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슈를 데이터로 깊이 있게 살펴보는 뉴스레터, 마부뉴스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1편에서는 전 세계 비만 인구가 얼마나 늘었는지, 또 비만 치료제 시장은 얼마나 늘었는지 데이터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전 세계 80억 인구에서 8명 중 1명은 비만일 정도로 비만 인구는 크게 증가했습니다. 비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비만 치료제 시장도 급증했는데요, 2020년 32억 달러에 불과했던 시장 규모가 2023년엔 240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지금부터는 비만 치료제의 이면에 감춰져 있는 비만 불평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비만약 부작용보다 더 큰 문제는 비만 불평등?
뿐만 아니라 비만을 관리하기 위해선 식단이 중요한데, 건강에 좋지 않은 식품을 소비할 가능성이 큰 저소득층들이 비만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결과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학력이 낮을수록, 소득분위가 낮을수록 비만의 위험이 높아지는 모습이 여러 국가에서 보고되고 있죠. 가장 대표적인 미국의 데이터를 가지고 살펴보도록 할게요.
혹시 독자 여러분 중에 식품 사막(Food Desert)이라고 들어본 적 있나요? 식품 사막은 건강한 채소나 과일을 먹지 못하고 그 대신 인스턴트식품이나 소다를 많이 먹는 지역을 의미합니다. 미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까 식품 유통이 부족한 시골 지역에서는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대도시 중심부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저소득층들은 채소나 과일을 먹을 순 있지만 가격 부담 때문에 저렴한 인스턴트식품을 먹는 경우가 있고요.
위의 그림은 지난 2022년 국제 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에 올라온 논문 데이터를 가지고 마부뉴스가 그려본 지도입니다. 연구진들은 116만 4,926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평균 197일 동안 총 23억 건의 음식 항목을 기록했습니다. 연구진은 지역에 따라 미국인들이 어떤 식단으로 소비하는지, 또 그 식단이 비만 상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 봤죠.
초록색 지도는 신선한 과일, 채소의 소비 정도를 나타낸 건데, 색이 진하면 진할수록 과일과 채소 식단의 비율이 높은 지역입니다. 지도에서 연한 녹색으로 표시된 곳을 주목해 볼까요? 이 지역에 속한 주는 1인당 GDP가 미국에서 가장 낮은 동네들입니다. 녹색 지도에서는 연하게 표시되었지만, 붉은색으로 표시된 지도는 색이 진하게 표시되어 있죠? 저소득층이 많은 미시시피, 켄터키 같은 주에선 다른 지역들보다 과일과 채소를 적게 먹고, 대신 패스트푸드와 탄산을 더 많이 소비하고, 비만 인구가 더 많은 상황인 겁니다. 지난 1편에서 살펴본 성인 여성 비만율 비교에서도 남태평양 지역이 가장 비만율 상승폭이 두드러졌던 것, 기억날 겁니다. 미국뿐 아니라 국가 단위로 시야를 넓혀봐도 비만은 저소득층, 저소득 지역에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비만 치료제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저소득층일 수 있지만, 현재 판매되는 위고비는 저소득층이 처방받기엔 너무 비쌉니다. 그렇게 되면 위고비를 처방받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고소득층이고, 그들은 비만 치료가 아닌 미용 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충분하죠. 실제 미국 뉴욕의 데이터를 보면, 가장 부유층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비만 치료제를 가장 많이 처방받았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고요.
Trilliant Heatalh라는 의료 분석 업체가 뉴욕시 34개 동네를 대상으로 지난 2022년에 비만 치료제가 얼마나 처방되었는지를 분석해 봤습니다. 분석해 보니 가장 높은 처방률을 기록한 지역은 뉴욕에서 가장 부유하고 건강한 동네인 어퍼 이스트 사이드 지역이었죠. 당뇨병과 비만율이 뉴욕시에서 가장 낮은 지역 중 한 곳이지만 지역의 2.3%가 비만 치료제를 처방받았어요. 반면 당뇨병과 비만이 훨씬 흔한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서는 비만 치료제 처방률이 낮았습니다. 가장 처방률이 낮은 지역은 브루클린 동부 구역의 이스트 뉴욕이었는데, 처방률 1.2%로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죠.
Q. 미국에서는 비만이 아니어도 비만 치료제를 구할 수 있다?
미국에선 ‘오프라벨(off-label)’ 처방을 통해서 비만이 아니어도 비만 치료제는 물론이고 당뇨병 치료제까지 구매할 수 있어요. 이때 오프라벨이란 의약품을 허가 사항 외 다른 적응증으로 처방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요. 진작에 위고비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졌던 미국에선 오프라벨 처방이 만연히 이뤄졌죠. 위고비를 대신해서 당뇨병 치료제인 '오젬픽'과 '트루리시티'에 대한 오프라벨 처방이 가능했어요. 심지어, 오젬픽은 위고비의 대체제로 널리 사용되면서 공급 부족 현상을 겪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비만 치료제에 대한 오프라벨 처방이 가능할까요? 우리나라에서도 허가 외 처방이 불법은 아닙니다. 실제로, 소아나 희귀 질환 약제의 경우 오프라벨 처방을 하는 경우가 꽤 존재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식약처의 허가 사항과 다르게 비만 치료제를 사용할 경우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즉, 위고비의 오프라벨 처방이 사용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말이죠.
글로벌 4위 규모의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
현재 대한민국의 비만율은 40%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대한비만학회에서 발간한 비만병 팩트시트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대한민국 비만율은 38.4%야. 2021년도와 동일한 수치지만,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비만율은 쉬지 않고 계속 늘어왔죠. 물론 증가세는 멈추었지만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닙니다.
그 사이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은 글로벌 매출 4위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2019년 1,341억 원 규모였던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은 2023년까지 5년 연속 증가해 1,780억 원으로 늘어났죠. 게다가 지난 2월 말부터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전면 확대하면서 비만 치료제의 비대면 처방도 급증했고요. 대면 처방보다 상대적으로 허점이 많은 비대면 처방이 확대되면서, 비만 치료제에 대한 의약품 오남용이나 불법 유통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