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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거기 '전설의 장인'이 있었다 [스프]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차마고도에서 활약했던 다리 바이족의 '허칭첸주' - 윈난 다리 (글 : 모종혁 중국문화평론가·재중 중국 전문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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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족이 몰려 사는 다리의 옛 성벽 남문
이것은 중국 내 한 지역의 초등학교 시험에 실제로 나왔던 문제다. 아래 열거하는 소수민족 중 집을 백색으로 꾸미고 백색의 옷을 즐겨 입는 민족은?
 
① 만주족(滿族)
② 조선족(朝鮮族)
③ 바이족(白族)
④ 이족(彝族)

물론 정답은 2번 조선족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인터넷에 알려지면서 몇몇 소수민족이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윈난(雲南)성 바이족은 자신도 조선족 못지않게 백의를 즐겨 입고 집을 백색으로 꾸민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1998년 이래 바이족이 집거하는 다리(大理)를 10여 차례 여행하거나 취재했다.

자란을 만들기 위해 화관을 쓴 채 면포에 문양을 수놓는 바이족 여성
그리고 수많은 수공예 장인과 여러 민속학자를 만났다.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바이족 여성은 흰색 계통의 옷을 주로 입는다.

중국에서 바이족 하면 떠오르는 것은 머리에 쓰는 둥근 꽃관(花冠)이다. 바이족 여성은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하나로 땋은 다음 머리에 한 바퀴 둘러서 꽃관을 쓴다. 꽃관의 둘레는 마을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꽃무늬로 장식한다.

하지만 윗부분은 한결같이 흰색 털을 심고 한쪽은 길게 늘어놓는다. 상반신은 가슴 부분이 붉은색이나 분홍색이고 소매는 흰옷을 입는다.

자란을 완성하기 위해 면포의 실은 일일이 손으로 뽑아낸다.
하반신은 흰색 바지를 입는다. 다만 밭일이나 집안일을 위해 수놓은 검은색 앞치마를 위에 두른다. 이런 여성의 복식은 바이족이 사는 어느 곳이든 똑같다.

혹자는 염색 기술이 낮아 흰색 옷감을 즐겨 쓰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바이족은 옛날부터 천연염료를 개발해 사용했다. 이는 바이족의 대표적 수공예품 자란(扎染)을 통해 알 수 있다.

자란은 반란건(板藍根)의 잎을 짜서 즙을 낸 염료를 넣어 생산한 면포다. 염료는 10일 이상 숙성시켜 고운 빛깔을 낸다. 면포는 목화에서 얻어진 면으로 짠다.

창산 자락의 한 마을에서 벼 수확을 하는 바이족 농부
그 뒤 면포 위에 자연, 동식물, 종교 기호 등 문양을 그리고 실로 꿰맨다. 이 면포를 염료통에 반나절 담가서 물들인다. 물들어진 면포는 물로 세척한 뒤 탈수한다. 마른 면포에서 꿰맨 실을 풀어내 자란을 완성한 뒤 옷, 가방 등으로 가공한다.

둘째, 바이족은 집의 벽과 내부는 온통 흰색으로 칠한다. 보통 바이족의 민가는 벽을 돌과 진흙으로 쌓고 내부는 목재를 이용해 짓는다.

밖에서 보면 사합원(四合院)과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ㄷ자의 삼방일조벽(三坊一照壁) 형태다. 집은 보통 2층으로 대가족이 함께 산다.

바이족의 전통 민가인 ㄷ자의 삼방일조벽 형태로 만든 다리의 한 호텔
가옥 ㄷ자 부분의 안쪽은 거실이 있고 침실, 주방, 창고 순으로 배치한다. 중간에 트인 곳에는 흰색으로 칠하고 조각한 문양으로 꾸민 조벽이 있다.

담장은 사합원보다 낮은데, 온통 흰색으로 칠한다. 내벽 곳곳도 흰색으로 칠한다. 따라서 해가 어느 방향에서 비추든 조벽과 내벽에서 햇빛을 반사해 마당은 언제나 따뜻하다.

셋째, 바이족이 모시는 주요 신 중에는 백석(白石)이 있다. 바이족의 전통신앙은 본주(本主) 숭배다. 여기서 본주는 하늘, 산, 황소, 돌 등 자연신부터 조상과 마을신, 영웅까지 아주 다양하다.

