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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소송 허점 노린 '소송사기'로 중소기업 울린 사기꾼들

전자소송 허점 노린 '소송사기'로 중소기업 울린 사기꾼들
▲ 증거자료를 토대로 사건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춘천지검 최혁 인권보호관

전자소송 제도의 편의성을 이용해 유령법인을 세운 뒤 물품 대금을 지급한 것처럼 계좌명세를 조작, 법원으로부터 100억 원에 이르는 지급명령을 받고 이를 근거로 중소기업의 회삿돈을 빼앗은 일당이 붙잡혔습니다.

춘천지검 형사2부는 사기와 사기미수, 공전자기록등불실기재와 행사,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범행 전반을 계획한 총책 A(46) 씨 등 6명을 구속기소했습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 씨 등은 우선 범행 목표로 삼은 피해회사 같은 이름으로 유령법인을 설립했습니다.

피해회사와 똑같은 이름의 유령법인, 즉 '동명이사'(同名異社) 명의로 계좌를 개설한 뒤 이 유령법인 계좌에 500만∼600만 원씩 송금과 출금을 반복한 뒤 '송금명세'만 편집해 마치 실제로 피해회사에 거액의 물품 대금을 보낸 것처럼 허위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물품 대금을 미리 지급했는데 물품을 못 받았으니 대금을 반환해 달라며 피해회사를 상대로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의 전자소송을 활용했습니다.

지급명령 사건이 일반 민사소송 사건과 달리 법원에서 서류 심리만으로 지급명령을 발급하고, 전자소송의 경우 문서 제출 부담 감소·비용 절감·절차의 신속성 특징이 있다는 점을 노렸습니다.

그렇게 법원으로부터 지급명령을 받아낸 A 씨 등은 완전범죄를 위해 지급명령 정본까지 가로챘습니다.

통상 지급명령이 발령되면 채무자에게 지급명령 정본이 송달됨으로써 채무자가 이를 인지하게 되는데, 송달 시점에 맞춰 피해회사 사무실 근처에서 미리 대기하다가 피해회사 관계자 행세를 하며 지급명령 정본을 가로챈 것입니다.

결국, 지급명령이 내려진 사실도 몰랐던 피해회사는 이의신청하지 못했고, A 씨 등은 피해회사가 모르는 사이에 지급명령 결정을 확정함으로써 피해 회사 계좌에서 채권추심을 가장해 돈을 빼낼 기반을 완성했습니다.

피고인들의 소송사기 범행 흐름도

이 같은 수법으로 지난해 5∼11월 총 10개의 유령법인을 설립한 뒤 이름만 바꿔 28개 피해회사를 상대로 전국 법원에서 99억 원 상당의 지급명령을 받아낸 이들은 은행을 찾아 지급명령 정본을 근거로 피해회사의 법인 계좌에서 16억 6천만 원을 가로챘습니다.

A 씨 일당의 범행은 피해회사의 민원을 통해 소송 사기를 의심한 춘천지법의 수사 의뢰로 탄로 났습니다.

춘천지법 지급명령 담당 직원은 ▲ A 씨 일당이 직업을 수시로 바꾼 점 ▲ 1회 송금이 아니라 짧은 시간 수십 차례에 걸친 송금 및 송금했다고 주장하는 금액 대부분 지급명령 신청 2∼3일 전 기록인 점 ▲ 지급명령 신청이 2023년 7월부터 3개월간 집중된 점을 의심했습니다.

또 법원이 우편으로 송달한 통지서에 모두 피해회사 대표자가 송달받은 것으로 되어 있고, 피해회사의 대표가 모두 다름에도 서명 중 글씨체 일부가 동일 인물로 보이는 점에 의구심을 품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지급명령 사건의 채권자 역할을 맡았던 조직원 2명을 먼저 구속한 뒤 추가 수사를 통해 총책 A 씨와 중간관리자 B(23) 씨 등 4명을 차례로 구속했습니다.

A 씨와 B 씨는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자동차를 처분하는 등 잠적했지만, 검찰은 이들의 과거 통화기록과 계좌명세를 분석하는 등 수개월간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검거에 성공했습니다.

검찰은 지급명령 신청 근거자료로 내는 계좌명세에 법인 상호만 표시되고 등록번호는 표시되지 않는 점과 피해회사 관계자로 행세하면 별다른 본인확인 절차 없이 지급명령 정본을 수령할 수 있는 점을 이용해 범행이 이뤄진 사실을 파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법원행정처에 제도 개선방안 검토를 권고하기로 했습니다.

피고인들이 세운 유령법인에 대해서는 유사 범죄에 재사용되는 경우를 막기 위해 해산명령 청구 등 조치를 할 예정입니다.

(사진=춘천지검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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