통번역 전공을 선택하는 것에 고민이 없었어요. 다만 공부를 더 하다 보니 저는 천천히 생각을 숙고하고, 또 신중하게 언어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특징을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동시통역사보다는 번역가의 길로 자연스럽게 접어들게 된 것 같아요.

우혜림 오프 더 모먼트
장 : 통역과는 다른 번역만의 매력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우 : 저는 번역가라는 직업이 삶의 경험이 확장된다는 측면에서 너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번역 작업이 시작되면 마치 배우가 배역에 빠져들 듯이 완전히 다른 인생으로 빠져들거든요. 그리고 단순히 그 입장에만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안에 담긴 지식과 경험이 온전히 내 것으로 흡수가 되어요. 예를 들어 '안네 프랑크? 유명한 사람이지' 이게 아니라 그 2차 대전의 순간으로 들어가서 유대인의 삶을 생생히 겪게 되고요. 빈센트 반 고흐의 책을 할 때는 또 온전히 그 삶을 경험하는 거죠. 그리고 번역을 하면서 나의 언어적인 능력이 더 발전해야 한다는 걸 계속 직면하거든요. 더 공부해야 하고, 더 성장해야 하는구나라는 자극이 되고요.

장 : 제가 마침 딱 성장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요. 혜림 님이 본격적으로 번역가가 되시기 전에, 제 주변의 작가님들이 만드시는 여러 워크숍이나 강의에서 일반 참여자로 참석한 모습을 인스타로 저는 이미 많이 봤어요. 그때는 활동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때라 지금보다 더 많이들 주목하고 시선에 쏠릴 때였을 텐데, 아랑곳하지 않고 학습자로서 열심히 경청하시는 모습을 다들 입 모아서 칭찬하시더라고요.

우 :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중이었으니까요. 배움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내게 필요하다 싶으면 당연히 찾아가는 거였죠. 다른 인생 선배님들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통해서 '나'에게는 어떻게 적용할지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배움이 있었고 감사하죠. 늘 저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장 : 이번에 번역한 <놀라운 환대>도 그런 성장의 기회였다고요?

우 : 네, 엄청요. 저 이렇게 삽화가 하나도 없이 글만 있는 책은 처음이에요. 진짜 저한테도 도전이었지요(웃음). 제가 앞에서 쓴 책 보면 곰돌이 푸, 안네 프랑크, 다 몽글몽글하고 삽화가 많이 들어가는 책이거든요. 감성적이고. 그런데 이 책은 세계적인 레스토랑 경영자가 쓴 사람들을 환대하고 감동하게 만드는 여정에 대한 책이거든요. 분류도 경제 경영서예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낯선 단어들도 많았어요. 이 책 제목이 Unreasonable Hospitality잖아요? 일단 Unreasonable이라는 단어가 한국어로 바꾸기가 정말 애매한 단어예요. 그리고 Hospitality 역시 '환대'라는 뜻보다는 '병원'이 더 먼저 떠오를 만한 단어고요. 책 속에 있는 내용들 역시 전문용어가 너무 많아서 저한테는 정말 큰 도전이었어요.

장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맡아야지 생각하게 된 이유는 뭐예요?

우 : 출판 기획자분께서 저를 찾아와서 처음 이 책을 제안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환대를 받아본 사람이 환대에 관한 책을 번역해 주면 분명히 다를 것이다"라고요.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았어요. 저는 누구보다 대중의 환대 속에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기 때문에 팬과 대중께서 보내주신 정성과 사랑 속에서 느낀 감동의 경험이 있잖아요. 그래서 번역을 시작했죠.

그리고 막상 시작하고 보니까, 단지 이 책의 단어들이 다소 낯설었던 것이지 내용들은 제 삶에 너무 분명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태도'에 대한 인사이트들이더라고요. 경영자가 아니어도, 요식업에 종사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꼭 필요한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책에 푹 빠져들게 되었죠.

장 : 아까 말씀하신 대로 번역을 한다는 건 혜림 님에겐 그 세계에 완전히 들어가서 몰입을 하고 돌아오는 여정이라는 건데, 이 놀라운 환대의 세계에 몰입해서 알게 된 것들은 뭔가요?

