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7일 폭설이 내리는 와중에 배달길에 나선 근로자
지난 27일 오전 11시, 인천에 사는 배달노동자 A 씨는 폭설이 내리는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A 씨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일을 하루 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건당 1천 원대에 불과하던 배달운임이 이날 6천 원으로 오른 것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아무래도 오토바이에 올라야 할 것 같다"며 "눈길이 위험하지만 이런 날 어떻게 쉴 수 있겠나"고 말했습니다.
오늘(28일) 업계 등에 따르면 전국에 수도권과 중부 지방이 눈으로 덮인 전날 A 씨 같은 다수의 배달노동자는 눈길을 뚫으며 평소와 같이 일터로 나갔습니다.
배달노동자들의 온라인 카페에는 "자빠진다 생각하고 나가야 한다", "플랫폼에서 눈 오니까 운임 프로모션으로 꼬신다", "단가는 너무 좋은데 무섭다"는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실제 배달에 나섰다가 눈길 사고를 당한 사례도 나왔습니다.
수원에서 일하는 이 모 씨는 '3시간 안에 8건을 배달하면 3만 원을 추가 지급한다'는 배달 플랫폼의 공지를 보고 오토바이에 올랐으나 집 앞 골목길에서 넘어져 발목을 다쳤습니다.
결국 1건도 배달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는 주 모 씨 역시 추가 운임을 생각해 출근하려 했으나 집 앞에 쌓인 눈을 보고 포기했습니다.
주 씨는 "플랫폼들이 안전은 생각하지 않고 배달 건수만 늘리려 한다"고 했습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의 구교현 지부장은 "평상시 배달운임이 너무 낮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초래된다"며 "지난 8개월간 보도된 배달원 사망 사고만 16건이다. 돈으로 위험을 무릅쓰게 하는 요금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배달노동자 등을 위해 국민의힘과 정부는 '노동약자지원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지난 26일 밝혔습니다.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닌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플랫폼 종사자, 5인 미만 영세사업장 근로자를 '노동 약자'로 규정하고 국가가 지원하는 게 뼈대입니다.
고용·보수·분쟁해결을 지원하는 다양한 방안이 담겼습니다.
이들의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 재정 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핵심으로, 고용노동부 장관 산하에 노동약자지원위원회를 둬 사업을 운용하도록 했습니다.
아울러 취업 촉진 및 고용안정, 복지증진, 권익 보호, 표준계약서 제정·보급, 보수의 미지급 예방, 분쟁조정위원회와 공제회의 설치·지원 방안 등도 주요 내용으로 포함했습니다.
처우 개선을 위한 사회적 관심 확대 분위기 속에 일각에서는 그간 노동계가 요구해온 주장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구 지부장은 "배달노동자가 요구하는 4대 보험 혜택이나 운임 인상 등은 언급이 없다"며 적정 운임을 보장하는 '안전운임제' 도입과 플랫폼이 배달원을 채용할 때 보험에 반드시 가입하도록 하는 '유상운송보험 의무화'가 시급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