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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성공한 '바보'에게도 스승이 있었다…"우스운 사람 아닌 웃긴 사람이 돼라" [스프]

[주즐레] '독한 입' 기타노 다케시의 뿌리 - 영화 '아사쿠사 키드'

김지혜 주즐레 썸네일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실패한 코미디는 대부분 코미디언이 '웃기는 사람'이 아닌 '우스운 사람'으로 전락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만큼 사람을 웃기는 일은 울리는 일보다 어렵다. 위대한 코미디언은 위대한 배우이기도 하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연기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일본 대중문화계에서 '만능 엔터테이너'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로 코미디언이자 배우, 영화감독으로도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코미디언 시절 독설 개그로 이름을 알렸으며, 한국에선 혐한(嫌韓) 발언을 일삼은 대표적인 일본 인사로 알려지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우로서 최고작이라 꼽히는 영화는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이 연출한 '피와 뼈'(2004)였고, 다케시는 이 작품에서 재일 한국인 김준평을 연기해 찬사를 받았다.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건 1998년 1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후다. 영화 개방의 경우 세계 4대 영화제 수상작이 기준이 되면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었던 '하나-비'가 가장 먼저 개봉했다. '하나-비'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여섯 번째로 연출한 영화이자 그의 대표작이다.

인기 코미디언이었던 기타노 다케시는 1989년 '그 남자 흉폭하다'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했고 '키즈 리턴', '소나티네', '하나-비', '기쿠지로의 여름', '자토이치', '아웃레이지' 3부작 등을 만들며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우뚝 섰다.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 '아사쿠사 키드'는 '코미디언 기타노 다케시'의 뿌리에 관한 영화다. 기타노 다케시의 동명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아사쿠사 키드'는 '비트 다케시'를 있게 한 스승 후카미 센자부로에 대한 헌사를 담은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감동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인 실화의 힘과 야기라 유야, 오오이즈미 요의 빼어난 연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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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운 사람이 아닌 웃긴 사람이 돼라"…사부의 철칙

학생운동이 문제가 돼 대학에서 제적당한 다케시(야기라 유야)는 도쿄 아사쿠사에 위치한 프랑스좌라는 스트립쇼 극장에서 엘리베이터 보이로 일한다. 프랑스좌는 스트립쇼와 코미디 콩트를 하는 극장으로 아사쿠사의 인기 코미디언 후카미 센자부로(오오이즈미 요)가 이끌고 있다.

극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다케시는 무대를 휘어잡는 센자부로의 능력에 반해 그를 동경한다. 다케시의 강단을 눈여겨본 센자부로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기 시작한다.

무대 데뷔를 앞두고 광대에 가까운 여장 분장을 한 다케시에게 센자부로는 벼락같이 화를 낸다.

"바보 녀석! 게닌(芸人: 타인을 웃기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인)이라면 웃음거리가 되는 게 아니라 웃게 만드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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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자부로는 코미디언에게는 개인기 하나쯤은 필요하다며 탭댄스를 가르치고, 무대 연기의 기본기도 가르치지만, 그가 끊임없이 강조한 것은 코미디언의 철학이자 신념이었다. 그는 기타노에게 코미디언으로서의 기본자세는 물론이며 멋과 자존심을 지키며 희극 배우로 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 센자부로는 다케시의 개그에 반응하는 관객을 향해 "함부로 웃어주면 이 자식에게 독이 된다"며 웃음에 엄격해지길 요구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센자부로는 '낭만 광대'로 그려진다. 꿈과 생계 사이에서 주저 없이 꿈을 선택하는 사람, 돈과 자존심 사이에서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제자였던 다케시는 가슴에 뜨거운 꿈을 품은 청년이었지만 동시에 냉철한 현실주의자기도 했다. 무대에서 펼치는 콩트의 시대가 저물고 TV쇼에서의 만담이 흥하기 시작하면서 다케시에게도 인생을 바꿀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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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꿈을 향한 열망과 인생의 방향에 관한 영화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청춘'과 '꿈'이다. 20대의 다케시는 꿈을 품었고, 꿈을 이뤘고, 꿈을 확장해 나갔다.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는 사무엘 울만의 말처럼 센자부로 역시 청춘의 한복판에서 늘 꿈을 꾸고 낭만을 추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센자부로는 '웃기는 사람'과 '웃는 사람'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극장 무대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다케시가 이를 계승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다케시는 센자부로의 옛 제자인 키요시의 제안으로 만담에 도전한다.

프랑스좌를 떠난 다케시는 만담에 리듬(비트)을 접목한 개그로 TV에서도 대성공을 거둔다. 이렇게 만담 콤비인 '투 비트', 기타노 다케시의 또 다른 아이덴티티 '비트 다케시'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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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의 성공 신화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전형이 아닌 '기회가 있으면 잡아라'의 본보기에 가깝다. 물론 애드리브를 기반으로 한 공격적이고 빠른 말투, '빠카야로'(ばかやろう:바보)를 연발하는 거친 언행, 무대와 영화에서 선보인 탭댄스는 모두 스승 센자부로의 영향 아래서 완성된 트레이드 마크다.

'아사쿠사 키드'는 코미디의 유행이 콩트에서 만담으로 넘어가는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고, 스승과 제자의 상반된 선택을 보여주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꿈의 형태와 인생의 방향에 관한 정답은 없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다만 흔들리는 청춘 앞에 나침반이 되어줄 스승이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이 영화는 보여준다. 다케시에겐 그런 존재가 있었고, 다케시는 그 존재를 잊지 않고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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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 하면 '야쿠자'를 다룬 영화로 일가를 이룬 거장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청춘에 관한 영화도 만들었다. 바로 '키즈 리턴'(1996)이다. 어른 사회에 발을 디디는 청춘 군상을 그려내며 진한 감동을 선사한 작품이다. '아사쿠사 키드'를 보고 있자면, '리즈 리턴'의 끝을 장식한 명장면과 명대사가 떠오른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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