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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어렵게 찾은 친모의 첫 말은 "소송 취하해달라"였다…'그림자 아이'까지 보호하려면 [스프]

[더 스피커] '위기 임산부'와 '그림자 아이',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스프 더스피커
홍성주(21세) 씨를 만난 건 그의 집 근처에 마련한 작은 인터뷰 공간이었습니다. 편한 차림에 카메라 앞에 선 홍 씨는 으레 인터뷰를 목전에 둔 사람 같지 않게 긴장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질문에도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담담하게 기자에게 털어놨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홍 씨는 뉴스에 직접 출연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장시간 인터뷰를 해도 일부가 정제돼 뉴스에 짤막하게 보도되는 만큼, 직접 뉴스에 출연해 자연스럽게 앵커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은 길게 풀어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미 다른 매체의 인터뷰에도 응한 바 있었던 홍 씨가 또다시, 거듭해 카메라 앞에 서겠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홍성주 씨가 카메라 앞에 다시 섰다.

부모 찾는 데 쏟은 1년이라는 시간

홍 씨는 태어난 직후부터 영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지난 2004년 어머니가 홍 씨를 낳은 뒤 친권을 포기하고 시설에 입소시키기를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영아원에서 자라던 홍 씨는 성장하며 아동복지센터로 거처를 옮겼고 그렇게 자라는 과정에서 선천성 심장 기형을 발견해 수술도 받았습니다.

원래 살던 지역에는 이 질환을 상시 치료할 수 있는 전문의와 병원이 없어 다른 지역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갑작스럽게 과호흡이 오는 증상이 발생했을 때 응급헬기를 타고 수술받았던 지역으로 이송되는 일도 겪었습니다. 이런 일을 두 차례 겪은 뒤 홍 씨는 수술을 받았던 지역 근처로 시설을 옮겨 지내게 됐습니다.

홍 씨는 성인이 되자마자 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부모님 찾기였습니다.

"부모님이 있고 없고에 따라 (기관에서) 아동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 달라져요. 저는 안 좋았죠. 다른 애들은 학원 보내거나 공부 같은 걸 시킨다고 하면 저는 학원 같은 데 안 보내고. 형들한테도 많이 맞고. (부모님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중학교 1, 2학년 때부터 있었죠. 미성년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서류나 뭐나 다 떼어줄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학생 시절 때는 많이 어려움이 있었고 성인이 되자마자 서류를 떼러 돌아다녔죠. 그래서 1년 동안 취업 안 하고 그냥 그거 부모님 찾는 데만 연연했던 것 같아요."

홍 씨가 어렵게 구한, 영아원 당시 입소 의뢰서. 홍 씨 어머니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담겨 있다.
머물렀던 기관부터, 경찰서, 시청, 법원까지. 수차례 오가기를 1년 반이 가까워져 오던 시점에야 홍 씨는 어머니를 찾고 또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처음, 경찰서에서 제공하는 '헤어진 가족 찾기'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어머니는 만남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먼 길을 돌아가야 했습니다. 기관과 시청 등 관계된 곳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렸고 어렵게 자신이 시설에 입소할 때 작성된 기록 한 장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입소 의뢰서'에는 어머니의 상담 내용과 함께 그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담겨 있었습니다.

"2004년 11월 9일 위 아동을 출산하였으나 혼자 아이를 키우기가 어려워 친권 포기 및 시설 입소를 희망하는바, 위 아동의 건전한 성장과 정서적 안정을 위하여 시설 입소를 의뢰함."

어머니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홍 씨는 어머니를 다시금 찾아 나섰습니다. 법원에 친생자 관계 존재 확인 소송을 냈고, 법원에서는 어머니에게 각종 서류를 송달할 수 있게끔 주소 보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법원의 명령에 따라 확인한 어머니의 현재 주소지에서 수소문을 한 끝에 결국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고 마침내 지난 3월 홍 씨는 어머니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침묵을 한 시간이 5분 정도 있었습니다. 첫마디가 소송 좀 취하해 주면 안 되겠냐, 그 얘기가 첫마디였어요, 저한테. 본인이 좀 먹고살기도 힘들었고, 많이 좀 어려움이 있어가지고 키울 수 없어서 좀 미안하다는 얘기를 좀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렵게 만난 어머니, 그 후 토론회에 서기까지

