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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정부 안보교육 실행계획' 문건 공개…이게 장병용? [취재파일]

국가안보실을 필두로 국방부, 통일부, 국정원 등이 안보교육을 추진한 사실이 국방부의 문건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안보교육일까요? 국방부 단독으로 안보교육을 추진했다면 교육 대상은 장병일 테지만 안보실, 통일부, 국정원의 고위직들도 모여 계획을 논의했습니다. 범정부 안보교육의 대상은 국민으로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국방부 문건에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 대상 안보교육 계획도 나옵니다. 장병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는 방증입니다. 입수하지 못해 확인이 제한되지만 국정원과 통일부의 안보교육 문건에는 대국민 안보교육 계획이 보다 풍성하게 서술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보교육을 실행한다고 해서 정부가 생각하는 모종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오히려 "정부의 관제 사상·지식 주입"이라며 국민적 반감을 키울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정부 주도의 대국민 안보교육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특히 작년부터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정부기관발 역사 논쟁과도 맥락이 닿아있어 범정부 안보교육 계획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방부 해명은 "장병 교육용"인데 잘 다가오지 않습니다.

범정부 '안보교육 추진 회의'가 노린 것은?

안보실, 국방부, 통일부, 국정원 등이 벌인 안보교육 추진회의 관련 문건 (김태훈 취재파일)
▲ 안보실, 국방부, 통일부, 국정원 등이 벌인 안보교육 추진회의 관련 문건

SBS가 입수한 국방부의 한 문건은 안보실장 주관의 '안보교육 추진 회의' 요약본입니다. 작년 8월 2일 대통령실 지하 2층 NSC 소회의실에서 안보실의 실장과 1차장, 그리고 국방부, 국정원, 통일부의 차관급과 국장급 인사, 안보전략연구원 고위직 등이 참석한 회의였습니다.

회의는 국민들에게 특정한 목적의 안보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방부, 국정원, 통일부가 각각 안보교육 실행 구체안을 안보실에 보고하고, 미흡한 점과 잘된 점 등을 가려내는 자리라는 것이 국방부 한 정책통의 전언입니다.

이 정책통은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설명하고, 독도가 없는 한반도 지도를 내건 군 정신전력교육교재 작성 경과도 보고됐지만 대부분 토의는 대국민 안보교육 방안에 할애됐다"고 말했습니다. 범정부 차원의 대국민 안보교육 실시 계획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군 정신전력과 국민 안보교육 연계"

안보교육 관련 상부 보고와 VIP 지시사항이 나온 국방부 문건 (김태훈 취재파일)
▲ 안보교육 관련 상부 보고와 VIP 지시사항이 나온 국방부 문건

SBS는 국방부의 또 다른 문건도 확보했습니다. 8월 2일 NSC 소회의실에서 열린 안보교육 추진 회의 결과, 국방홍보와 안보교육의 통합 강화 필요성이 식별됐다고 적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국방홍보, 정신전력교육과 국민 안보교육의 연계가 미흡한 점이 파악돼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군 정신전력교육과 국민 안보교육의 연계, 그리고 국방홍보와 안보교육의 통합은 그 자체로 위험한 발상으로 보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군과 국방부의 고위직들은 기자에게 "관제 사상 교육의 성질이 짙어서 구시대적일 뿐 아니라 위헌 소지도 크다"고 말했습니다.

문건에는 장병과 예비역 정신전력 강화 방안을 찾아 8월 22일 '상부'에 보고했다고 적시됐습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상부 보고 때 독도 기술로 사달이 벌어졌던 군 정신전력교육교재를 대국민 접점을 찾아 안보교육에 적극 활용하는 대안이 제시됐다"고 말했습니다. 북한과 대치한 특수한 상황의 군인을 교육하는 교재를 활용한 대국민 안보교육은 군부독재 시절에나 있었음직한 일입니다.

"명확한 국가관·대적관 확립"…목적은?

MZ세대 안보의식 고취와 국가관ㆍ대적관 확립 방안이 나온 국방부 문건 (김태훈 취재파일)
▲ MZ세대 안보의식 고취와 국가관ㆍ대적관 확립 방안이 나온 국방부 문건

국방부 문건에는 'VIP 강조사항'을 참고해 작성한 8가지 추진과제가 나옵니다. 현역과 예비군의 정신전력 강화가 주요 내용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VIP가 강조했다는 '민·관·군 안보교육 네트워크 강화'와 '대학생 안보토론대회 활성화'입니다.

핵심은 안보교육 민·관·군 Think-Tank 네트워크 구축입니다. 국방부의 교육훈련정책과, 국방전략과, 정신전력문화정책과 등이 주관하도록 했습니다. 작년 10월부터 정부 산하 연구기관 실무자들이 각종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기술됐습니다. 참여 연구기관은 한국국방연구원 KIDA, 국방대, 군사편찬연구소,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립외교원, 통일연구원 등입니다.

주목할 것은 추진 중점 목표인 '명확한 국가관과 대적관 확립'입니다. 민·관·군 연구기관들로 하여금 특정 국가관·대적관을 도출케 한 뒤 토론회, 학술대회 등을 열어 국민 안보교육을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VIP 지시에 따라 사관생도와 대학생 간 안보 관련 학술교류의 장을 마련해 MZ세대 안보의식 고취 기회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장병용"이라면서 '작년 8월 2일 회의' 설명 못하는 국방부


작년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의 뉴라이트 논란, 현재의 독립기념관장 임명 논란의 저변에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역사를 재단한다는 우려가 깔려있습니다. 이번 정부 들어 벌어지고 있는 정부기관발 역사·사상 논쟁들 뒤에 모종의 방향성을 내포한 대국민 안보교육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기자는 올 초부터 몇몇 국회의원실을 통해 국방부에 범정부 안보교육 관련 문건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국방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확인이 제한된다"는 입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지난 13일 SBS 8뉴스에서 대국민 안보교육 보도가 나오자 국방부는 문건의 존재 사실을 뒤늦게 인정했습니다.

국방부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일련의 안보교육 계획은 장병용"이라는 것입니다. 공식 문건에서 국민 안보교육을 운운했지만 모두 장병용이랍니다. 작년 8월 2일 안보실, 국방부, 통일부, 국정원 고위직들이 벌인 안보교육 추진회의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습니다. 해당 회의에 정통한 한 고위직은 "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안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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