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어젯(3일)밤 전까지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가장 최근에 선포됐던 비상계엄은 45년 전, 1979년에 있었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른지 장세만 기자가 비교해 봤습니다.
<기자>
지난 1979년 10월 27일, 모든 국내 조간신문의 1면에 비상계엄 선포 소식이 실렸습니다.
전날인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튿날 새벽 4시를 기해서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대한뉴스 :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국민들의 애국심과 지혜와 단합으로 국가 비상시국에 결연히 대처해 나갈 것을 호소했습니다.]
당시 계엄 선포의 배경은 18년간 권좌를 지킨 현직 대통령의 피격 서거였습니다.
[심지연/경남대 정외과 명예교수 : 그 당시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고 사태로 인해서 일반 국민들이 계엄을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전혀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대부분 시민들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6시간 만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7달 뒤인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이 발생했습니다.
전두환 씨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사회 위기를 극복한다며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이때 포고령 제10호를 발표했는데, 모든 정치 활동의 금지와 언론·출판에 대한 사전 검열을 명령했고, 대학엔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등 정치인 26명은 권력형 축재와 학생시위, 노사분규 등을 선동한 협의로 계엄령에 따라 연행됐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택 연금됐습니다.
5.17 계엄 확대 조치 이후 1980년 8월 16일엔 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사임했고, 8월 27일엔 전두환 씨가 11대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비상계엄은 그땐 456일 만에, 이번엔 6시간 만에 해제됐습니다.
그 시절과 지금, 가장 큰 차이는 87년 민주화 이후 37년간 쌓아 올려진 '한국 민주주의' 그 자체란 평입니다.
이제 우리 헌정사에 계엄령 선포 사례는 이승만 정부 때 5번, 박정희, 최규하 정부 때 5번, 그리고 이번까지 모두 11번으로 기록됐습니다.
(영상취재 : 하 륭, 영상편집 :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