1년 3개월 남짓 어머니를 찾아 이 모든 과정을 거쳤던 홍 씨는 지난 5월, 국회의 한 토론회에 참석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취재진이 연락하게 된 것도 토론회 참석자로 이름을 올린 홍 씨를 보고서였습니다. "보호출산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토론회에서 홍 씨는 '출생 후 보호출산 허용이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가져올 재난'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토론했습니다. 과연 보호출산제가 무엇이기에 홍 씨는 이것이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재난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말한 걸까요.

'보호출산제'라는 제도를 말하기에 앞서 '출생통보제'를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제도는 서로에 대한 보완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5월,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이 그 시발점이 됐습니다. 한 여성이 2018년과 2019년 딸과 아들을 병원에서 출산한 뒤 살해하고 시신을 봉지에 넣어 집 안 냉장고에 보관한 사건이었는데, 범행은 뜻밖에도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감사를 거치며 세상에 드러나게 됐습니다.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난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경우가 2천여 명에 달했고, 이 아기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범행이 확인된 겁니다. 아기의 부모는 출생 1개월 이내에 아이의 출생을 신고해야 하지만 이를 어긴다고 해도 과태료 처분만을 받고, 의료기관은 행정기관에 출생 사실을 굳이 통보할 의무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출생통보제'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의료기관의 장이 출생 14일 이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아기의 출생을 통보하고, 심평원은 다시 시, 읍, 면장에게 이를 통보합니다. 통보하게 되는 정보는 어머니의 성명과 주민번호, 아기의 성별과 수, 출생연월일시 등입니다.

시, 읍, 면장은 출생 신고 기간, 즉 1개월 이내에 출생이 신고되지 않으면 신고 의무자(부모)에게 이를 독촉하는 통지를 보내게 되고, 7일 동안 또 신고가 이뤄지지 않고 신고 의무자(부모) 특정도 불가능한 경우에는 직권으로 출생을 기록하게 됩니다. 즉,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의료기관 및 지자체가 출생 신고를 해, 태어난 아기는 '그림자 아동'으로 남지 않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보호출산 기본 체계
'보호출산제'는 이런 '출생통보제'가 가져올지 모를 부작용을 막기 위해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 생모의 신분이 자동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생모 본인이 하지 않더라도 의료기관에서 심평원을 거쳐 시, 읍, 면의 장에게 생모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포함한 출생정보가 통보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위기 임산부가 애초에 병원을 찾는 것을 꺼릴 거라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그림자 아동'을 줄이기 위한 대책인데 도리어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나, 오히려 '그림자 아동'을 더 늘릴 가능성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도입된 제도가 '보호출산제'입니다. 위기 임산부가 충분한 상담을 거친 뒤 익명(가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하고, 태어난 아이는 출생을 등록하게 해 보호하는 겁니다.

출생증서에 남겨진 생모와 생부의 정보는, 성인이 된 자녀가 요청을 해도 생모와 생부가 동의해야 공개됩니다. 출산 이전에도 상담 서비스를 받아 보호출산에 이를 수 있고, 보호출산을 규정한 법률인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위기임신보호출산법)' 14조에 따라 출산 이전에 신청을 하지 않았더라도 출산 이후 1개월 이내에 지역 상담기관에의 신청을 통해 보호출산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왜 태어났지'

홍 씨는 이런 '보호출산제'가, 태어난 아이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제도라고 말합니다.

"아프다거나 장애가 있다거나 이런 아이들은 더 좀 많이 버려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죠. 병원비에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그게 감당이 안 돼서 버리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홍 씨는, 비록 자신의 어머니는 출산 직후 자신이 선천성 심장 기형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고 했지만, 보호출산제가 시행되면 더 많은 '아픈 아이'들이 버려질 것을 걱정했습니다.