백석을 본주로 모시는 바이족의 한 사당 내부
흥미롭게도 모든 본주는 평등한 신격을 가진다. 따라서 진귀한 백석도 본주로 모시면서 받든다. 바이족은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일어나면 본주를 찾아간다.

본주는 찾아온 주민이 얘기하는 대소사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본주를 바이족은 절대전능의 신이라기보다 인간의 감정을 가진 존재라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본주 사당은 마을 한복판이나 어귀에 있어서 누구나 찾아가기가 쉽다.

사실 바이족은 중국사에 오래전부터 등장했다. 6세기 말 다리 일대에서 성장한 여섯 부족인 육조(六詔)를 기원으로 한다.

호수 얼하이에서 가마우지를 이용해 낚시하는 바이족 어부
738년에 긴 전쟁을 거쳐서 몽사조(蒙舍詔)의 4대 왕 피라각(皮邏閣)이 통일대업을 완수했다. 피라각은 얼하이(洱海) 변에 남조(南詔)를 세웠고, 당과는 조공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당은 사사건건 남조의 내정을 간섭했다. 이에 남조는 토번(吐蕃)과 연합해 당에 맞섰다. 754년 당군 7만 명이 남조를 침략했다. 남조군은 얼하이를 이용한 수전으로 당군을 몰살시켰다.

그 뒤 남조는 250년 동안 번성하면서 윈난 전체를 통치했다. 뿐만 아니라 그 영향력은 쓰촨(四川) 남부, 구이저우(貴州) 서부, 미얀마 동부까지 미쳤다.

다리의 옛 성벽 남문에서 내려다본 다리성 내부의 모습
902년에 남조가 멸망하고 937년에 세워진 다리국은 패권을 계승했다. 다리는 송과 조공 관계를 맺고 13세기 중엽까지 번성했다.

석회암이 높은 온도와 강한 압력을 받아 광택이 나는 흰 돌로 변한 대리석이 특산물이었다. 다리는 쿤밍(昆明)에서 320여km 떨어져 있고, 평균 해발이 1,900m인 고지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를 지녔고, 창산(蒼山)과 얼하이의 풍광이 아름다워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다리 북부 허칭(鶴慶)현에 바이족의 다른 특산물인 금속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이 사는 신화촌(新華村)이 있다.

신화촌의 뒷산은 돌산이지만, 큰 연못이 있어 금속공예가 가능했다.
신화촌은 예부터 주민은 많았으나 농사지을 땅이 적었다. 마을 뒷산은 돌산이라 초목이 자라지 않는다. 열악한 자연조건으로 인해 많은 주민이 차마고도를 따라서 외지로 떠났다.

가깝게는 윈난성 각지로, 멀리는 쓰촨과 티베트 미얀마, 태국으로 떠돌았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손기술을 가지고 갔다. 금, 은, 동, 철 등 금속을 다루는 기술이었다.

금속공예술 덕분에 신화촌의 바이족은 타향이국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또한 금속공예 장인으로 쉽게 정착했고 경제적 부를 쌓고 사회적 명성을 얻었다.

한 공방에서 은기 공예품을 만드는 데 열중인 신화촌의 젊은 장인
그중 일부가 현지에서 보고 듣고 익힌 기술과 문화, 예술, 종교 등을 품고 귀향했다. 오늘날 신화촌에서 가장 유명한 장인 춘파뱌오(寸發標)가 대표적이다.

춘 장인은 16살부터 부친과 함께 고향을 떠나 중국 서남부를 주유하며 공예품을 팔고 견문을 넓혔다. 1987년 라싸에 정착한 뒤에는 각지에서 익힌 가공 기술을 융합해 독특한 작품을 만들었다.

따라서 티베트 자치구 정부는 포탈라궁의 금동 법기와 제기를 제작해달라고 요청했다. 춘 장인은 문화대혁명에서 파괴됐다가 복원한 티베트불교 사원의 법기도 만들었다.

자택에서 손수 만든 제품과 함께 포즈를 취한 춘파뱌오 장인
1996년에 고향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티베트를 방문하는 중국 및 외국 지도자에게 선물하는 금은 제품은 모두 촌 장인의 손을 거쳤다. 사실 신화촌에는 변변한 기술학교가 없다.

장인이 되려면 10~12세부터 가업을 잇거나 이웃어른을 스승으로 모셔서 기술을 전수받아야 한다. 수련 기간은 짧게는 5~6년, 길게는 10년이 걸린다. 따라서 가정마다 전승되는 기술과 만드는 제품 종류도 각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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