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m 길이에 달하는 은행 금고 털이용 땅굴 모습
아르헨티나에서 은행 금고 털이를 노린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220m 땅굴이 중산층 거주 지역에서 발견됐습니다.
현지시간 9일 일간 클라린, 라나시온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산이시드로시 마크로 은행 앞에 주차하려던 배달 직원은 땅 위로 솟아 나온 금속 막대기를 발견해 차량을 다시 주차해야 했으며, 이때 땅 밑에서 망치를 두드리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차도에 금속 막대기가 삐져나와 움직이는 것이 수상하고 땅 밑의 소리도 이상해 이 직원은 즉시 마크로 은행 보안 직원에게 알렸으며, 은행 측은 하루 뒤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산이시드로 시청에 연락해 혹시 땅 밑에서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지 문의했고 그런 건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시청직원들은 금속 막대기가 움직였다는 얘기에 땅 밑을 파기 시작했고 삽으로 시작된 작업은 포크레인까지 동원하는 큰 공사가 되었습니다.
경찰, 시청, 수도공사, 민방위 직원까지 동원되고, 중간에 수도관까지 터지는 우여곡절 끝에 지하 4m 깊이에 220m 길이의 땅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땅굴은 마크로 은행 금고로부터 불과 수 미터를 남겨둔 지점까지 파여 있었습니다.
현지 TN 방송에 출연한 엔지니어는 "전기 및 공기 순환 시스템까지 마련된 정말 전문가들이 한 작업"이라면서 "이렇게 깔끔하게 일하다니 정말 내가 고용하고 싶을 정도"라며 감탄했습니다.
이 땅굴은 마크로 은행에서 수백 m 떨어진 문 닫힌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파기 시작한 것이며, 2023년 11월에 해당 정비공장을 빌린 사람들이 1년 치 월세를 선지급했다고 현지 매체 인포바에가 전했습니다.
현재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적어도 6개월 이상 이들이 작업을 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목표는 마크로 은행의 개인 금고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또한 길가의 금속 막대기는 어디까지 땅굴을 판 것인지 확인차 사용된 것이며, 이들은 이번 주말을 D-Day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땅굴을 파서 은행 안의 개인금고를 노린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고, 이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세기의 도난'으로 알려진 2006년 아카수소 리오 은행 사건입니다.
당시 범인들은 1년 넘게 은행으로 연결된 땅굴을 팠고 사건 당일 가짜 총을 준비해 은행 안에서 인질 사건을 벌이면서 경찰과 언론의 눈을 돌리게 한 뒤, 총 143개의 개인 금고를 털었습니다.
범인들은 땅굴과 연결된 1.5㎞ 정도의 하수도로 고무보트를 타고 탈출했으며, 이들이 훔친 금액은 1천9백만 달러 (현 환율로 259억 원 정도)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이후에 이들은 공범 부인의 신고로 일당 중 2명을 제외한 전원이 붙잡히거나 자수했으며, 재판 후 일정 기간 감옥살이를 하다 풀려나 현재 유명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당시 훔친 돈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 사건은 2020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수십 년간 경제 위기를 반복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정부와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국민들이 달러로 저축하며, 달러와 귀중품은 은행 내 개인 금고에 넣어 놓는 것이 일반화돼 있습니다.
(사진=온라인 캡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