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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법 가르친다는 사람이 죽었다"…속지 않기 위해 찾아야 할 것 [스프]

[한비자-정치적 인간의 우화] 말로는 가시나무 끝에 원숭이도 조각할 수 있다 (글 : 양선희 소설가)

중국
#1
진나라 승상을 지낸 범저가 말했다.
“활이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그 마지막에 가서이지 처음에는 아니다. 대체로 활을 만드는 공인들은 활을 휠 때 삼십일 동안 틀에 넣어두었다가 줄을 걸 때에는 마구 밟은 뒤 하루 만에 시험 삼아 쏘아본다. 이것은 그 처음엔 신중하고, 마지막엔 거칠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부러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틀에는 하루만 넣어두고 시위를 밟은 지 삼십 일이 되어서야 시범적으로 쏘아본다. 이는 처음에는 거칠어도 끝에 가서 신중하게 하는 것이다.”
활 만드는 공인은 말이 궁해져서 그대로 하였더니 활이 부러졌다.

이 사례는 은근히 웃깁니다. 범수라고도 불리는 그 파란만장한 책략가 범저가 헛발질한 스토리 자체가 우습습니다. 범저는 진나라 소양왕의 재상이었습니다. 소양왕은 진시황의 증조부. 그의 조부인 효공이 상앙의 변법을 통해서 진나라를 전국 7웅 중 압도적 강국으로 도약시킨 기반 위에서, 지체하지 않고 매진하여 진시황의 전국 통일 기틀을 다진 왕이었습니다. 그 왕의 최고 책략가이며, 전성기를 이끈 재상이 바로 범저입니다. 

그렇게 대단한 범저였기에 세상사는 자기 머릿속에 그리는 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전공이 아닌 활 만드는 일에도 ‘감 놔라 배 놔라’ 했겠죠. 그런데 세상사는 이렇게 자기 생각이나 말처럼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말 잘하는 사람의 말처럼 이기기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번지르르한 말은 듣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이에 현혹된 사람들은 함께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니 활 만드는 공인처럼,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도 자기 기술을 관철하지 못하고, 헛된 말에 따라가게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실질과 거리가 먼 말, 세 치의 혀로 실질을 이기는 사례는 숱합니다. 
 
#2
아열은 송나라 사람으로 변설에 능한 자였는데, “흰말은 말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제나라 직하학당의 논변자들을 설복시켰다. 그러나 그가 흰말을 타고 관문을 지날 때엔 말에 부과된 세금을 물었다. 허사로 점철된 공허한 말이라도 능히 한 나라를 이길 수 있다. 
 
#3
나이가 많다고 싸우는 정나라 사람들이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요임금과 동갑이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나는 황제의 형과 동갑이다.”
이걸로 소송까지 했는데 결론이 나지 않자 결국은 끝까지 우긴 자가 이겼다.
 
#4
연왕에게 죽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식객이 있었다. 왕이 사람을 보내 배워오게 했다. 
그러나 배우러 보낸 자가 미처 도착하기 전에 객이 죽었다. 왕은 크게 화를 내며 그를 벌했다. 왕은 객이 속인 것을 알지 못하고, 배우러 간 자가 늦었다고 벌을 준 것이다.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을 믿어놓고 죄 없는 신하만 벌준 것이다. 이야말로 제대로 통찰하지 못하는 우환이다. 또 사람에게 가장 급한 것으로 자기 목숨만 한 것이 없다. 한데 자기 몸도 죽지 않도록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왕을 장생하도록 하겠다는 것인가.
 
#5
송나라 사람이 연왕에게 대추나무 가시 끝에 원숭이를 조각하겠다고 청했다. 왕은 반드시 3개월간 재계한 후 그것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연왕은 거둘 수 있는 양곡이 세 수레가 되는 고을에서 거둔 양곡을 모두 주었다. 
그러다 왕실 직속 대장장이가 왕에게 말했다.
“제가 듣기로 군주는 10일간 주연을 열지 않으면서 재계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왕께서 오랜 시간 동안 재계할 수 없음을 알고 3개월의 기간을 정한 것입니다. 무릇 조각하는 칼은 그 깎는 것보다 반드시 작아야 합니다. 지금 저는 대장장이지만 그렇게 작은 것을 깎는 칼을 만들지 못합니다. 이것은 실제 존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왕께서는 반드시 살피십시오.”
왕은 이 말을 듣고 물어보니 과연 속인 것이었다. 
대장장이는 또 왕에게 말했다.
“도량 없이는 계측할 수 없는 것인데 말로 먹고사는 선비들은 이렇게 가시 끝에 조각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요즘 나노기술이라면 가시 끝에 원숭이를 조각하는 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3천 년 전 얘기죠. 그때는 불가능한 얘기, 즉 속이는 말이 맞습니다. 한데 좀 옆길로 새는 말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력과 욕망이 오늘날의,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기술 발전’을 이루는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비자의 많은 우화 중 ‘가시나무 조각’ 이야기를 보면 좀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말이 실질을 속이는 세상은 이처럼 뒤죽박죽 엉망진창입니다. 사람은 속이는 존재이며, 속는 존재입니다. 속고 속이는 일에 취약한 것은 사람에게 상상력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속아 넘어가는 사람은 대략 상대보다도 자기 마음에 먼저 속아 넘어갑니다.

이 대목에서 문득 노자께서 “오직 아낌으로써 도를 따를 수 있다”고 한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이를 한비자는 이렇게 해석했지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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