우 : 이 책은 사실 요식업에 관한 책이에요. 뉴욕의 평범한 레스토랑을 맡아서 운영한 저자가 11년 만에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탈바꿈시킨 이야긴데요. 뉴욕의 톱 50 레스토랑에 처음 진입해서 시상식에 참가한 날, 기쁨이 아니라 50위, 즉 제일 낮은 순위였다는 것에 절치부심해서 더 위로 올라가겠다고 다짐하며 떠올린 단어가 "놀라운 환대"였다고 해요. 고객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만큼의 환대로 완전한 최고가 되겠다고 결심을 한 거죠.

장 : 사실 세계 톱 50이면 저라면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줄 만한 순위라고 생각했는데요.

우 : 그럴 수 있죠. 저자가 이렇게 보편적인 사고방식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사람이기도 하고, 또 저는 요식업의 경험이 없기도 해서 처음엔 이 책의 번역이 상당히 도전으로 다가왔어요. 낯설잖아요. 그런데 점점 작업을 하다 보니까 이 책은 요식업에 관한 책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책이라는 걸 깨닫게 된 거예요. 그리고 나니까 요식업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내 삶에도 너무 필요한 이야기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우리 일상 곳곳에서 타인을 기쁘게 하는 환대들이 숨어있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라디오 진행자로 있을 때, 한 후배 신인 아이돌이 게스트로 출연을 했는데 음악 나가는 몇 분 사이에 잠깐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더라고요. 그런데 손에 젤리가 들려있는 거예요. 제가 음악 나가기 전에 토크할 때 지나가는 말로 젤리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거든요. 그걸 기억했다가 근처 편의점에 가서 사 온 거예요. 그 어린 아기가(웃음). 얼마나 예뻐요. 그런 마음이 Unreasonable Hospitality잖아요. 생각지도 못했고, 깜짝 놀라게 만드는 환대의 마음.

저 역시도 그런 태도로 삶을 살아가려고 늘 노력하는데,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도 저자가 환대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걸 보면서 내 삶에 적용해 봐야겠다 하는 지점들이 너무 많았지요. 그리고 실력으로 상위권에 오를 수 있지만, 결국 최고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건 환대의 마음과 태도였다는 건, 환대가 단순히 다정함, 따듯함 같은 감정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성공이나 성취, 성장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역량이라는 걸 다시 느끼게 됐죠.

우혜림 오프 더 모먼트
장 : 공감해요. 그런데 Hospitality라는 게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에게 응원의 마음을 건네는 것도 해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혹시 지금 혜림 님이 누군가에게 응원의 마음을 건넬 수 있다면, 가장 마음이 쓰이는 존재들은 누군가요?

우 : 저는 타인의 시선을 너무 걱정하는 사람, 그리고 불안이 높은 사람들요. 저는 장재열 작가님 책을 봤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장 : 앗, 제 책을 보셨어요? 인터뷰이가 인터뷰어를 사전조사 하시다니, 이런 것도 참 생각지 못한 환대네요! (웃음)

우 : <놀라운 환대> 번역가잖아요(웃음). 작가님 책에서 그런 부분이 공감이 가더라고요. 우울증이 왔을 때 나도 모르게 건널목을 건너다가 정신을 깜빡 놓고 다시 들어보니 빨간불로 바뀌어 있었다고. 차들이 빵빵거리는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고. 

저도 그랬거든요. 저는 연습생 시절에 늘 뚱뚱하고 부족하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던 것 같아요. 늘 불안했고요. 그러다 어느 날은 편의점에서 음식을 먹으려고 전자레인지에 돌려두고는 정신이 잠깐 나가버렸어요. 연기가 막 나고 전자레인지에 불이 나고, 사장님이 소리를 치며 다가오실 때가 되어서야 아차! 싶었지요.

그때의 저도 작가님만큼이나 마음이 힘든 시기를 겪었던 게 아닐까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참 마음이 힘들었던 때구나 생각해요. 그때의 저 같은 사람들이 가장 마음이 쓰이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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