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3년 9월 15일 탄생한 '삼양라면'의 신문광고
1958년 일본 닛신(日淸)식품의 창업주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인스턴트 라면이 한국으로 건너와 1963년 9월 첫선을 보였습니다.
1961년 삼양식품을 창립한 전중윤 초대회장이 일본 묘조(明星)식품으로부터 제조법을 건네받아 만든 삼양라면이었습니다.
첫 출시 가격은 10원이었습니다.
졸업식 같은 특별한 날에 먹던 짜장면 한 그릇이 20원이었으니 비싼 음식에 속했습니다.
느끼한 닭고기 국물 맛이 나서 인기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맵고 짭짤한 한국식 라면으로 재탄생시킨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와대에서 삼양라면을 맛본 박 전 대통령이 "고춧가루를 더 넣어야 우리 입맛에 맞겠다"고 조언하자 전중윤 회장이 양념 수프에 매운맛을 첨가한 것이 K라면의 효시였다는 것입니다.
안도 회장이 1971년 세계 최초로 컵라면을 내놓은 지 1년 만에 삼양은 국내 최초로 컵라면을 시판했습니다.
'끓이지 않고 3분이면 OK!'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었지만 봉지라면보다 3배가량 비싼 가격 탓에 관심을 끌지 못하고 단종됐습니다.
라면은 삼양이 들여왔지만, 국내 시장을 제패한 것은 후발주자인 농심이었습니다.
농심은 컵라면의 대명사가 된 사발면과 오동통한 면발에 완도산 다시마를 넣은 '너구리'에 이어 '안성탕면', '짜파게티', '신라면'이 줄줄이 대박을 터트리며 단숨에 시장 지배자로 올라섰습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 맞춰 출시된 신라면은 특유의 맵고 개운한 뒷맛으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지금까지 '국민 라면'의 타이틀을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라면이 히트하면 외국 업체들이 '짝퉁'을 만들어 판매할 정도로 K라면의 인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올해 라면 수출액이 지난달 1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10개월 만에 작년 한 해 수출액(9억5천200만 달러)을 넘어선 것입니다.
K라면의 인기몰이는 한국 가요와 드라마, 한식 등 K컬처 확산의 시너지 효과라 하지만,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국내 업체들의 혁신 노력에 힘입은 바 큽니다.
1989년 라면에 미국산 공업용 소기름을 넣었다는 '우지파동'으로 생사 기로에 섰던 삼양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도 바닥으로 떨어졌던 삼양은 2012년 출시한 '불닭볶음면'이 자극적이면서도 독특한 감칠맛으로 세계 시장을 강타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 구미에서 열린 '구미라면축제'가 궂은 날씨 속에서도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는 소식입니다.
지난 1~3일 행사 기간에 지난해보다 4만 명이나 많은 12만 명이 구미를 찾았는데, 라면 한 그릇 먹으려고 2시간 넘게 줄을 설 정도였다고 합니다.
구미역 앞 475m 도로에 펼쳐진 '세상에서 가장 긴 라면 레스토랑'에는 라면 판매 부스 외에 나만의 라면을 만들 수 있는 '라면공작소'와 팝업스토어, 무인 로봇 푸드트럭 등 각양각색의 K라면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조성됐습니다.
K라면의 영어 표기인 'Ramyeon'도 혀끝이 윗니 뒷부분에 닿는 우리 발음에 맞게 'Lamyun'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삼양식품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