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담화 분석: 판례나 증언과 배치되는 주장
담화문에는 유독 법률적 용어가 많았습니다. "계엄 발령 요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 "국헌문란 목적"과 같이 탄핵심판이나 형사재판을 염두에 둔 용어 선택이 눈에 띄었습니다. 잠재적인 탄핵심판 피청구인이나 내란죄 혐의 형사 재판 피고인으로서 사전변론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담화문 내용과 논리를 살펴보면 법률가로서의 변론이라는 인상이 더욱 강해집니다.
윤 대통령의 핵심 논리는 두 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비상계엄이라는 통치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법리적 주장' 두 번째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막는 등 국회 기능 마비를 꾀하지 않았으므로 국헌문란 목적이 없어서 내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관계에 대한 주장'입니다.
이 역시 전형적으로 피청구인 또는 피고인의 변호사가 변론을 펼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두 가지 주장은 모두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통치행위는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법리적 주장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에 의해 반박되고, 국회 마비 등 국헌문란 목적의 행위가 없었다는 주장은 비상계엄 핵심 관련자들 증언과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씩 살펴보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담화에서 "그 길밖에 없다고 판단해서 내린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습니까?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행사, 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비상계엄 선포는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내란죄 여부를 따지는 형사재판이나 파면 여부를 따지는 탄핵심판과 같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와 같은 주장의 법률적 근거를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대법원 판례 등에 윤 대통령이 근거로 삼을 만한 문구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두환과 노태우의 내란죄 혐의 등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1997년 판결에서, 대법원은 누가 보더라도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것으로 인정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계엄선포의 요건 구비 여부나 선포의 당·부당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런 판결을 비상계엄이 <어떤 맥락에서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건 명백한 잘못입니다. 대법원은 같은 판결에서, 심지어 바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비상계엄이 <내란죄>와 같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법부가 심사할 수 <있다>고 판시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과 같이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 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습니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만한 이유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사법부가 판단할 몫이 아니지만, 비상계엄이라는 행위가 내란죄를 저지르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될 경우에는 비상계엄 선포 행위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 법원이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겁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될 경우 대통령 탄핵심판을 담당하게 될 헌법재판소는 통치행위가 헌법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관련 긴급재정명령 관련 사건에서 헌재는 "통치행위란,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한 국가행위로서 사법적 심사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하지 못한 행위 -라고 일반적으로 정의되고 있는바.....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한 행위로서 그 결단을 존중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 행위라는 의미에서 이른바 '통치행위'의 개념을 인정할 수 있다"라고는 전제합니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 통치행위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작용은 국민의 기본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한계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고,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사명으로 하는 국가기관이므로 비록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작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해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라고 판시한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유신정권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권을 부정했던 판결을 근거로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심사권은 판례상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2015년 당시 대법원이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에 대해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라고 판결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법원 소부가 선고한 이 판결 역시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국민 개개인에 대해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일 뿐, '대통령의 통치행위라고 해도 <형사적으로>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법원이 심사할 수 있다'라는 앞선 대법원 판례를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대법원이 2022년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긴급조치에 대한 국가배상권을 인정하지 않은 2015년 판결을 뒤집었다는 점입니다.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다른 긴급조치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 사건에서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법원으로서는 마땅히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하여 사법심사권을 행사함으로써,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 나아가 헌법의 근본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부정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 책무를 다하여야 한다."라고 선언하면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는 사정만으로 사법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보아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습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사법심사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은 물론이고,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이전 대법원 판결마저 뒤집은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