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김대우 감독의 <히든페이스>가 상영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우려감이 있었다. 2011년에 상영된 콜롬비아 출신 안드레 바이즈 감독의 <히든페이스>에 대한 인상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리메이크되는 영화들은 많지만 <히든페이스>의 경우에는 배우만 바꿔 원작과 똑같이 만든다면 굳이 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릴러 장르의 스토리가 너무 뻔했다. 최근에 상영됐던 허진호 감독의 리메이크작 <보통의 가족> 역시 이전에 <더 디너>라는 제목의 이탈리아 원작을 할리우드에서 이미 리메이크했으니 세 번째 영화였다. 결말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자식의 성공에 집착하는 한국 부모들의 특성을 잘 담아낸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우려와는 달리 <히든페이스>는 원작과 다른 시각으로 다른 욕망을 담고 있다. 누군가를 완전히 소유하고 길들이고 싶은 원초적 욕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그 욕망의 색깔은 확연하게 다르다.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을 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대응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듯이 <히든페이스>의 경우에도 '내가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비밀의 열쇠에 자신의 생사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벨렌은 지휘자인 안드레아와 연인관계다. 안드레아가 콜롬비아에서 직장을 얻게 되자, 벨렌은 자신이 하던 일을 접고 안드레아와 함께 이사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 년 계약으로 빌린 집에 비밀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시작된다. 영화는 이 화려한 집에 뭔가 숨겨져 있음을 암시하면서, 스릴러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원작의 오프닝 씬에서는 세면대에 받아놓은 물에, 리메이크작에서는 거울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면서 비밀공간과 연결 지점을 보여준다. 집에 비밀공간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와 긴장감을 자극하기 때문에 스릴러 장르에서 많이 쓰는 장치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 내 집에 함께 살고 있고 그가 나를 지켜본다는 설정과도 비슷하다. 내가 하는 행동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고, 상대는 나를 알지만 나는 그의 존재에 대해 모른다면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유령과 함께 사는 느낌이다. 숨겨진 공간은 스릴러에서 익숙한 소재이며 감춰진 욕망을 드러낸다.
김대우 감독은 <히든페이스>를 리메이크하면서 욕망에 원작과 다른 색깔을 덧입혔다. 원작에서는 안드레아를 너무 사랑했던 벨렌이 그의 사랑을 시험하기 위해 비밀의 방에 숨었다가 실수로 갇히게 된다. 한국 영화에서는 계급성과 동성애 코드를 첨가하고 주인공에게 영향을 주는 캐릭터들을 추가해 서사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인 성진(송승헌)은 돈과 지위를 갖춘 교향악단장의 딸인 수연(조여정)과 교제하면서 지휘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두 사람은 결혼까지 약속한다. 악단장이자, 예비 장모인 수연의 어머니(박지영)는 성진을 띄워주는 듯하면서 교묘하게 무시하고 압박하며, 자신과 딸이 우위에 있음을 과시한다.
수연은 타인을 통제하는 쾌락을 즐기는 변태성을 지닌 인물이다. 학창 시절부터 후배인 미주(박지현)를 노예처럼 부리며 서로 깊은 관계를 맺어왔던 수연이 성진과 결혼을 앞두면서 관계가 꼬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원작과는 달리 실수가 아니라, 수연은 미주의 고의로 밀실에 갇히게 된다. 원작에서는 밀실에 갇힌 벨렌이 생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느끼는 절박함과 긴장감으로 관객의 감정이입을 유도한 반면, 리메이크작에서는 수연이 실종된 상황에서 반응하는 사람들, 즉 수연의 어머니, 성진, 미주의 관계와 심경 묘사에 더 치중한다. <히든페이스>의 밑바닥에는 자신이 상대에게 대체 불가인 존재이기를 바라는 욕망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욕망대로 되지 않고 빈자리는 금방 메워진다. 그리고 경쟁 상대 역시 자신이 얻은 자리를 되돌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욕망에 성진까지 합세하면서, <히든페이스>는 끝까지 각자가 욕망의 끈을 집요하게 잡은 채로 마무리된다. 원작이 열린 결말로 끝나는 것과는 다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