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때로 가정은 어느 곳보다 치열한 전장이다. 문득 불행이 한 가정을 찾을 때, 교육 방송에 나올 법한 태도로 침착하게 합심해서 그 순간을 넘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위기는 가정을 뒤흔들어 균열을 만들고, 친밀했던 이들 사이에 틈을 만든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 사이에 떡 하니 나타난 검은 틈새. 그 어두운 곳에는 과연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지금 한국의 인기 콘텐츠는 이 검은 계곡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최근 우리를 찾아온 세 편의 작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지옥> 시즌2, <보통의 가족>은 모두 가정의 위기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흔들리고 괴로워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지키고 싶은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 지금 한국에서 사랑받는 세 편의 작품이 비슷한 주제 의식을 품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얼핏 무관해 보이는 세 작품 사이 공통점을 찾으며, 지금 한국 콘텐츠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은 어떨까. 아래부터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지옥> 시즌2, <보통의 가족>에 대한 약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해주길 바란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태수(한석규)는 프로파일러다. 그는 자신의 딸 하빈(채원빈)과 관계가 좋지 못하다. 그들 사이에는 보편적인 부녀 사이에 있을 법한 신뢰와 믿음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의 저녁은 서먹하게 끝나곤 한다.
그러나 태수가 한 살인 사건을 맡은 순간, 그리고 딸 하빈이 이 사건과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문제는 커진다. 태수는 본격적으로 하빈을 뜯어보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부녀 관계는 프로파일러와 분석 대상으로 변화한다. 살인 사건이 휩쓸고 간 가정의 밑바닥, '가족이지만 믿을 수 없다'는 어두운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가족에 대한 한 남자의 끈질긴 의심과, 그걸 품는 마음의 괴로움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한편 <지옥> 시즌2에서도 한 가정에 불행이 닥친다. 그런데 그 불행은 양상이 좀 다르다. 미지의 존재가 인간에게 나타나 지옥에 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고지'로 혼란해진 세계. 비록 끔찍한 일이지만 발생할 확률은 낮아서, 많은 사람들은 평소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지원(문근영)은 그렇지 않다. 그녀는 이 비극을 자신도 겪을지 모를 실질적인 위험으로 받아들인다. 가정 밖의 비극이 내부에 스며든 것이다. 하지만 지원의 남편은 그녀의 괴로움을 이해할 수 없다. 생각의 차이는 괴리를 만들고, 좁혀지지 않는 틈새를 종교(혹은 사이비)가 채운다. 지원은 '화살촉'의 교리에 심취한다.
<지옥> 시즌1이 이해할 수 없는 비극 앞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공포에 반응하는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면, 시즌2는 가정 내부로 눈을 돌린다. 거대한 비극으로 지축부터 흔들리는 가정과 끊어지는 연대. 그 사이사이에 틈입하는 새로운 믿음. 한편 지원의 가정은 위태롭지만, 혜진(김현주)이 만들어갈 대안적 관계에 희망을 걸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
허진호 감독의 신작 영화 <보통의 가족>에서는 두 가족에게 예상 못 한 비극이 닥친다. 엘리트로 살아온 이들은 미처 몰랐던 자녀의 모습 앞에서 무너진다. 가치관이 산산이 부서져 황폐해진 가정. 위기에 처한 아이들. 이때 재완(설경구)과 재규(장동건)는 각자의 신념을 다시 세우며, 허물어진 가정을 재건하려 한다. 위의 두 작품이 위기 앞에 바스러지는 가정을 보여준다면, <보통의 가족>은 이를 복구하려는 인물들의 분투에 집중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