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중국 음식도 예외가 아닌데 세계로 퍼진 중국 음식 속에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까지 곁들어 있다. 지구촌 중국반점의 요리를 통해 중국 본색을 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즐겨 먹는 양갱은 팥앙금 혹은 밤앙금을 한천으로 굳혀 만든다. 원래 일본에서 차와 함께 먹는 다과로 발달했지만 우리나라에 전해진 후 한국 과자가 됐다.
이런 양갱, 이름이 특이하다. 한자를 보면 양 양(羊)에 국 갱(羹)자를 쓰니 양고기 국이라는 뜻이다. 팥앙금, 밤앙금으로 만든 과자에 왜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름을 지었을까?
유래와 관련 있다. 일본에서는 고대 중국에서 양고기 국으로 만들었던 간식이 일본에 전해져 지금의 양갱이 됐다고 말한다. 양고기 국을 은근한 불로 오래 끓이다 식히면 지방과 단백질이 젤라틴처럼 굳어진다. 여기에 갖가지 재료와 향신료를 섞어 만든 간식이 지금 양갱의 원조라는 것이다. 양갱이라는 이름이 생긴 내력이다.
일본에 중국의 양고기 국 간식이 전해진 것은 일본의 중세 시대라고 한다. 중국에 유학 갔던 승려가 귀국할 때 차와 함께 가져왔는데 절에서는 고기를 먹을 수 없는 데다 당시 일본 사회는 육식을 금기시했기에 양고기 국으로 만든 간식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양고기 국 대신 팥앙금으로 다과를 만들어 차 마실 때 먹은 것이 지금 양갱의 유래라고 한다.
실제 일본 문헌에서 양갱이 보이는 것은 16세기 무렵이다. 서당 학습서인 『정훈왕래(庭訓往来)』에 가을에 먹는 과자로 나온다.
다만 이 무렵에는 양갱뿐만 아니라 자라 국인 별갱(鱉羹), 돼지고기 국인 저갱(猪羹), 당나귀곱창 국인 여장갱(驢腸羹), 대나무 국인 죽갱(竹羹)이라는 이름도 보인다. 여기서 양갱, 저갱 등 고깃국이라는 이름은 실제 고깃국은 아니고 찹쌀가루에 감미료룰 더해 찐 간식을 담은 그릇의 모양새에 따라 지어진 명칭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일본에서는 팥앙금으로 만든 양갱이 고대 중국의 양고기 국 간식에서 비롯됐다고 하는데 그러면 중국에는 양갱의 원조라고 할 만한 그런 고깃국 간식이 남아 있을까?
웬만하면 우리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중국이지만 양고기 국 양갱에 대해서만큼은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에도 옛날 양고기 국 간식, 양갱과 비슷한 음식은 있다. 중국어로 먼즈(燜子)라고 부르는 간식, 내지는 간편 음식(小吃)이다.
먼즈는 우리말로 민(燜)으로 읽는 한자 의미 그대로 약한 불에서 오랜 시간 뭉근하게 끓여서 익힌 음식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먼즈로는 산동성 연태(煙台) 지역의 명물 먹거리인 연태 먼즈를 꼽는다. 말랑말랑한 콜라겐 같은 식감이 나는 이 간식은 당면 반죽에 간장, 참깨, 마늘 소스 등을 섞은 후 솥에서 오랜 시간 기름에 지져가면서 만든다. 역사는 100년 남짓 됐다고 한다. 고대의 양고기 국 간식과는 별 관련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래도 참고할 부분이 있다.
다른 지역 먼즈의 특성 때문이다. 이를테면 하북성 중부 도시 정주(定州)의 명물, 정주 먼즈가 그것이다. 현지에서는 이 음식을 돼지고기 먼즈(猪肉燜子)라고 부른다.
엄선한 돼지고기를 뭉근한 불로 오랜 시간 끓이면 고기가 흐물흐물해진다. 여기에 마의 일종인 산약(山藥) 가루를 섞어 굳힌 후 기름에 지져 먹는다. 생긴 모습은 일종의 양갱 내지 소시지처럼 생겼다.
하북성과 하남성 등 화북 지방에는 당나귀국 먼즈(驢湯燜子)라는 음식도 있다. 화북 지역에서 많이 먹는 당나귀고기 국에 당나귀 기름을 넣고 오랜 시간 약한 불로 끓인다. 여기에 전분 등을 넣고 응고시켜 완성한다. 이렇게 만든 당나귀 먼즈는 직접 간식으로 먹거나 혹은 빵 사이에 끼워 식사로 먹는다.
화북 지방의 당나귀 먼즈나 하북성 돼지고기 먼즈는 어딘지 모르게 옛날 양고기 국으로 만들었다는 고대의 양갱과 닮았을 것 같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