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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신뢰 깨졌다" 한 마디에 '14년 사업'이 날아갔다

프랜차이즈 공화국의 민낯…'법 밖의 가맹지사'①

[취재파일] "신뢰 깨졌다" 한 마디에 '14년 사업'이 날아갔다
그녀의 왼쪽 팔목에는 '24.04.11'이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언뜻 보면 물건 겉포장에 찍혀있는 바코드 같다. 무슨 의미냐고 묻자 그녀는 말했다. " 이 날을 잊지 않으려고요." 그녀는 남편과 함께 한 대형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가맹지사를 운영해왔다. 가맹점 수 기준 국내 1위 업체다. 부부는 이 프랜차이즈의 전국 7백여 개의 가맹점 중 4백여 개를 관리해왔다. 이 프랜차이즈 소속 가맹지사 중 가장 큰 규모였다. 팔목에 새겨진 2024년 4월 11일, 본사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계약 종료 통보서였다. 계약 종료 예정일은 다섯 달 뒤인 9월 12일. 2010년부터 14년 동안 꾸려온 사업을 9월 12일 이후로는 접어야 한단 뜻이었다. 청천벽력이었다.

취재파일_박수진 가맹지사


"어떻게 매출 370억 원 하는 회사를 내용증명 한 통으로 날릴 수 있어요? 우리 직원들은 어떻게 하고 대출은 어떻게 해요? 지난 14년, 15년 여기에 목숨 바치고 살았어요. 이렇게 하루 아침에 날아가도 되는 거예요?"

떡볶이 프랜차이즈 본사-가맹지사 '계약 종료' 분쟁 취재기


부부를 처음 만난 건 8월 초였다. 본사의 계약 종료 통보가 일방적이고 억울하다며 대구지방법원에 '계약해지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 9월 5일. 법원은 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며 본사의 손을 들어줬다. 본사가 제기한 계약갱신 거절 사유가 대부분 인정됐다. 가맹지사는 이 사유 대부분을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해왔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공방'과 '분쟁'의 영역. 하지만 법원은 이 자체를 두고 "계약 이행이 어려운 상호 신뢰관계 훼손"이라고 판단했다.
취재파일_박수진 가맹지사
계약은 종료됐다. 주 4회, 이른 새벽부터 전국 4백여 곳의 가맹점으로 각종 식자재를 배송하기 위해 줄지어 드나들던 물류 트럭들도 지난 9월 10일 이후 끊겼다. 남은 건 더 이상 가동이 어려운 냉동 창고,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 그리고 100억 원이 넘는 빚이라고 했다. 부부는 8월 초 인터뷰 당시 이렇게 말했다. "본사 말대로 9월 12일에 나가라고 해서 나가면 저희 회사는 부도가 나요. 대출이 많고, 대출을 상환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하고요. 직원들도 다 일자리를 잃게 돼요." 오지 않길 바랐던 미래는 결국 현실이 됐다. 가처분 기각 결정을 한 재판부의 결정문 말미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사건에서 채권자(가맹지사)가 입게 될 손해는 금전적 손해배상에 의해 전보될 수 있다."

가처분 결정에 대한 항고도 할 수 있고, 재판부의 말처럼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계약 종료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보전 받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소송엔 시간이 걸리고,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해지된 계약이 정상화 되진 않는다. 부부가 당장의 손해를 막을 방법은 없단 뜻이다. 부부는 계약이 해지되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해왔지만 법원은 2010년부터 영업구역을 확대하며 오랫동안 사업을 해왔으니 "투자비용 등의 회수와 관련한 계약 갱신의 필요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가맹사업법 보호 대상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가맹지사는 일반 소비자의 눈엔 잘 보이지 않는 존재다. 프랜차이즈(가맹) 사업은 보통 브랜드와 사업권을 가진 본사(가맹본부)와 일정 비용을 내고 브랜드 운영권을 사서 사업을 하는 가맹점이 협력하는 구조인데, 가맹지사는 본사와 가맹점 사이에 있는 일명 '연결고리'다. 본사와 '지사계약'을 맺은 가맹지사는 본사 대신 가맹점을 모집, 관리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나 수익의 일부를 나눠 받는다 (가맹점 모집은 지사가 하지만 계약은 본사와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사는 지역을 나눠 지사를 두고 해당 지역의 가맹점 영업과 관리를 맡긴다. 가맹사업법에서는 '가맹지역본부'라고 정의한다.

