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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 뒤에야 깨달은 것들…엘리트들, 이제 내가 좀 보이나요?"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Voters to Elites: Do You See Me Now? by David Brooks

1112 뉴욕타임스 번역 썸네일
 

* 데이비드 브룩스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우리 정치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난 40여 년간, 우리는 정보의 시대를 살았다. 교육 수준이 높은 계층은 자신들이 후기 산업 경제의 중추이므로, 우리 같은 계층의 필요에 부합하는 사회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었고, 실제로 그에 따라 결정이 내려졌다.

교육 정책도 우리가 밟은 그 과정대로 사람들을 밀어 넣었다. 소위 '미래의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4년제 대학 교육을 받은 이들로 점점 더 제한되는 와중에 직업 훈련은 약화했다. 정치권은 고등 교육을 받은 이들이 이끄는 지식 경제에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 제조업 관련 일자리는 인건비가 싼 국가로 이전한 자유무역 정책을 수용했다. 제조업 부문의 고용이 줄어드는 동안 금융과 컨설팅 업계는 덩치를 불렸다.

지리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간주됐다. 자본과 고급 기술을 갖춘 노동력이 오스틴과 샌프란시스코, 워싱턴으로 모여들기만 한다면, 여기에 끼지 못한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민 정책으로 인해 교육 수준이 높은 이들은 저임금 노동의 덕을 봤지만, 기술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새로운 경쟁을 마주하게 됐다. 경제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녹색 기술로 중점을 옮기면서 화석연료에 생계를 의존하는 제조업, 운수업 종사자들은 불리한 위치로 내몰렸다.

이번에 우리 귓가에 울려 퍼진 큰 소리는 '리스펙트', 즉 존중이 재분배되는 소리였다. 학벌의 사다리를 올라간 이들은 찬사를 받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았다. 남자아이들에게는 상황이 더욱 혹독했다. 고등학교에 가면 성적 상위 10% 학생 가운데 3분의 2가 여학생인 반면 하위 10% 가운데 3분의 2는 남학생이다. 교육 과정이 남성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짜여있지 않고, 이는 평생 개인에게, 나아가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 전체가 거대한 분리 시스템을 장착한 기계처럼 변했다. 우리 사회는 학업에 재능이 있는 이들을 나머지 모든 사람들 위로 올린다. 얼마 가지 않아 학위 소지 여부가 미국 사회에서 사람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됐다. 고등학교만 나온 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보다 평균 수명이 9년 짧고,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으로 죽을 확률은 6배나 더 높다. 혼인율은 낮은데 이혼율이나 혼외 출산을 할 확률은 더 높다. 고졸자는 대졸자보다 비만일 확률도 높다.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고졸자 중 24%는 친한 친구가 없다고 한다. 대졸자보다 공공장소 이용률도 떨어지고, 지역사회 모임이나 스포츠 리그에 속해 있을 가능성도 작다. 사회 정의를 외칠 언어도 갖지 못한 이들에게 공적인 미덕이라 할 만한 신념을 지니는 것은 사치다.

이런 차이가 믿음과 신뢰의 상실로, 배신감으로 이어졌다. 대선을 9일 앞두고 나는 테네시주의 한 기독교 민족주의 교회를 찾았다. 예배는 진정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씁쓸함, 공격성, 배신감도 팽배한 분위기였다. 목사가 우리를 파괴하려는 성경 속 유다와 같은 배신자들에 관한 설교를 이어가는 동안 "어두운 세상"이라는 표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들은 지속적인 위협과 극단적인 불신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자기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들, 그리고 수많은 미국인은 카멀라 해리스를 비롯한 로스쿨 졸업생들이 제시하는 "기쁨과 희망의 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민주당에 주어진 임무는 단 하나, 불평등과 싸우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 이토록 극심한 불평등이 보란 듯이 존재하는데, 많은 민주당 당원이 이를 보지 못했다. 다수의 좌파가 인종 불평등, 젠더 불평등, LGBTQ 불평등에 집중했다. 수십억 달러의 기부금을 받는 대학을 나와 대기업을 위한 환경 그린워싱 및 다양성 세미나를 듣는 삶을 살았다면 계급 불평등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도널드 트럼프는 물론 괴물 같은 나르시시스트이지만, 사회라는 거울을 들여보면서도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교육받은 계층도 뭔가 잘못됐다.

좌파가 정체성 행위 예술로 방향을 트는 사이 도널드 트럼프는 두 발 벗고 계급 전쟁에 뛰어들었다. 퀸즈 출신 트럼프의 맨해튼 엘리트에 대한 분노는 미국 전역의 시골 사람들이 느끼는 계급적 적개심과 마법처럼 맞아떨어졌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이 사람들은 당신을 배신했을 뿐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는 것이었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한때 민주당이 만들고자 했던 것, 바로 인종을 불문하고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고루, 두루 받는 다수 연합을 만들어냈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흑인 및 히스패닉 노동자들 사이에서 급등했다. 뉴저지, 브롱크스, 시카고, 댈러스, 휴스턴과 같은 지역에서 보인 득표율 상승세는 놀라울 정도다. NBC 출구조사에 따르면 유색인종 유권자의 1/3이 트럼프를 찍었다. 트럼프는 또 무려 20년 만에 공화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전체 득표에서 50%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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