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신 복희(오른쪽)와 여와
두 남녀의 모습은 마치 한 몸과도 같습니다.
상반신은 사람인데, 하반신은 뱀의 형상으로 서로 얽혀 있습니다.
각각 컴퍼스와 구부러진 자를 들고 있는 기괴한 모습의 남녀는 중국 고대의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복희'와 '여와'라는 이름의 신입니다.
약 1천3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비로운 그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다시 걸렸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투루판(吐魯番) 아스타나 고분에서 발견한 '복희와 여와' 그림(복희여와도) 진품을 상설전시관 내 중앙아시아실에서 전시 중"이라고 오늘(3일) 밝혔습니다.
복희와 여와 그림 진품이 공개되는 건 2021년 6월 이후 약 3년 5개월 만입니다.
박물관 측은 "작품 보존을 위해 진품은 수장고에 보관하고 모사도를 전시실에서 선보여왔으나 3년여 만에 다시 실물을 관람객에게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복희와 여와 그림은 중국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신강위구르) 자치구 투루판시에서 동남쪽으로 약 35㎞ 떨어진 곳에 있는 무덤 유적인 아스타나 고분에서 나온 유물입니다.
아스타나 고분에서는 20세기 초 서구 열강이 실크로드 탐험을 주도하고 1959년부터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이뤄지면서 지금까지 400기가 넘는 무덤이 발견돼 다양한 유물이 나온 바 있습니다.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은 일본인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1876∼1948)를 주축으로 한 탐험대가 3차에 걸쳐 수집했던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거쳐 국립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으로 넘어왔습니다.
복희와 여와 그림은 무덤에서 나온 여러 부장품 가운데 눈에 띄는 유물입니다.
복희는 천지 만물을 포함하는 팔괘(八卦)를 만들고 불을 발명했으며, 그물을 만들어 고기 잡는 법을 인류에게 전해줬다고 전합니다.
여와는 인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두 창조신이 서로 몸을 꼬고 있는 듯한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우주와 만물이 생겨나는 것을 상징하는데, 주로 무덤 널방 천장에서 발견됐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태어나 다음 세상에서 풍요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중앙아시아실 전시를 담당하는 권영우 학예연구사는 "복희와 여와 그림은 6세기부터 8세기 중반까지 많이 그렸으며 주로 무덤 내부를 장식하기 위해 제작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가로 93.2㎝, 세로 188.5㎝ 크기의 이 그림은 무덤에서 어떻게 쓰였을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단서는 삼베 천 가장자리 곳곳에 난 구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권 연구사는 "구멍들은 천장에 붙이기 위해 나무못을 사용한 흔적"이라며 "망자의 입장에서는 무덤 천장이 복희와 여와가 창조한 하늘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1912년 그림을 발견한 탐험대는 '천장에는 목관과 비슷한 크기의 인수사신(人首蛇身·사람 머리에 뱀의 몸을 한 형상을 뜻함)의 그림이 마치 모기장처럼 매달려 있다'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전시실에서는 그림 진본과 쓰임새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박물관은 무덤 안 공간처럼 연출한 공간에 복희와 여와 그림 진품을 전시한 뒤, 이와 같은 크기의 복제본을 천장에 매달아 무덤에 설치된 것처럼 연출했습니다.
권 연구사는 "복희와 여와 그림은 전 세계에 60여 점 있으나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대표작으로 평가된다"며 "그림의 의미와 기능적 측면을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습니다.
빛에 약한 회화 작품의 특성상 진품은 일정 기간만 전시됩니다.
박물관 측은 내년 상반기까지 그림을 전시한 뒤 복제품 등으로 교체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