가맹사업법은 가맹점의 경우는 우선 표준계약서가 있고, 계약갱신권을 10년까지 법이 보장한다. 계약 해지를 위해서는 2개월 이상 유예 기간을 두고 위반 사실을 시정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 하겠다는 의사를 서면으로 2회 이상 통지해야한다. 위반 사실이 발생해도 이를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이 법은 가맹점주, 즉 가맹점사업자에게만 적용된다. 가맹지사는 해당되지 않는다.

다시 떡볶이 프랜차이즈 사례로 돌아와 보자. 법원 결정문을 토대로 보면, 본사와 A 씨 부부가 운영하던 가맹지사는 2010년 첫 지사 계약을 맺었다. 부부는 "이 프랜차이즈는 대구에서 시작한 작은 떡볶이 브랜드였고, 우리가 지사 사업을 시작할 당시 가맹점은 44곳에 불과했다. 우리가 수도권에 지사를 내고 가맹점을 모집하기 시작하면서 전국화 됐다"고 주장한다. 이후 비정기적으로 계약서를 썼다. 마지막 계약서는 2018년 작성했고 계약 기간은 2년이었다. 이후 계약은 묵시적으로 연장돼왔다.

계약해지 사유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본사는 가맹지사가 ▶본사의 상표를 부당한 목적으로 이용했고 ▶계약서상 경업금지 의무를 위반했으며 ▶지속적인 미수금이 발생했다는 이유 등으로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가맹지사 대표인 A 씨가 지분을 갖고 있는 또 다른 회사가 취급하는 제품에 허락 없이 본사의 상표를 붙이거나, 가맹점에게만 보내야 하는 식재료를 이곳에서 제조 판매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A 씨 부부는 '가맹점 확장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대기업 구내식당 납품을 뚫기 위한 사업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본사에 물품을 사서 납품하는 구조이니 새로운 사업처가 뚫리면 본사 매출도 올려주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또 본사 대표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승인을 받았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미수금은 물건을 먼저 받아가고 매번 돈을 늦게 줬다는 이야긴데, 본사는 '선입금'이 원칙이었다고 말하고 가맹지사는 '본사와 합의 하에 3주 후 지급을 해온 것이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3주 간격으로 입금을 해온 내역도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입금 내역보단 선입금이 원칙이라고 한 계약서 내용을 더 중요하게 판단했다.

가맹지사 측도 일부 귀책에 대해선 인정하고 있다. 상표권 계약 내용을 넘어서는 도용행위라는 본사의 주장에 "실수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본사가 상표권 도용을 주장하는 행위는, 본사가 계약 종료 통보서를 보내기 몇 주 전에 진행된 한 대기업 주최 푸드페스타 행사장에서 발생한 일이다.

취재파일_박수진 가맹지사
"상표권 도용에 해당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희가 가맹점이 더 이상 크게 늘지 않다보니 대기업이랑 군부대 등 이런 곳에 납품하려고 유통 라인을 엄청 영업을 했거든요. 우리 브랜드를 넣기 위해서요.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발생한 일인데, 이런 게 문제가 되면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주면 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누가 사진을 보내왔다'고 하면서 바로 계약을 해지한다고 한 거죠." (계약해지 당한 가맹지사장)

취재진은 본사에 입장을 물었다. 인터뷰 요청을 거절해오던 본사 측은 가처분 결정이 난 이후 서면을 통해 이렇게 입장을 밝혔다.
"본사는 최근에서야 해당 행위들을 확인하였는데, 해당 행위는 그 성격상 시정이 불가능한 것으로, 중대한 계약 위반사항에 해당할 뿐 아니라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심각한 위법행위입니다."

"우리는 출금통장이었다" vs "형제 같은 사이였다"


A 씨 부부와, 직원들은 그를 '작은 사장' 또는 '부대표'라고 불렀다. 그는 떡볶이 프랜차이즈 본사 대표의 동생이다. 국내외 가맹사업을 담당했고 가맹지사장들을 직접 만났고, 개인통장으로 돈을 받고 또 내주기도 했다. 부부는 기자에게 녹취 몇 개를 들려줬다. 대구에 사는 그가 서울에 사는 아들에게 와서 타고 다닐 차가 필요하다고 요구해와 차를 구매해 보내주는 과정이 담긴 녹취도 있었고, 당장 '내일 10시까지 돈 2억 원을 보내라'는 내용의 녹취도 있었다.

