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행으로 가로챈 리차드밀 시계
한 편의 영화처럼 총 시가가 40억 원에 달하는 초고가 시계를 사는 척하며 짝퉁으로 바꿔치기한 주범들이 항소심에서야 혐의를 인정해 감형받았습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1부(소병진 김용중 김지선 부장판사)는 특수절도·무고 혐의로 기소된 주범 A(29) 씨와 B(33) 씨에게 각각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1심 징역 8년보다 절반 이상 감형됐습니다.
재판부는 공범 C(30) 씨에게도 1심(징역 4년)보다 줄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외국인 피해자를 국내로 유인해 고가의 명품 시계를 절취한 뒤 수사기관에 무고까지 한 범행은 조직적으로 역할을 분담해 치밀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다만 A·B 씨가 모두 자백한 점,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한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은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이같이 판시했습니다.
A 씨와 B 씨는 지난해 7월 이른바 '밴쯔'라 불린 태국인 시계 판매상을 표적 삼아 범행을 설계했습니다.
텔레그램으로 스위스 최고급 시계인 '리차드 밀' 5점을 주문하면서 암호화폐 USDT(테더) 총 1억 6천500만 원어치를 계약금으로 보냈습니다.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스페인)을 위해 설계돼 1점당 시가가 8억 2천500만 원에 달하는 모델도 포함됐습니다.
앞서 두 차례 거래로 신뢰가 쌓였다고 판단한 밴쯔는 물건을 가지고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지난해 8월 29일 서울 강남구 B 씨의 매장에 밴쯔가 도착하자 설계대로 범행이 시작됐습니다.
C 씨는 '사진을 촬영하겠다'며 시계 5점과 밴쯔가 손목에 차고 있던 1점 등 리처드 밀 시계 총 6점(시가 39억 6천여만 원)을 매장 내실로 가져갔고, 그 안에서 미리 준비해 둔 같은 모델의 '짝퉁'과 바꿔치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밴쯔는 뒤늦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시계는 이미 매장 밖으로 빼돌려진 뒤였습니다.
밴쯔가 항의하자 C 씨는 적반하장으로 "명품 시계를 구입하기로 하고 계약금을 보냈는데 시계를 감정해 보니 가짜로 판정이 났다. 사기 거래로 처벌해 달라"며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밴쯔는 억울하게 현행범 체포됐지만, 뒤늦게 이 모든 것이 A·B 씨가 사전에 설계한 범행으로 드러났습니다.
A·B 씨는 1심에서 C 씨를 주범으로 모는 등 범행을 부인하다가 양형기준의 상한보다 센 형량이 선고되자 2심에서야 공소사실이 사실이라고 자백해 감형받았습니다.
A 씨는 시계 6점의 가액은 '프리미엄'이 포함된 39억 6천여만 원이 아니라 신품 가격인 18억 9천여만 원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재차 주장했지만, 항소심 재판부 역시 프리미엄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현재 행방이 묘연한 4점 외에 시계 2점을 피해자에게 돌려주라고 명령했는데, 항소심은 이 가운데 1점만 환부하라고 판단을 바꿨습니다.
재판부는 "시계 1점은 한 소비자가 시계 판매상인 A 씨에게 도난품인 줄 알지 못한 채 4억 1천500만 원에 매입한 것"이라며 "민법에 따라 피해자가 4억 1천500만 원을 변상해야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관세청 서울세관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