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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범인데 칭송한다고?…망가진 시스템은 핑곗거리가 될 수 없다"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A Broken System Is No Excuse, by Travis N. Rieder

1217 뉴욕타임스 번역
 

* 생명윤리학자인 트레비스 N. 리더 박사는 책 "재앙의 윤리학: 어려운 선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잘 선택하는 법"의 저자다.
 

브라이언 톰슨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나서, 정말 기이하고 충격적인 일련의 상황이 전개됐다. 총을 쏜 범인이 칭송받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도대체 왜? 피해자가 미국 최대의 의료보험사 가운데 하나를 이끄는 대표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니까 범인은 보험사의 희생자임이 틀림없다고 사람들은 추정하고 있다.

용의자의 친구들은 그가 극심한 허리 통증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가 총을 쏜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영 명확히 알려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누군가 불투명하고 분열된 미국 의료보험 제도와 값비싼 치료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지연하는 보험사환멸을 느끼게 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총격범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많은 사람이 살인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매우 잘못됐다고 주장할 건데, 아마도 독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반응이 나올 거로 예상한다. "당신은 살면서 진짜 고통을 겪어본 적도 없고, 미국 의료보험 제도라는 지옥 같은 미로를 헤매고 다녀 본 적도 없는 것이 틀림없다." 나도 그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2015년, 나는 오토바이를 타다 발이 찢겨 나가는 큰 사고를 당했다. 처음에는 발을 절단해야 할 거라는 끔찍한 말을 들었지만, 이후 무려 여섯 차례의 수술을 거쳐 겨우 발을 살려낼 수 있었다. 처음 다섯 차례 수술 이후, 오피오이드 약물을 끊는 방법에 대한 끔찍한 조언을 들었고, 그 결과 29일간의 고통스러운 금단 증상을 겪어야 했다.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거라는 말도 들었지만, 수년간의 물리치료를 통해 보행기와 지팡이를 거쳐, 보조 기구 없이 걷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금까지도 나는 다양한 정도의 통증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국 의료 시스템이 이 모양인지라 내 파트너와 나는 치료의 모든 단계를 보장받기 위해 보험사와 수년간 싸워야 했다. 수술이 끝난 뒤 어느 날, 우체부가 직접 갖다준 뜻밖의 우편물을 받고 깜짝 놀랐다. 여섯 차례 수술 가운데 한 번의 수술에 대해, 내가 거친 여러 곳의 병원 중 한 곳이 보낸 천문학적인 금액의 청구서였다. 내 보험사가 보험 적용을 거부했던 것이다.

나는 수주, 수십 시간에 걸쳐 이 청구서를 해결해야 했고, 마침내 보험사 직원이 보험금 지급 거부를 초래한 행정적 오류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병원에서 보험사에 청구한 금액은 병원이 내게 직접 전달한 청구서에 적힌 금액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러니 나도 이 망가진 시스템을 향한 모두의 분노를 이해한다. 모두가 추정하는 범인의 동기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그 행위가 정당해지는 건 아니다. 이 비극적인 상황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제도와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 살인에 면죄부를 주거나, 살인을 미화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다. 일반적으로는 명시할 필요가 없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바닥까지 파헤쳐지고 있는 근거부터 들어보려 한다. 살인은 잘못된 일이다. '살해(murder)'라는 것이 그 자체로 부당하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브라이언 톰슨이 살해됐다면, 그 사람의 목숨을 부당하게 빼앗은 범인은 그 자체로 죄를 저지른 것이다.

총격범을 찬양하는 이들은 이번 살인이 잘못된 일이 아니므로 '살해'가 아니고, '정당한 죽임'이라는 견해를 지지하는 것 같다. 실제로 정당방위 상황에서의 살인, 정당한 전쟁에서의 살인, 나아가 국가에 의한 사형 집행에 이르기까지 어떤 시각에서 보면 정당화되는 살인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시각은 아니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톰슨의 살인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 뒤에서 총을 쏘는 것은 그 어떤 정당한 살인의 패러다임과도 비슷하지 않다. 사람들은 의료보험 업계에서 톰슨이 담당했던 역할이 그의 죽음을 정당화한다고, 즉 그의 직업이 곧 그가 끔찍한 일을 했거나 나쁜 사람임을 증명한다는 논리로 답을 대신하는 듯하다.

내 생각에는 많은 사람이 바로 이 지점에서 실수하고 있다. 아직 자세한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용의자의 상황에 섣불리 공감하고는 곧바로 그 행동을 변명하는 단계로 나아간 셈이다. 이런 움직임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이의 곤경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거나 그런 경험을 공유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행동을 허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 독자와 마찬가지로 용의자 역시 의료보험 제도에 당한 것이 많을 수 있겠지만,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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