"그냥 2억이 필요하대요. 당장 2억이 필요하대요. '오늘 본사 물건 값 넣는 날이라 돈이 없어요' 라고 하니 본사 담당자 000과장한테 자기가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본사 물건 값 좀 늦게 보내고 자기한테 먼저 돈을 보내란 이야기였어요."

대출을 받고 기수금을 당기는 등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와 2억 원을 보냈다고 말했다 . "우리는 출금통장, 본사 부대표의 ATM기였다"고 부부는 말했다. 녹취는 어떤 날은 됐고 어떤 날은 되지 않았다. 사실 관계를 단정할 순 없었다. 작은 사장이라고 불리던 그에게 전화를 걸어 입장을 물었다.
부대표 (본사 대표 동생)
"내가 서울에서 잠시 지내야 되니 작은 차 한 대를 썼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자기들이 오케이 하면서 해준다고 그런 거예요.술 먹으면서 대화를 했던 거예요, 전화로 말한 게 아니라요."
"돈은 언제 빌렸는지 기억도 잘 안 나긴하는데 다 갚았어요. 그리고 나도 그 사람한테 돈 빌려줬어요."

기자
"가맹지사한테 차를 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건가요?"

부대표
"우리는 형제처럼 지냈어요. 진짜. 서로 돈을 빌리고 빌려주기도 하고 선물도 주고 받는 사이였어요."
"이번에 차량 이야기 나와서 또 바로 돌려줬어요. 할부금 낸 돈도 내가 물어준다고 이야기했고요. 얼마 타지도 않았어요.
서울 한번 올라가면 서울에서 이제 아들하고 같이 밥 먹고 한다고 타고. 2주에 한 번 탈까 말까"

기자
"본인이 차를 요구 하시고 몇 달 타고 돌려줬다 이 말씀이시죠?"

부대표
"요구가 아니고요, 자기 명의로 뽑아서 '빌려줬다'는 표현이 맞겠죠"

가맹지사 측은 이러한 녹취를 법원에 증거 자료를 제출하며 "지속적인 갑질을 당해왔지만 참으면서 지사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의 가처분 기각 결정문에 이런 주장에 대한 판단이나 언급은 없었다. 본사는 이 갑질 의혹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해당 부대표는 "2017년 2월 이후 경영에서 물러났고, 회사의 경영과 무관하며 관련하여 영향력을 미칠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밝혀왔다. 가맹지사에게 차량과 돈을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선 인정도 부정도 하지 는 대신 "개인 간의 금전 거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대표 혹은 작은 사장이라고 불리던 그는 현재 이 프랜차이즈 본사에 떡과 소스 등 각종 식재료를 납품하는 자회사의 등기이사다. 또 본사가 말한 2017년 2월 이후에도 업무와 관련해 가맹지사와 수차례 연락을 나눈 전화, 메시지 내역들도 확인됐다. 이 또한 증거로 제출됐지만 법원의 결정문에는 이와 관련한 판단이나 언급은 없었다.
취재파일_박수진 가맹지사
가맹지사 부부에게 물었다. 부당한 요구라고 생각했는데 왜 수용을 했느냐고. 그들은 말했다. "다른 곳에 어떻게 했는지 저희는 봐왔잖아요. 지사를 어떻게 빼앗아 가는지 저희는 봤거든요. 우리도 언제 계약이 해지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어요. 저 분은 우리를 지켜줄거야, 부대표님은 우리를 막아줄 거야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가맹지사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대해 항고했다. 또 본사를 불공정거래 등의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지사계약에 따른 영업권 확인 및 손해배상 청구 등 본안소송도 준비 중이다. 본사와 계약 종료 또는 해지와 과정에서 법적 분쟁 중인 가맹지사는 이곳뿐만이 아니다. 다음 편에선 교육 프랜차이즈 업계의 가맹지사 현실을 짚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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