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쉽 네 줄 요약
· 트럼프 같은 극우 포퓰리즘이 최근 흥행한 것은 세계 정치의 공통적인 흐름입니다.
·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트럼프 당선과 같은 현상을 '브라만 좌파'가 된 진보 정당에 이유를 찾았습니다.
·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 1990년대 이후 진보 정당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정당에서 고학력 전문직의 정당으로 변화했습니다.
· 진보 정당에서 버림받은 노동 계층이 극우 포퓰리즘에 끌리게 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트럼프가 다시 당선됐다. 어떻게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분석이 며칠 새 쏟아져 나왔고 앞으로도 더 나올 것이다. 뉴스쉽에서도 '러스트벨트의 화난 힐빌리', 그러니까 쇠락한 제조업 지역의 가난한 백인 노동 계층에서 트럼프 흥행의 원인을 찾은 바 있다.
▷ "구글 해체"도 주장하는, '더 매운 맛' 그 남자... 빅테크 미래는 어떻게 (뉴스쉽, 2024.08.10.)
또 민주당의 패배를 인종 문제나 젠더 이슈 등 '정체성 정치'에 몰두한 탓으로 보는 시각도 짚어봤다.
▷ '정치적 올바름'이 진보를 망쳤다고? '정체성 정치'의 시대는 지나갔나 (뉴스쉽, 2024.09.28)
이번 뉴스쉽에서는 트럼프로 대표되는 극우 포퓰리즘이 어떻게 제도권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게 됐는지 거시적인 시각에서 살펴보려 한다. 특히,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 '록스타 경제학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토마 피케티의 관점을 통해 극우 포퓰리즘 정치의 흐름을 살펴볼 것이다. 글의 상당수는 그의 신간 ⌜평등의 짧은 역사⌟와 2020년작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참고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도널드 트럼프를 '극우'로 지칭하는 문제에 대해서 짚으려 한다. 통상 극우(Far-right) 정치는 인종이나 성별 등에 덧씌워진 혐오를 동원해 인기를 얻는 방식을 택한다. 극우는 자유무역과 세계화처럼 기존의 보수가 내세웠던 가치가 아니라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을 옹호한다. 또한 극우는 기존 보수를 기득권, 엘리트주의자라고 비판하면서 등장해 자신을 기존의 정치 세력과 달리 다른 새롭고 깨끗한 사람, 기존의 질서를 뒤엎을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트럼프는 극우라고 정의할 만하다.
노동자의 정당에서 고학력자의 정당이 된 민주당
보수 정당은 전통적으로 돈 많은 이들, 자본가, 상인들의 정당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부자의 정당이다. 변화한 건 진보 정당이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가난한 사람들, 서민, 노동자 계층을 대변하던 진보 정당이 1990년부터는 브라만(사제 계급), 그러니까 고학력자들의 당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에서 진행됐다. 토마 피케티는 이런 주장을 데이터를 통해 뒷받침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 고학력인 사람들 중 다수는 공화당에 투표했다. 그런데 2000년대와 2010년대에 석사, 박사 학위 소지자, 의사나 변호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 중 다수는 민주당을 지지한다. 아래 표는 학력과 민주당에 투표한 비율을 비교한 것이다. 나이나 성별, 가족 사항, 소득, 자산, 인종과 관련해서는 통제 변수를 반영한 그래프다.
대학원에서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자격증을 통해 전문직이 된 고학력자들은 1990년대 이후 점차 공화당보다 민주당을 지지하게 됐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브라만 좌파', 그러니까 고학력 전문직들의 정당이 됐다. '브라만 좌파'는 '상인 우파'와는 차이가 있다. 우선 브라만 좌파는 학력과 지식, 인적자본의 축적을 지향한다. 재능이나 노력을 통해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이들의 정서에 깔려 있다. 이들은 고학력인 만큼 소득이 높은 편이다.
반면에 상인 우파는 화폐나 금융 자본의 축적에 의존하는 이들이다. 이들 계층은 특히 자산이 높다. 고학력이 좋은 직업으로 이어져 고소득을 얻고, 고소득이 쌓여 자산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연결되지만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르다. 단순화하면 브라만 좌파는 변호사나 실리콘밸리의 개발자와 같은 자수성가형 전문직, 상인 우파는 전통적으로 자산이 많았던 자본가, 기업가를 떠올리면 된다.
'브라만 좌파'가 트럼프를 만들었다
아래 표를 보면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대선이 있던 시기, 미국 역사상 최초로 소득 상위 10% 유권자의 다수가 공화당보다 민주당을 지지하게 됐다. 민주당이 고학력 전문직의 지지를 받으면서 전보다 더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내세우고,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많이 걷는 것에는 부담을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주저하게 되면서 이를 알아차린 노동 계층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을 멈추게 됐다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사실상 버림받은 저소득 노동자층에게서 가장 먼저 일어난 현상은 투표를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공화당과 민주당 어느 쪽도 자신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거나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체념이 커지면서 노동 계층의 투표율은 낮아졌다. 이런 체념이 분노로 변화하던 시기 이들을 동원한 것이 트럼프라고 볼 수 있다. 브라만 좌파에 민주당을 뺏겨 갈 곳 잃은 노동 계급의 마음을 얻은 건 극우 포퓰리즘이었다.
극우 포퓰리즘이 떠오른 건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당제인 유럽에서는 극우 정당이 노동 계층의 지지를 받았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7월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이 집권을 넘볼 정도의 득표를 받았다. 양당제인 미국에서는 공화당 내에서 주류와는 다른 트럼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세력이 커졌고, 결국 두 차례나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멈춰 선 '평등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려면
1800년대까지만 해도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사이의 불평등이 훨씬 컸는데 1914년 이후 재분배가 일어난 건 '사회적 국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19세기 말부터 사회주의의 이념이 퍼지고 노조가 집단행동을 벌였다. 세계대전과 대공황도 세상을 뒤엎어야 한다는 혁명의 분위기에 불을 지폈다. 피케티는 양차대전의 시기인 1914년부터 1945년까지 노동과 자본의 권력 관계가 이전과는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봤다. 이러한 영향으로 사회적 국가, 복지 국가 이념이 떠오르면서 소득과 상속에 대해 강력한 누진세가 도입됐다.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각국 정부는 잘 살고 잘 버는 사람들에 대해 누진적으로 세금을 걷었고, 걷은 세금을 교육과 의료 분야,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보장 정책에 적극적으로 지출을 하게 됐다. 이로 인해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완화되었다는 게 피케티의 연구 결과다. 이런 사회적 국가의 불평등 완화로 가장 덕을 본 건 중산층이다. 피케티의 분류에 따르면 상층은 자신의 재산을 대부분 금융 자산으로 가지고 있고, 하층은 대부분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다. 중산층은 자신의 재산을 대부분 부동산 자산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금융 자산도 일부 소유하고 있는 계층이다. 괜찮은 일자리에서 하루하루 일하며 월급을 받아서 생활하는 이들이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는데, 복지 국가의 탄생이 두터운 중산층을 만든 것이다.
문제는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이 완화되어 오던 흐름이 멈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레이건 대통령,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가 집권하던 시기인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라고도 불렸던 흐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1980년대 공화당의 레이건 집권 이후에 민주당의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가 집권한 적 있지만 이들도 레이건주의를 기본 전제로 깔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책을 폈다고 봤다. 이런 점에서 1990년대 이후의 미국 민주당이 브라만 좌파가 됐다고 비판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