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에 강제 징집된 '소년병'…국가는 70년 넘게 외면
'청춘'을 바치고 '미래'까지 잃어버린 소년들
취재진은 이젠 아흔을 넘긴 소년병들을 만나 처절했던 6.25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전쟁 당시 총을 들기에도 버거웠을 어린 소년들. 부모에게 인사도 할 겨를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고, 피란길에 헌병에게 끌려가 입대했다고 했다. 소년병들은 북한군의 공세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까지 후퇴했던 전쟁 초기에 많이 동원됐는데 최대의 격전지였던 다부동 전투에 투입된 소년병들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일주일간 훈련을 받은 건 그나마 다행. 한 소년병은 고작 실탄 8발을 하늘에 쏴보고 그날 저녁 바로 전장에 투입됐다고 했다.
전쟁 중 학교로 돌아온 '학도병'…소년병은 왜 계속 남아야 했나?
소년병은 6.25 당시 학생 신분으로 전투에 참여한 '학도병'과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완전히 다른 운명에 직면해야 했다. 학생 신분이었던 학도병은 전쟁 발발 이듬해 2월 귀가 복교령으로 학교로 돌아갔지만, 이미 군번을 받은 소년병들은 정규군 신분으로 이 조치에서 제외됐다. 이후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에도 계속 군에 남아 있어야 했는데.. 이로 인해 소년병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당했고, 평생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나라에 인생을 바친 소년병…"진심 어린 사과는 누가, 언제쯤?"
끔찍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소년병들. 자신이 살기 위해 죽어가던 소년병을 끝내 구하지 못하고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는 박승태 어르신은 그 모습을 잊지 못해 법당을 세우고 50년째 홀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나이에 이른 소년병들은 국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기를 국가에 바친 소년병들에게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예우해야 할까?
이번 주 SBS <뉴스토리>에서는 정부가 소년병의 공헌과 헌신에 상응하는 예우를 하지 않고 있는 실태를 짚어보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겪고 있는 소년병들의 이야기를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