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중국 음식도 예외가 아닌데 세계로 퍼진 중국 음식 속에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까지 곁들어 있다. 지구촌 중국반점의 요리를 통해 중국 본색을 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청나라 말의 최고 권력자 서태후는 사치가 심하기로 유명했다. 북양함대 건설 비용을 빼돌려 별궁인 이화원을 짓고 그곳에서 좋은 음식 먹으며 흥청망청 지냈다. 도대체 어떤 고급 요리를 먹었기에 후대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듣는 것일까?
1861년 음력 10월 10일, 서태후의 31살 생일상은 호화판이었던 것으로 소문났다. 서태후의 비서실장쯤이었던 덕령이 쓴 『어향표묘록』이라는 문헌에 이날 아침 생일상이 보인다. 모두 24가지 요리가 차려졌는데 1만 년 동안 복과 수명을 누리라는 뜻에서 복수만년(福壽萬年)이라는 글자가 한 자씩 새겨진 4개의 대형 접시에 두 종류의 오리고기와 닭고기, 돼지고기가 각각 놓였다.
요리 이름만 봐서는 사치는커녕 서태후의 생일상치고는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여덟 가지 메인 고기 요리를 모두 귀하다는 제비집을 우려낸 육수로 삶고 찌고 조리했다. 서태후의 음식 사치가 엄청났다고 비난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금사연(金絲燕)이라는 바다제비의 집을 재료로 만든다는 제비집 요리는 중국에서 최고급 요리로 꼽는다. 동남아 바다에서 소량만 채취했기 때문에 재료가 워낙 귀했고 그래서 주로 베트남 등지에서 조공으로 진상했던 진품이었다. 그런 만큼 역대 청나라 황제들이 좋아했다는데 이 소문이 유럽에까지 퍼졌는지 당시 해상 교역을 주도했던 네덜란드에서는 건륭 60년인 1795년, 제비집 100근을 구해 보내며 중국과 거래를 타진했다.
이렇게 귀한 제비집을 각종 고기를 삶고 찌는데 썼으니 서태후의 생일상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음식 사치가 심했다고 해도 그 귀한 제비집을 왜 이따위로 허비했을까 싶은데 실은 이유가 있다.
제비집은 이렇게 조리하는 게 정상이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제비집 수프(燕窩湯) 역시 마찬가지다. 제비집은 육수를 내는 재료이고 그 육수로 상어지느러미, 해삼, 전복, 죽순, 버섯 등의 재료를 요리해 만든다고 한다.
그 비싸고 귀하다는 제비집을 왜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일까? 보통 최고 재료는 그 자체의 맛을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제비집은 아니다. 굳이 다른 재료와 함께 조리해야만 한다. 이유는 제비집은 아무 맛이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맛이 없으니 단독으로는 요리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제비집이 어떻게 최고의 요리가 됐을까? 역대 청나라 황제들은 왜 아무 맛도 없는 제비집의 맛에 푹 빠졌던 것일까?
청나라 학자이자 미식가였던 원매가 『수원식단(隨園食單)』이라는 요리 품평서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제비집은 평범한 사람(庸陋之人)과 같아서 그 자체만으로는 맛이 없고 반드시 다른 재료에 의지해야만 제맛을 낸다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밥과 같다는 것인데 맨밥만 먹으면 별맛이 없지만 다른 반찬과 함께 먹으면 최고의 맛을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면서 원매는 무미(無味)야말로 가장 지극한 맛(至味)이니 제비집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했다. 덧붙여 제비집에 빗대어 음식을 귀로 먹지 말라고 경고했으니 소문만으로 제비집 자체가 엄청 맛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러 의미에서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없는 맛이 최고의 맛(至味無味)이라는 고차원적 품평은 식도락가한테나 해당되는 소리고 평범한 사람한테는 혀끝에 착착 감겨야 맛있고 좋은 음식이겠는데 어떻게 아무 맛도 없는 제비집 요리가 중국 최고의 요리 반열에 올라서게 됐을까?
사실 제비집 요리가 유명해진 것은 불과 2~300년 전이다. 산해진미는커녕 명나라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청나라 황제와 귀족들이 즐겨 먹으며 최고급 요리가 됐다. 전해지는 말로는 청의 전성기 건륭제 때부터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부의까지 대부분 황제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제비집 수프로 공복을 채우며 건강도 챙겼다고 한다. 황제가 아침부터 제비집 수프를 먹어댔으니 귀족과 부유층에서 따라 하는 것은 당연하겠는데 어쨌든 청나라 황제와 귀족은 왜 별맛이 없다는 제비집 요리를 그토록 애지중지했을까?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