특히 출산 이후 1개월 이내에 지역 상담기관에 신청을 하며 사실상 보호출산과 같은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열어놓은 법 조항이 가장 우려된다고 했습니다. 위기임신보호출산법을 뜯어본 김민지 한국형사정책법무연구원 부연구위원도 비슷한 우려를 내놨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장애 아동을 키우는 그런 현실적인 여건을 생각한다든지 장애에 대한 편견을 생각한다면 사실상 이 보호출산제는 장애 아동을 이제 합법적으로 유기할 수 있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조항은 특히 미성년자 등 신체 변화가 크지 않아 출산이 임박한 경우까지 임신 사실을 몰랐던 위기 임산부들을 포괄할 수 있게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장 의료진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그런 경우가 꽤 많다고 하는데, 갑작스레 출산에 이르게 돼 사전에 위기 상황과 양육에 대한 상담을 충분하게 하지 못했던 경우 이를 출산 후에라도 가능하게 해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취지라는 겁니다.

스프 더스피커
보호출산제가 태어난 아이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제도라고 홍 씨가 보는 이유에는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1년 3개월여 동안 홍 씨가 최선을 다해 하고 싶었던 것, 즉 부모 찾기를 보호출산제는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현행 보호출산제에 따르면, 위기 임산부는 자신을 비식별화(즉 가명으로)한 상태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진료기록부에 이 비식별화된 가명과 관리번호를 적습니다.

이 위기임산부가 보호출산을 신청한 지역 상담기관에서는 신청한 위기임산부에 대해 출생증서를 작성하는데, 거기에는 신청인, 즉 생모 및 생부의 이름, 본, 주민등록번호, 생모 및 생부의 유전적 질환이나 건강 상태, 생모가 보호출산을 선택하기까지의 사회경제적, 심리적 상황 등이 담깁니다.

이 출생증서는 봉투에 넣어 밀봉되고 생모의 가명과 지역 상담기관의 명칭 등을 적은 뒤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이관됩니다. 나중에 태어난 아기가 성인이 돼 생모 또는 생부를 찾고 싶다면 이 출생증서를 넘겨받은 아동권리보장원장에게 출생증서 공개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생모나 생부가 동의하지 않거나 동의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그 인적사항은 제외한 채 출생증서가 공개됩니다.

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차단되는 겁니다.

"부모님을 찾고 싶은데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많은 기관들에서 다 거절을 하면, 자기는 누구 밑에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왜 태어났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심적이나 정신적으로 좀 더 피해가 더 클 것 같고."

홍 씨가 답답함을 토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자신처럼, 부모가, 뿌리가 궁금한 아이들이 자라서도 모든 기회를 차단당한다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보호출산제 도입을 알리는 브리핑 자리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생모의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할수록 익명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산모가 제도를 회피할 우려가 있다"면서 "아동의 알 권리를 두텁게 보호해야 할 필요도 있지만 아동 생명을 위협할 우려와 함께 균형 있게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아동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위기 임산부의 익명성 보장을 더 낮은 수준으로 보장하게 한다면 도리어 자신이 드러날 것을 걱정해 아동의 생명을 위협할 우려가 있으니 현재의 수준에서 당장 변화를 주기는 어렵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10년 전 시작된 독일의 '신뢰출산제'는

지난 19일부터 출생통보제 및 보호출산제를 도입한 우리보다, 꼭 10년 앞서 이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독일입니다. 지난 2014년, '신뢰출산' 혹은 '비밀출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제도를 도입한 독일에서는 얼마나 많은 상담이 이뤄졌고 그 결과 출산으로 이어졌는지 등을 담아 보고서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2017년 처음 나온 결과 보고를 살펴보면, 상담을 거친 위기 임산부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개괄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은 임산부들인 24.2%가 아이를 낳아 함께 사는 것을 택했습니다. '원 가정 양육'이라는, 우리가 보호출산제를 도입하면서 내세운 첫 번째 목표이기도 한 방향을 일정 부분 달성해 낸 겁니다. 뒤를 이은 두 번째 답(21.8%)은 '신뢰출산'이었고, 세 번째(14.8%)는 '결과를 알 수 없음', 네 번째(13.7%)는 '입양'이었습니다. 2019년 나온 보고서는 2014년 5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신뢰출산 건수가 모두 570건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매해 평균 110건 정도로, 숫자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보고서에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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