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중국 음식도 예외가 아닌데 세계로 퍼진 중국 음식 속에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까지 곁들어 있다. 지구촌 중국반점의 요리를 통해 중국 본색을 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중국의 볶음국수 차오멘(炒麵)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볶음면, 일본에는 야키소바(焼きそば), 미국에는 초우메인(chowmein), 그리고 태국의 팟타이를 비롯해 동남아, 서남아에도 각국의 언어로 부르는 볶음면이 있다.
볶음면이 널리 퍼진 이유는 물론 맛있으니까, 현지 환경에 맞으니까, 또 조리하기도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볶음면은 사실 국수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채소를 넣고 기름 두른 팬에서 달달 볶으면 조리 끝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볶음면이 여러 나라에 두루 퍼졌지만 그 전파 과정을 보면 서글픈 측면도 있다. 미국의 중국식 볶음면 초우메인이 그렇고 일본의 야키소바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중국 차오멘이 생겨난 배경에도 역사적 아픔이 있다. 볶음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먼저 미국에 초우메인이 전해진 내력이다. 초우메인은 중국어로 차오멘(炒麵)이라고 하는 볶음면의 광동식 발음이다. 미국에 볶음면을 전한 사람들이 광동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초우메인이 미국에 전해진 것은 19세기 초중반 무렵으로 추정한다. 기록으로 처음 보이는 것은 1906년이라지만 그건 기록일 뿐 광동성 출신 노동자들이 미국에 들어온 1820년대부터 초우메인도 함께 퍼진 것으로 본다.
이 무렵 미국에 온 광동 출신 중국인은 대부분 까막눈의 막일꾼이었다. 간신히 노예를 벗어난 수준의 임금을 받고 미국 대륙횡단철도 건설 노무자로, 서부의 골드러시 때 금광 노동자로 일했다.
돈도 없고 고달픈 노동에 시달리던 이들이 먹었던 음식이 초우메인이다. 고향에서 먹던 것처럼 국수에다 주변에 흔한 채소를 이것저것 넣고 어쩌다 구한 돼지고기 닭고기도 넣고 기름에 볶아 먹었던 싸구려 국수였다. 지금은 미국에서 중국식 패스트푸드로 대중화됐지만 처음 전해진 과정은 이렇게 눈물겨웠다.
일본의 볶음국수 야키소바도 따지고 보면 애환이 서려 있다. 일본에서는 야키소바의 뿌리를 중국 차오멘으로 본다. 이런 차오멘이 일본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35년 이후로 도쿄 중심부의 음식점에서 선보였다고 한다. 아마 대륙 침략 과정에서 광동 복건 등의 중국 남부로부터 전해져 색다른 별미의 중국 국수로 소개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랬던 야키소바가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것은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후다. 패전 후 일본은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다. 농지는 황폐해진 데다 식량 수입도 끊겼고 초기에는 점령군인 미국의 지원도 신통치 않아 고질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일례로 쌀값은 무려 130배나 폭등했고 굶주림이 계속되면서 패전 후 1949년까지 아사자를 포함해 영양 실조에 걸린 사람이 1,000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야키소바는 이런 상황에서 대중화됐다. 값비싼 국수는 조금 넣고 대신 값싼 양배추를 듬뿍 썰어 넣어 간장 등의 소스와 함께 기름에 볶은 야키소바가 포장마차에 등장하면서 배고픈 일본 서민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무심코 맛있게 먹는 야키소바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역사도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