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명산에서 발견된 납구슬, 그 정체는?
2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에서는 '미스터리 서클 - 납구슬은 왜 그곳에 있었나?'이라는 부제로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 납구슬의 진실을 추적했다.
1345년 고려시대에 건축된 전북 익산의 숭림사에서는 지난 2002년 불상 아래의 마루에서 야구공보다 작은 크기의 납구슬 3개를 발견했다.
구슬의 지름은 6.5cm에 무게 1.7kg 정도의 납구슬은 왜 이곳에서 발견되었을까?
그런데 이러한 납구슬이 발견된 곳은 숭림사뿐만이 아니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조성된 절터 약 30곳에서, 100여 개의 납구슬이 출토된 것.
이에 불교문화유산 전문가들은 이 납구슬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추적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이를 중단했다. 불교문화유산연구소 관계자는 2001년 이후부터 등장한 납구슬에 대해 과거에 묻힌 것이 아닌 20세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했던 것.
그런데 납구슬이 발견된 곳은 사찰만이 아니었다. 전국의 사찰과 절터뿐만 아니라 충남의 낮은 산에서 납구슬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납구슬의 정체에 대해 여러 추측들이 나온 가운데 장흥의 용화사에서는 납구슬뿐만 아니라 자수정 구슬도 함께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제작진은 자수정 구슬의 실물을 확인하기 위해 이를 기증한 관계처로 향했다. 그런데 나주문화유산 연구소 관계자는 직접 볼 수는 없고 사진으로 볼 수 있다며 자수정 구슬의 사진을 공개했다.
납구슬과 크기가 비슷한 자수정 구슬. 그런데 제작진은 뜻밖의 장소에서 자수정 구슬의 실물을 확인했다. 납구슬을 충남의 산에서 700여 개 발견했다던 제보자가 자수정 구슬도 함께 발견했던 것.
그리고 그가 보여준 자수정 구슬은 용화사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했다. 제작하는 데 꽤나 큰 비용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자수정 구슬에 대해 감정을 의뢰했다.
이에 전문가는 천연 자수정이며 현대의 기술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한 보석감정사는 이 자수정 구슬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익산 공단에서 2,30년 전에 가공해서 수출을 했다"라고 말한 것.
제작진은 곧바로 감정사가 알려준 곳으로 가서 자수정 구슬에 대해 추적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한 업체에서 이것이 자신들이 제작해 판매한 것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누가 구매했는지도 알고 있던 업체. 이에 제작진은 구매자와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곧 구매자와 연락이 닿았다.
호국불교라고 자신의 소속을 밝힌 이는 "돌아가신 스님, 대불님이 구매하신 것이다. 우리 절에 와서 보시면 좋은 일 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구매자가 제작진에게 알려준 주소는 700여 개의 납구슬이 발견된 구슬산 근처였다. 그런데 일반 사찰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곳으로 마당에는 똑같은 얼굴을 한 동상들이 서있었다.
자신을 청비 스님이라 소개한 이는 보여줄 것이 있다며 마당 한 켠으로 가서 납구슬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은 안 한다. 청만원, 푸른 게 꽉 찬 원이라고 부른다"라며 자신의 스승이 생전에 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청비 스님은 "우리나라가 세세생생 부처님의 뜻으로 발전하는 그런 국가로 가야 된다는 의지를 갖고 어떤 영계의 체험을 가지고 그걸 만드셔서 세상에 많이 묻으셨다"라고 설명했다.
납구슬을 만든 이는 살아있다면 88살이 됐을 강모 씨였다. 이에 청비 스님은 "절이 좋은 기운으로 활성화되면 우리나라가 그렇게 당신이 원하는 부강국이 되지 않느냐는 우리 대불님의 이론으로 납구슬과 자수정 구슬을 묻어두었다. 자수정이나 청만원은 불상 같은 역할이다"라고 덧붙였다.
자수정을 석가모니의 돌이라 생각한 그의 스승은 자수정 구슬을 세상에 놓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납구슬을 만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청비 스님은 "납을 묻은 이유는 납은 썩지 않는 것 때문이다. 이게 부처님이다"라고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12년 경 사이 자수정 구슬과 납구슬을 곳곳에 묻은 강 씨. 그는 완전함의 상징이라며 6이라는 숫자를 고집하며 지름 6센티가량의 구슬들을 만들었다고.
대불로 불리던 강 씨를 형상으로 한 동상들로 가득한 방도 있었는데 과거에는 그의 브로마이드를 제작할 정도로 많은 신도들이 그를 따랐다고. 그리고 신도들을 모이게 한 비법은 영험한 치유 능력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주변을 돌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고 믿었던 신도들. 종교 전문가는 강 씨에 대해 "신격화된 존재로서의 모습이 많이 노출되는 것 같다. 영적 능력인지 자연적 치유인지 파악은 어렵다. 하지만 부처와 다른 신격화된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사찰과 절터 주변에 납구슬을 묻은 것은 기성 불교에 대한 적개심 때문임을 짐작하게 했다.
강 모 씨는 스스로를 우주의 황제라 칭하고 자신을 돕고 지시를 따르는 이들에게만 새 세상을 허락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것은 일반 신도뿐만 아니라 스님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그는 기성종교의 성인들이 자신에게 항복했다는 주장을 펼쳤고 이에 기성교단의 스님들이 승적을 옮기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그의 황금기는 왜 끝났을까?
1993년, 자신을 따르던 여신도를 성폭행하고 금전까지 갈취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것. 그러나 강 씨의 제자인 청비 스님은 여신도들이 자신의 스승에 대해 허위 고소를 했다고 주장했다. 모든 것은 피해자 측의 모함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방송은 그가 납구슬을 숨겼던 사찰에는 여전히 부처의 은덕이 자리해 있고 그가 청만원을 묻었던 석탑 주변에는 단풍이 물들어가고 있다며 그가 헛된 염원을 감췄던 절터와 명산은 여전히 고요하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직 그에게만 귀한 의미였던 청만원을 언급하며 과연 믿음과 집착의 경계는 어디쯤 일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김효정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